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상위 문서, top1=증평군)] [목차] == 일제강점기 이전 == 지금의 증평 도안 지역에 [[고구려]] 도서현(道西縣)이 있었고 [[신라]] [[경덕왕]] 때 도서현(都西縣)으로 바꾸었다. 이 당시에는 흑양군(黑壤郡, [[진천군]]) 소속 영현이었다. 고려시대에는 도안현(道安縣)으로 개칭되고 청주목의 속현이 되었으며, 도안현과 이웃한 청당현(淸塘縣)이라는 속현도 있었는데 이곳 또한 청주의 속현이었으며 현재의 청안면 일대가 중심이었다. 조선시대에 청당현과 도안현을 합쳐서 청안현이 되고, 23부제 시행과 함께 청안군이 된다. == 근현대 == [[파일:괴산+증평_1895년.png]] 본래 현재의 [[괴산군]]은 충주목 관할에다 [[한강]] 수계인 괴산현, 연풍현과 청주목 관할이었던 [[금강]] 수계의 청안현으로 분리되어 있었다. 이후 [[1895년]] [[23부제]]가 시행되면서 모두 군으로 일원화된다. [[파일:괴산+증평_1914년.png]] 일제강점기인 [[1914년]] [[부군면 통폐합]] 당시에는 청안군, 연풍군과 청주군, 충주군에서 할양한 지역들을 합쳐 괴산군으로 편입했다.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0&oid=001&aid=0002852378|#]]즉, 문화와 생활권이 서로 다르고 수계도 서로 달랐는데도 일제의 의해 억지로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묶여 불편을 초래한 것. 청안군은 청주군에 넘어가 북이면의 일부가 된 서면[* 절반은 현재 진천군 관할이 되었다.]을 제외한 전체가 괴산에 편입되었다. 이후 철도가 놓이면서 옛 청안현 지역의 중심지 역할은 원래 청안현의 읍내였던 청안면에서 증평으로 넘어가고, [[1949년]]에는 괴산읍보다 먼저 증평읍으로 승격되었다.[* 반면 괴산읍은 [[1979년]]에야 읍으로 승격되었는데, 이는 전국의 군청 소재지가 읍으로 승격되면서 읍이 된 것이다.] [[1991년]] [[충청북도]] 직할 증평[[출장소]]가 설치되어 괴산군과 행정이 분리되었다.[* 쉽게 말하자면 한 군에 군청 2개. 명목상으로는 증평이 계속 괴산군으로 유지되지만, 인사, 예산 등의 사항을 전부 괴산군청과 분리하여 따로 관장한다. 증평 사람들이 군청 일을 볼 때도 괴산군청이 아니라 증평출장소에서 업무를 보았다. 지방자치제 부활 이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.] 그리고 시 승격 요건인 인구 5만이 되면 괴산군에서 분리하여 시로 승격될 예정이었으나, [[계룡시]]도 그러하였듯 예상만큼 인구가 늘지 않았다. 바로 옆 [[청주시]]로 인한 빨대 효과가 주된 원인으로 보인다.[* 현재 증평군의 위치는 정확히 서술하자면 [[2014년]] [[청주시|청주]]로 편입된 [[청원군]] 옆이다.] 엎친 데 덮친 격으로, [[1995년]]부터 [[도농통합시]]가 출범하면서 기존 군이나 시의 일부 지역만 분리하여 시로 승격시키는 일이 없어졌다. 증평시 단독 승격은 물 건너간 셈. 이런 배경에서 도 직할 출장소인 만큼 인사, 예산 등의 행정 사항은 도 직할로 두면서도, 주소상으로는 [[괴산군]]의 일부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선거권은 [[괴산군]]에 행사되는 이중적 구조가 이어져갔다. 이게 왜 문제가 되나면, 괴산군청은 증평에 손댈 수 있는 권한이 없으므로, 증평 주민들은 '''괴산군수와 괴산군의원을 뽑아봤자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.''' [[파일:증평출장소 CI.svg|width=200]] 증평출장소 시절부터 증평군으로 독립한 뒤에도 2005년까지 사용한 옛 로고 [[파일:괴산+증평_2003년.png]] 하지만 생활권이 워낙 달랐던 만큼 괴산군에서 떨어져 나오려는 노력은 계속되었고, 해당 시 승격 조건이 '[[시(행정구역)#s-2.3|도 직할 출장소 + 자체 인구 3만 이상 + 인구 15만 이상의 도농통합시 소속]][* 당시 [[논산시]]에 해당하는 조건이다.]'으로 내려가 [[계룡시]]가 [[논산시]]에서 분리되어 나오던 [[2003년]]에서야 구 청안군의 일부였던 증평출장소(증평읍·도안면)가 증평군으로 승격되어 '''89년 동안 지겹게 이어지던''' 괴산과의 불편한 동거(?)를 간신히 청산할 수 있었다. 물론 [[계룡시]]처럼 [[시(행정구역)|시]] 승격도 같이 노렸으나 계룡시가 군사 본부인 [[계룡대]]의 소재지로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반면 증평은 별다른 게 없는지라, 증평은 [[시(행정구역)|시]] 대신에 별도의 생성 요건이 없는 [[군(행정구역)|군]]으로 독립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.[* 참고로 증평군 [[8월 30일]], 계룡시는 약간 늦은 [[9월 19일]]에 분리되었다.] 그렇게 괴산군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긴 했지만, 옛 청안현의 중심지인 청안면을 가져오지 못하면서, 역사적으로 같은 고을이 2개로 쪼개진 게 되어버렸기에 現 증평군은 아직 반쪽짜리인 셈이며, 이 지역의 행정구역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남았다. 추가로 역사적으로는 괴산 소속이었으나 생활권은 증평 쪽인 사리면을 더해 청안면, 사리면 2개 면을 증평군으로 편입하자는 주장이 있었다. 참고로 [[증평군]]을 [[괴산군]]에서 분리하겠다는 구상은 그 옛날인 [[1967년]](!!)에도 나온 바가 있다. [[http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67121100329201018&editNo=2&printCount=1&publishDate=1967-12-11&officeId=00032&pageNo=1&printNo=6821&publishType=00020|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]][* 한자를 인식할 때 曾과 會가 혼동되었는지 '텍스트 보기'에는 회평군(...)이라고 써있다.] 여담으로 이 기사에는 증평 말고도 [[경상북도]] [[의성군]]을 2분할하자는 구상[* 의성군은 [[부군면 통폐합]] 이전 의성군과 비안군이라는 2개의 고을이었던 역사적 근거가 있다. 분할되었다면 각각 의성군과 비안군, 혹은 안계군이 되었을 것이다.]도 있고, 정작 분리 이전의 증평과 가장 비슷한 사례인 [[벌교읍]]은 --그 당시엔 곧 시가 되어 떨어져나갈 운명이라고 생각했는지--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(...).[* 분리 이전의 증평과 벌교읍 모두 소속 군(괴산군/보성군)의 끄트머리에 위치했다는 점, 조선시대에는 다른 고을(청안현/낙안군)이었다가 통합된 점, 일제 강점기 때부터 교통망의 확충을 통해 도시의 성장을 시작했다는 점, 소속 군 중심지보다 인구가 많고 번화하다는 점, 소속 군 중심지와의 교류가 별로 없고 인접 도시(청주/순천)와의 연계성이 더 강하다는 점 등 공통점이 아주 많다. 심지어 증평군으로 분리가 된 이후에도 벌교읍과 공통점이 있는데, 조선시대에 속해있던 도시의 중심지(청안면/낙안면)과는 다른 지자체(괴산군/순천시)에 속해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.] [각주] [[분류:증평군]][[분류:향토사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