左伯 생몰년도 미상 [[후한]] 말의 인물. 자는 자읍(子邑). 팔분서에 뛰어나 [[모홍]] 등과 명성을 나란히 했으며, [[한단순]]의 팔분서와는 약간 달랐다고 한다. 한나라 말에 이름을 날리면서 종이를 만드는 것에 깊은 조예가 있었으며, 한나라가 융성하자 종이가 죽간이나 목간을 대신하게 되었다. [[화제(후한)|화제]] 때 [[채륜]]이 종이를 만드는 것에 뛰어났는데, 좌백은 채륜에게서 그 오묘한 기술을 터득했다. 좌백은 185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좌백지라는 종이를 새로 만들어낸다. 그가 만든 좌백지를 장강 유역은 서진 시기에 이르러 제지술이 전파되면서 쓰이게 되었다. 훗날 [[남북조시대]] 때 소자량이 왕승건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[[위탄#s-2|위탄]]의 먹, [[장지#s-2|장지]]의 붓과 함께 좌백의 종이에 대해 칭찬하는 말이 나오는데, 좌백이 만든 종이는 곱고 매끈하면서 빛이 난다고 하면서 위탄의 먹, 장지의 붓과 함께 이러한 절묘한 물건은 오래 전에 만들어졌으나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했다. 또 그의 팔분에 대해서는 척산의 무늬 가죽과 같아서 동북의 아름다움이 되었다고 평가했다. [[분류:한나라/인물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