* [[정치인/목록]] [[파일:external/rokps.or.kr/409.jpg|width=150]] 池榮璡 1898년 12월 8일 ~ 1972년 2월 22일 [[대한민국]]의 전 [[정치인]]이다. [[박봉식]] 전 서울대학교 총장이 그의 조카사위이다. 1898년 [[경상남도]] [[양산시|양산군]]에서 태어났다. [[경성부]] [[보성고등학교(서울)|보성중학교]]를 졸업하였다. 이후 1920년대 후반 [[신간회]] 양산군지부에 몸담았다. 1930년대 중반부터 [[일본 제국|일제]]가 패망하기 전까지 양산[[면(행정구역)|면]]장을 역임하였다. [[8.15 광복]] 후 [[미군정]]기 양산[[군(행정구역)|군]][[군수|수]]를 지냈다. 한편 양산금융조합 조합장, [[조선건국준비위원회]] 양산군지부 위원장을 지냈다. 1948년 [[제헌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대한독립촉성국민회]] 후보로 경상남도 양산군 [[선거구]]에 출마하였으나 [[무소속]] [[정진근]]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. 1949년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경상남도지부 간부 선거에 부위원장으로 입후보하였으나 선출되지 못하였다. 이후 경상남도 [[부산광역시|부산]][[시(행정구역)|시]] [[영도구|영도]]에서 대한도기(주)를 운영하였다. 1954년 [[제3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. 이후 자유당에 입당하여 중앙위원으로 활동하였다. 1958년 [[제4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자유당]]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무투표 당선되었다. 그러나 [[부정선거]]라는 이유로 소송이 제기되어 당선 무효 판결을 받았다. 이후 치러진 [[재보궐선거]]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[[민주당(1955년)|민주당]] 서순칠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. 1961년 [[3.15 부정선거]] 가담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. 1963년 [[제6대 국회의원 선거]]를 앞두고 [[허정(정치인)|허정]]의 [[신정당]]에 몸담았다. [[분류:양산시 출신 인물]][[분류:제3대 국회의원]][[분류:제4대 국회의원]][[분류:자유당 국회의원]][[분류:1898년 출생]][[분류:1972년 사망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