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토막글/인물]][[분류:1917년 출생]][[분류:2000년 사망]][[분류:대한민국의 정치인]] [include(틀:토론 합의, 토론주소1=RepulsiveStakingJuvenileShock, 합의사항1=문서를 존치하기)] [Include(틀:제7대 대통령 선거 후보)] [목차] == 개요 == [[파일:진복기.jpg]] 1917년 11월 17일~2000년 (향년 82~83세). [[7대 대선]] 후보. 1950년대 육군대위로 지리산 [[빨치산]] 토벌전에 참가했다. 이 때 몇달동안 수염을 자르지 못했는데, 토벌전이 끝나고 나서도 기념으로 카이저(당시엔 카이젤) 수염은 남겨두었고, 이것이 이후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다. [[1971년]] [[제7대 대통령 선거]]에 기호 6번으로 출마했던 [[카이저]] 콧[[수염]]을 기른 '''진복기''' [[정의당(1967년)|정의당]][* [[통합진보당]]에서 갈라져 나온 현재의 [[정의당]]과는 전혀 다른 정당이다.] 후보는 전쟁을 통해 북진통일을 완수하겠다는 말과 함께 [[보물선 사업|신안 앞바다에 가라앉은 보물을 발굴해 국민들을 부자로 만들겠다]]는 공약을 내걸며 122,914표(1%)를 득표해 전체 3위(!)에 올랐다.[* 이 선거는 [[박정희]], [[김대중]] 2명의 양강 구도로 진행되었으며, [[3선 개헌]], [[지역감정]], [[부정선거]] 의혹 등으로 유명하다. [[제17대 대통령 선거]]에 출마했던 [[허경영]] 후보가 득표한 96,756표보다는 많았으니 [[나름]] 선방한 셈이다.] 이후 대통령 직선제가 폐지되면서 다시는 대통령 선거에 나서지 못했지만 신군부 일당이 집권한 [[5공화국]]이 들어서면서 상습 대선 출마자로 몰려 [[1980년대]]에 3김씨와 함께 정치규제대상이 되기도 했다. 본인은 1980년대 언론에서 "나는 한번밖에 출마 안했는데 상습출마자가 되었다"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. 직선제 개현 이후 이후에도 기독성민당 등을 창당해 지속적으로 정치에 도전하기 시작하여 [[제13대 대통령 선거|1987년]], [[제14대 대통령 선거|1992년]], [[제15대 대통령 선거|1997년]] 등의 대선 등에도 모두 출마 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, 실제 출마로 이어지지는 않아 영원한 대선 후보라는 [[별명]]을 얻기도 했다. 사실은 이당시 후보 공탁금(1987년 1억원)이 없었기 때문인듯 하며,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 서류를 가지고 왔다가 마감후 되돌아가기도 했다는 후문이 있다. [[고은(시인)|고은]] 시인이 진복기 씨를 소재로 시를 쓰기도 했다. == 선거 이력 == || 연도 || 선거 종류 || 소속 정당 || 득표수(득표율) || 당선여부 || 비고 || || 1963 || [[제6대 국회의원 선거]] [br](서울특별시 제8선거구)[*A 성북구 을] || [include(틀:정민회)] || 1,004(1.82%) || 낙선(7위) || || || 1967 || [[제7대 국회의원 선거]] [br](서울특별시 제8선거구)[*A] ||<|2> [include(틀:정의당(1967년))] || 773(0.78%) || 낙선(6위) || || || 1971 || [[제7대 대통령 선거]] || 122,914(1.03%) || 낙선(3위) || || || 1988 || [[제13대 국회의원 선거]] [br](서울특별시 [[도봉구 을]]) || [include(틀:기독성민당)] || 901(0.89%) || 낙선(9위) || || [각주] [Include(틀:문서 가져옴, title=김길수, version=281, paragraph=3)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