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일본군의 전쟁범죄)]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POWs_Burma_Thai_RR.jpg]] 강제노동을 당한 [[오스트레일리아]], [[네덜란드]] 포로들. [[아우슈비츠-비르케나우 절멸수용소]]에 비견될만 하다. [목차] == 개요 == || [[태국어]] || ทางรถไฟสายมรณะ || || [[일본어]] || 死の鉄道 || || [[영어]] || Death Railway || "죽음의 철도"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, [[제2차 세계대전]] 도중 [[일본 제국]]이 군대와 무기의 수송을 위해 건설한 길이 415km의 철도이다. 당시 [[태국]]의 [[방콕]]과 [[미얀마]]의 [[양곤]]을 연결하고 있었으며, 일본 측에서 부르던 명칭은 태면련접철도('''[ruby(泰緬連接鉄道, ruby=たいめんれんせつてつどう)]''')이다. 일본어 위키백과 제목은 泰緬鉄道로 되어 있다. 연합군 전쟁 포로와 끌려온 민간인들의 피와 땀으로 건설했다는 게 과장이 아닐 정도로 많은 사상자를 냈다. 최대 약 25만명 정도로 추정되는 규모의 연합군 포로들은 건설 내내 강제 노동에 시달렸으며, 철도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약 '''10만 명'''에 달하였다고 한다. 상세적인 노선은 [[태국]]의 농 플라 둑(Nong Pla Duk)역에서 [[미얀마]]의 탄비류자얏(Thanbyuzayat)역까지였다. == 역사 ==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이 철도는 태국과 미얀마 사이에 위치한 험한 산지를 정면으로 돌파하기 때문에 난공사 구간이 많았다. 일단은 일본의 설계 상으로는 이 철도는 궤간 1000mm의 미터 궤간에, 최소 곡선 반경이 200m 이며, 최대 구배는 20퍼밀로 상정하고, 기관차는 일본제 [[C56형 증기 기관차]][* 이 중 31호차는 개통식에서 사용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태국에서 퇴역한 이후 일본 [[야스쿠니 신사]]에 [[후안무치|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]].]를 사용하였다. 하지만 당시 [[일본 제국]]의 열악한 사정 때문에 설계에 따라 건설되긴 커녕 최소한의 열차가 달릴 수 있을 정도로만 다급히 공사했기 때문에 최급구배 20퍼밀, 최소 곡선 반경 200m로 설계했던 철도가 막상 공사를 완료하고 보니 최급구배는 설계상의 2배인 40퍼밀을 찍지 않나, 최소 곡선반경 또한 설계상에서 더 줄어든 160m 로 부설되었다. ~~안습~~ 이렇게 굉장히 험한곳을 지나는 철도임과 동시에 일본군 감독관들의 학대 때문에 그야말로 지옥도가 펼쳐졌는데 버마방면군 사령관 [[기무라 헤이타로]]의 지휘로[* 원래는 전임 사령관 카와베(임팔전투 승인자)가 기획했지만 사람들이 많이 희생될것 같아 기획만 했었다. 멍청하긴 했어도 [[그래도 성격은 좋다|사람 성격은 좋았었나 보다.]]] 전쟁 포로 6만여 명, [[태국]]·[[인도네시아]]·[[미얀마]]·[[말레이시아]] 같은 아시아에서 끌려온 노동자 20만 명이 동원되었으며 이 중 11만 6천여 명이 질병·부상·영양실조·과로 등으로 사망했다.[* 그래서 전임 사령관인 카와베도 이걸 염두하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공사 계획을 중간에 취소했다.] 특히 가장 공사 난이도가 높았던 탐파이(Tampii)역과 힌 톡(Hin Tok)역 사이에 있던 암석질 언덕을 절개하여 선로를 낸 구간은 철도 부설 노역자들이 잠을 자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밤에도 모닥불을 피웠던 것에 유래하여 '''지옥불 구간(Hellfire Pass)'''이라는 명칭이 붙을 정도였다. [[태평양 전쟁]]이 끝난 뒤에는 개보수 없이는 노선을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. 애초에 설계상에 따라 공사되지 않았던 부실한 철도가 연합군의 폭격까지 맞았으니 더더욱 개판이 된것.[* 종전 직후에는 폭격에 의해 전복되고 파손된 열차의 잔해들이 연선 곳곳에 널부러져 있었다고 한다.] 전 더군다나 전쟁이 끝나자 원래의 목적을 상실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구간은 그대로 [[폐선]]되었다. 태국측 철도 중 [[방콕]]에 가까운 구간은 전쟁 이후 1957년에 복구되어 로컬 노선으로 활용 중이다. 현재 운행 중인 구간은 130km로 농 플라 둑(หนองปลาดุก)에서 남톡사이요크노이(น้ำตกไทรโยคน้อย)역까지의 구간이다. 원래는 남톡(น้ำตก)까지만 철도가 들어왔는데 인근에 있는 사이 요크 노이(Sai Yok Noi) 폭포가 관광지로 유명해지자 2003년에 기존 노반을 그대로 활용하여 추가로 연장한 것이다. 현재 [[태국국유철도]]에서 하루 4회, 왕복 2회 열차가 운행중이다. == 복구 논의 == 1987년에 버마 철도의 폐선 구간을 복구하고 [[증기 기관차]]를 달리게 관광 노선으로 부활하게 하려는 계획이 있던 적이 있다. 이 계획은 태국 정부가 [[일본]]에게 돈을 받아 복구하려고 했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때 포로로 버마 철도의 건설에 연행된 [[호주]] 재향 군인회와 네덜란드의 옛 포로들은 '''"버마 철도의 복구는 [[아우슈비츠]]를 유원지로 만드는 것과 같다!"''' 며 엄청나게 화냈다. 그 이후 [[21세기]]에 접어든 현재까지 딱히 그렇다 할 움직임은 없다, 그나마 추진이 있는 곳은 2003년 완공된 남톡사이요크노이(น้ำตกไทรโยคน้อย)역까지의 연장 구간 뿐. == 미디어에서의 묘사 == 영화 [[콰이 강의 다리]]에서 그 모습이 나왔다. 하지만 실제에 비해 너무나 미화하고 일본군을 정상적으로 묘사했다. 물론 이에 대해 반론으로, 이때 당시 사령관은 미얀마의 도살자이자 미친 악귀 [[기무라 헤이타로]]가 아닌 모자라지만 마음씨는 착한 전임사령관이었던 카와베 마사카즈였다. '''그렇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묘사했을지도 모른다.''' 원래 이 영화의 콘셉트 자체가 어떤 의미로는 꼭 닮은 영국군과 일본군의 멘탈 대결이었다. 또한 영화에서 나온 일본군 수용소장의 모델인 부소장 [[사이토 리사부로]] 중령은 실제로도 일본군치고는 적군 포로를 정상적으로 대해줬다.[* 하지만 이런 이유 덕택에 그는 [[기무라 헤이타로]]에게 무지하게 괴롭힘을 당했다. 구타와 욕설을 쉬지 않고 받아야 했다.] 영화 《[[레일웨이 맨]]》(2013)에서도 다뤘다. 이 영화는 1995년 출간된 동명의 [[http://book.interpark.com/product/BookDisplay.do?_method=detail&sc.shopNo=0000400000&sc.prdNo=217251217|책]]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. [각주] [[분류:제2차 세계 대전/전쟁범죄]][[분류:철도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