周氏 생몰년도 미상 [목차] == 개요 == [[동오]]의 여성. [[주유]]의 고명딸,[* 삼국지 오서 주유전에 주유의 딸은 하나라고 명시되어 있다. 그렇기 때문에 주유의 딸에 대한 기록은 무조건 본 인물에 대한 것이다.] [[손등]]의 아내. [[주순]], [[주윤]]의 누이. == 정사 == [[정사 삼국지]]에서는 주유의 딸의 이름이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《강서길안주씨족보(江西吉安周氏族譜)》에 따르면 주유의 딸의 이름은 주철(周徹)이다. >옛일에 주윤 공의 여동생 주철이 황태자 손등과 결혼했다. >初,胤公妹周徹,配皇太子孫登。 >---- >강서길안주씨족보 하지만 족보는 신빙성이 낮은 사료이기 때문에 확신하기 어렵다.--애초에 딸 이름을 철로 지을까? 라고 생각해보면...-- 210년, 아버지 주유가 죽고 오군에서 살았다. 225년, 손권이 주유의 딸을 태자 손등의 비로 맞이하려고 [[정병]]을 보내 오군으로 가서 주유의 딸을 무창으로 맞이해왔고, 정병은 그녀와 혼인하는 손등에게 조언을 해주었다.[* 출처: 오서 정병전] 그리고 그녀의 오빠 [[주순]]도 손권의 딸 [[손노반]]과 결혼하면서 주유의 집안과 손권의 집안은 이중 인척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. 아버지 주유가 30대 중반에 요절했고, 아버지 사후 15년이나 지난 뒤에야 결혼한 걸 보면 주유가 죽을 당시에는 한참 어린아이였던 모양이다. 그런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손등이 요절하면서 그녀는 아버지와 남편, 그리고 큰오빠를 일찍 떠나보내는 비극을 맞이하였다. 한편 반준전 인용 오서에서는 손등이 [[예현(삼국지)|예현]]의 딸을 비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에 주유의 딸과 예현의 딸 둘 중 1명이 손등의 전처로 손등보다 일찍 죽어 손등이 다른 1명을 후처로 맞이한 듯하다.[* 예현의 딸은 아버지 예현이 죽는 226년 이전에 손등과 결혼했고, 주유의 딸은 225년에 손등과 결혼했기 때문에 주유의 딸이 후처일 확률이 높다.] 청나라 시대의 야사 《호주부지(湖州府志)》 8권에 주유의 딸의 무덤에 대한 기록이 있다. >주녀분은 구용현 동남쪽 28리에 있는데, 어떤 이가 말하는 바 주유의 딸의 무덤이다. >周女坟,在句容县东南二十八里,或曰周瑜女之墓也。 >---- >호주부지 8권 하지만 주녀분은 현대에 이르러서 존재하지 않는다. == 연의 == [[삼국지연의]]에서는 주유가 죽고 손권이 주유의 영구를 맞이하며 울면서 제사를 지내고 후한 장례를 치러 고향에 묻게 했는데, 주유에게 아들 둘, 딸 하나가 있다는 것과 함께 손권이 후하게 대우했다고 언급한다. 가정본에서는 주유의 딸이 나중에 태자와 결혼했다고 언급하지만 모종강본부터는 생략되었다. == 미디어 믹스 == || [[파일:5a541e7b02087bf40cd9ce82e5d3572c10dfcfe1.jpg]] || || 100만인의 삼국지 || [[삼국지 시리즈]]에서는 100만인의 삼국지에서 주유의 딸이 주씨(周氏)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. [[삼국지대전]]에서 주유의 딸이 주희(周姫)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. [[분류:동오의 인물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