[[분류:원나라의 인물]][[분류:1320년 출생]][[분류:1363년 사망]][[분류:전쟁 사망자]][[분류:비정통 군주]] [include(틀:원말명초 주요 세력)] ||<-2><tablealign=right><tablebordercolor=#f0c420><tablebgcolor=#f0c420>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; padding: 7px 10px; background-image: linear-gradient(to right, #004db1 0%, #004db1 20%, #f0c420 80%, #f0c420)" '''{{{#800000 {{{+1 원말명초 군웅}}}[br]{{{+1 陳友諒 | 진우량}}}}}}'''}}} || || '''[[묘호|{{{#800000 묘호}}}]]''' ||<bgcolor=#fff><(> 없음 || || '''[[시호|{{{#800000 시호}}}]]''' ||<bgcolor=#fff><(> 없음 || || '''[[성씨|{{{#800000 성}}}]]''' ||<bgcolor=#fff><(> 진(陳) || || '''[[휘|{{{#800000 휘}}}]]''' ||<bgcolor=#fff><(> 우량(友諒) || || '''{{{#800000 생몰기간}}}''' ||<bgcolor=#fff><(> 1320년 ~ 1363년 || || '''{{{#800000 재위 기간}}}''' ||<bgcolor=#fff><(> 1360년 ~ 1363년 || [목차] [clearfix] == 소개 == 원나라 말기의 군웅. 원래 성씨는 사씨(謝氏)였는데, 이는 진우량의 할아버지가 데릴사위로 들어가서 진씨가 되었다. 다른 이야기로는 진우량은 [[원나라의 베트남 원정]]시기 [[원나라]]에 항복하고 황실을 배신한 [[쩐 왕조]] [[쩐까인|태종]]의 5남 진익직(陳益稷)의 아들이란 말도 있다. [[홍무제|주원장]]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다. == 생애 == [[원나라]] 말인 1351년, [[홍건적]]의 난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진우량은 서계홍건군(西系紅巾軍)을 이끌던 [[서수휘]]의 [[천완]] 정권 휘하에서 활동하였다.[* 홍건군은 크게 군세를 둘로 나눠 원나라의 수도 대도를 향해 진격했는데, 서계홍건군은 서수휘가, 동계홍건군은 유복통과 한림아기 이끌었다.] 1359년, 천완 정권의 장수인 조보승을 죽이고, 서수휘를 협박하여 강주로 천도하며, 한왕으로 자칭하였다. 이듬해, 진우량은 예문준과 서수휘를 제거하고 국호를 대한(漢), [[연호]]를 대의로 하고 칭제 건원을 하였다. == [[파양호 전투|파양호 대전]] == [include(틀:상세 내용, 문서명=파양호 전투)] 이후 진우량은 강서, 호남, 호북 등지에서 [[주원장]]과 전투하였다. [[장사성]]과 함께 주원장을 공략하고자 하였으나 장사성이 협조하지 않아 좌절되었다. 1363년, 60만 대군을 이끌고 주원장과 [[파양호 전투|파양호에서 싸웠으나]], 크게 패하고 포위를 뚫던 중, 화살을 맞고 전사하였다. 자녀로는 장남 진선아와 둘째 진리 등이 있었는데 모두 파양호 전투 후 주원장에게 포로로 잡혔다. 주원장은 의외로 이들을 후하게 대했고, 특히 진리는 더 이상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아예 [[명옥진]]의 아들 명승처럼 고려로 보내서 조용히 살게 했다. 그래서 진리와 후손들은 고려-조선에 정착해서 양산 진씨 일가를 이루게 되었다. == 평가 == ||<tablealign=center> || --'''송 소명왕'''[br][[한림아]]--[* 원에 패배하여 멸망.] || || || --'''천완 황제'''[br][[서수휘]]--[* 진우량에게 흡수.] || '''오왕'''[br][[홍무제|주원장]] || '''주 장오왕'''[br][[장사성]] || || || '''진한'''[br]'''진우량''' || || >[[장사성]]은 재정이 풍부하고 '''진우량'''은 병력이 강했다. [[홍무제|내게는]] 특별히 내세울 장점이 없었다. >---- >[[홍무제|주원장]], 천하통일 후 남긴 말. 진우량은 원말명초 당시 [[천하통일]]의 남쪽에 위치한 4대 유력자 중 하나였으며[* [[장사성]](동), [[서수휘]](서), [[한림아]](북). [[홍무제|주원장]](중앙).] 군사력이 제일 강해 당시 중국에선 장사성, 진우량 중 한명이 천하통일을 할거라고 예상했지 다른 이가 천하통일을 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. 세기의 전투인 파양호 전투에서 주원장과 달리 전함들의 질 차이가 압도적이었기에 전투 초기에는 오왕 주원장을 압도했으나 주원장이 화약을 이용해 배들을 불바다로 만들고 화살을 쏘아대자 진우량은 그 화살을 맞고 전사한다. 이후에도 [[장사성]]이 남아있었으나 오왕이 진우량을 이긴 시점에선 상대가 될 리 없었다. 그래서 진우량은 주원장의 천하 통일의 과정에서 맞닥뜨린 마지막 적으로 보는 시선(인지도)이 많다. == [[문학]]에서 == [[김용(1924)|김용]]의 소설 [[의천도룡기]] 후반부에 [[성곤]]의 제자이자 개방의 장로로서 등장한다. 간계에 능하여 여러 장소와 조직들을 동분서주하는데, 특히 [[송청서]]의 타락에 깊이 개입했다. 결국 도사영웅대회에서 성곤의 음모가 분쇄되면서 함께 붙잡힌다. 역사상 진우량의 행적을 고려하면 이후 석방되거나 탈출한 모양인듯. 그 후 명교 의병장 중 하나인 서수휘의 휘하로 들어가 그의 신임을 얻어 활약하다 본색을 드러내 서수휘를 죽이고 그 군세를 탈취, 왕에 등극하지만 파양호 전투에서 눈먼 화살에 눈을 맞고 죽는다. 한국 만화 [[비천무]]에서는 꽤 비중높은 인물로, 타루가 가문에게 복수를 꿈꾸는 [[유진하]]를 부하로 받아 들인 장본인이다. 겉으로는 유진하를 신뢰하는듯 하지만, 속으론 유진하의 공적을 시기, 동시에 그가 지닌 비천신기를 노리고 있다. 결국 유진하의 뒤통수를 쳐 그의 목숨을 위협하고 그의 군대, 비기도 뺏고자 하지만, 이 사실을 눈치챈 유진하 직속부대인 철기십조가 반란을 일으킨 후 주원장 쪽으로 붙어 버리고 비천신기도 놓쳐 버리는 등, 뒷통수를 친 보람은 없었다. 이후 파양호 전투에서 패배, 불길에 휩싸인 기함에서 허둥대다가 복수 겸 주원장의 의뢰로 쳐들어 온 유진하에게 죽는다. == 둘러보기 == [include(틀:명사)] ||<-5><:><tablealign=center><#00008B> '''[[한나라#s-3.10|{{{#ffffff 진한의 역대 황제}}}]]''' || ||<:><width=30%> 천완 1대 서수휘 || {{{+1 ←}}} ||<:><width=30%> '''초대 진우량''' || {{{+1 →}}} ||<:><width=30%> 2대 [[진리(동음이의어)#s-5|귀덕후]] 진리 ||