智襄子 ?~기원전 453년 [목차] == 소개 == [[진(춘추오패)|진(晉)나라]] 말기의 [[실세|실권자]]. 본명은 지요(智瑤).[* 원래 성씨를 적용해서 순요(荀瑤)라고도 한다.] 지씨 가문의 우두머리이기 때문에 지백(智伯) 요(瑤) 혹은 지백(智伯)라고도 불린다. 시호가 양이라 지양자라고 불려서 이 문서의 제목이 지양자이다. 지선자 지신(智申)의 아들. == 생애 == 아버지 지신이 그가 재주가 뛰어나서 뒤를 잇게 하려 했으나 친족인 지과(智果)가 그의 인격이 바르지 못하다는 이유로 반대했으나 지신은 지요를 후계자로 삼았다고 한다. 그는 아버지 지신이 죽자 그 뒤를 이었다. 한강자 한호(韓虎), 위환자 위구(魏駒), [[조양자(춘추시대)|조양자]] 조무휼(趙無恤)을 협박해 땅을 달라고 했다. 그래서 한호와 위구는 후환이 두려워 들어주었으나 조양자만은 거절했다. 이에 지양자가 크게 분노해[* 사실 지양자와 조양자의 악연은 조간자 생전부터 있었다. 그 때는 조양자가 참고 넘어갔지만 이때는 조양자가 조씨의 당주쯤 되었기에 그냥 넘어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.] 조씨 가문의 중심지인 [[진양]](晉陽)을 포위했다.[* 참고로 진양은 현 타이위안으로 조양자 전대의 조가의 종주인 조간자 시절에 세워진 도시다.] 진양은 조씨 가문이 민심을 사놓고, 또 성벽이 든든하고 물자가 넉넉해 쉽게 함락할 수 없으리라고 판단한 지양자는 수공을 썼다. 그리하여 진양성에 물이 들어찼다. 그러나 조양자가 한강자와 위환자를 설득해 진나라를 3개로 나누어 가지자고 해서 오히려 지백을 들이치게 하니 지백은 역관광을 당했다.[* 앞서 보았듯 한씨와 위씨는 이미 지씨에게 땅을 뜯긴 상황이라 지씨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고 무엇보다 조씨가 망해봐야 좋은건 지씨 뿐이었다. 실제로 조양자도 한씨위 위씨에게 [[순망치한|"우리 망하면 다음은 당신들 차례"]] 라고 설득했다.]~~다굴에는 장사 없다.~~ 그리고 지양자는 패해 죽고 그 일족은 몰살 당했다. 그리고 그 땅은 조씨, 위씨, 한씨가 각기 나눠 가졌다. 이것은 진출공 20년(기원전 455년)의 일이었다. == 사후 == 비록 지요는 횡포를 부리고 조씨에게 패해 죽었지만, 인재 보는 눈이 있어서인지 중항씨와 범씨의 연합 정권을 섬기던 사(士) 신분의 [[예양]](豫讓)을 알아보고 대단히 중용했다고 한다. 그 예양은 지백이 죽자 달아난 뒤 조양자에게 그 원수를 갚기 위해 2차례나 암살 시도를 벌이나 결국 두번 다 실패해 죽게 되었고, 죽기 전에 조양자에게 부탁해 조양자의 옷을 받아 그것을 3번 찌르고 자결했다고 한다. 진(晉)나라의 식자들은 그 죽음을 슬퍼했다고 한다. 이렇게 하여 지씨 세력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된다. [각주] [[분류:춘추전국시대/인물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