周不疑 생몰년도 미상[* 집해에서 언급한 조충의 사망년과 나이를 대입하면 192-208.] [[후한]] 말의 인물. 자는 원직(元直) 또는 문직(文直). 형주에서 [[유표#s-1|유표]]를 섬긴 [[유선(삼국지)#s-3|유선]]의 조카. 삼국지 배송지 주 영릉선현전에 등장하는 인물로 영릉군 중안 사람으로 갓난 아이 때부터 재주를 발휘해 총명했다고 하며 숙부 유선이 [[유파(삼국지)#s-1|유파]]에게 주불의를 가르쳐달라고 요청했지만 유파는 "옛날 형북으로 유학했다가 학문의 실제가 그 유명세가 못했는데, 원래 가지고 있는 조카의 봉황 같은 모습을 던지고 제가 사는 까치집 같은 곳에 놀러 오신다고 하니 참으로 부끄러워 말을 못하겠다"고 말하면서 거절했다. 204년에 [[조조]]는 주불의의 평판을 듣고 면회를 요구해 주불의가 오자 조조는 자신의 딸을 시집보내게 했지만 주불의가 거절했으며, 조조가 의랑으로 등용하려고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. 그 당시 흰 참새가 나타난다고 하는 상서로운 소문이 있어 유생들은 모두 송을 만들고 있었는데, 주불의가 조조를 만나 종이와 붓을 빌려 그 자리에 작품을 만들어 내자 조조가 그 작품을 보고 매우 놀라 훌륭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. 조조는 아들 [[조충#s-1|조충]]을 귀여워 하면서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라 주불의와는 좋은 동료가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, 208년에 조조는 조충이 죽자 주불의를 꺼림칙하게 여겨 죽이려고 했다. [[조비]]가 주불의를 살려줄 것을 요청했지만 조조는 그 인물은 '''너 따위'''가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서 자객을 보내 주불의를 살해했는데, 그 때가 17세로 집해에서는 주불의가 살해된 해를 조충의 죽음과 동년이라고 추측했다. ~~주불의가 조충의 동년이 아니고 동년배일수도 있다.~~ 한편 당나라 시대의 백과사전인 북당서초에 따르면 주불의는 207년에 조조가 유성을 포위해서 공격했지만 함락시키지 못하자 진보라고 하는 10가지 방법의 계략을 헌상했으며, 조조가 주불의의 조언을 채용해 유성을 공격하자 눈 깜짝할 순간에 유성을 함락했다고 한다. 다만 노필은 주불의가 당시 조조의 원정에 동행했을지조차 의문이며, 동행했다고 한들 고작 열 몇살짜리 소년이 유세하는 전략을 받아들였을지도 의심스럽다며 주불의를 위한 영릉 사람들의 뻥이 너무 심하다고 깠다. 일단 조조가 유성에서 고전한 것 자체는 사실이지만, 북당서초의 해당 기록은 고전하고 있던 조조가 지휘경험은 커녕 종군경험조차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십대 소년의 (구체적인 실상은 불분명한)천재적인 전략 덕분에 조조가 승리할 수 있었다는 판타지급 결론으로 귀결되는 데다, 전투의 전개 양상도 백랑산에서의 한타싸움이었던 기존 통설과 다르고 교차검증은 불가능하다. 오히려 주불의의 명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기록. 이 때문에 영릉선현전이나 기타 주불의 관련 기록은 후세에 '삼국시대를 전후로 촉과 오의 맹활약 덕분에 기존에 변방 취급을 당했던 장강 이남은 여러가지 면에서 급성장했고 그 자부심 또한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는데,이 영릉선현전에서 보이는 조조도 감탄/경계한 비운의 천재 주불의, 유비와 제갈량이 설설 긴 위대한 선비 유파 등이 바로 이런 비뚤어진 애향심이 만들어낸 과장된 인물은 아닌가?'라던지, 아예 '영릉선현전의 대개가 괴롭히고자 적국이 비방했던 말이기에 믿을 것이 못된다', '정전과 그 사정과 일이 부합해서 믿을 수 있다고 여기기에는 부족하다'고 까이는 원인을 제공하게 만들었다. 하면 뭐 그게 다 사실이라면 '주불의의 스승 후보였다'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유파가 위나라 내에서 유명인사인게 충분히 납득 가능하긴 한데 기록 자체가 워낙 판타지니...(...) 주불의의 스승이 될 뻔한 유파 자체도 촉한의 법률인 촉과를 만들고 행정에 능숙한 어느 정도 명성이 있는 인사였던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절개가 뛰어난 위대한 선비였으냐 하면 행적으로 보아 절대 그렇지는 않기 때문에(...) 실제보다 과장이 심하다는 비판인것이다. 참고로 이 인물은 [[삼국지연의]]에는 등장하지 않으나 [[이문열 평역 삼국지]]에서는 조조가 채부인과 [[유종(삼국지)|유종]] 모자를 살해한 일이 허구라고 밝히는 부분에서 주불의의 일을 같이 언급하며 '채부인 모자를 죽인 것은 연의의 허구이나 조조가 냉혹하고 잔인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'고 서술하고 있다. [[분류:한나라/인물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