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역대 미국 하원의장)] ||<-2><table bordercolor=#aeaa7a><table align=right><table width=450><tablebgcolor=#fff,#1f2023>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; padding: 7px 10px; background-image: linear-gradient(to right, #AEAA7A, #AEAA7A, #AEAA7A, #AEAA7A)" '''{{{#white 제53대 미합중국 연방 하원의회 의장[br]{{{+1 존 앤드류 베이너}}}[br]John Andrew Boehner}}}'''}}} || ||<-2> {{{#!wiki style="margin: -6px -10px" [[파일:John_Boehner_official_portrait.jpg|width=100%]]}}} || ||<|2><width=100><bgcolor=#aeaa7a> {{{#ffffff ''' 출생 ''' }}} ||[[1949년]] [[11월 17일]] ([age(1949-11-17)]세) || ||[[미국]] [[오하이오|오하이오 주]] [[볼티모어]] || ||<bgcolor=#aeaa7a> {{{#ffffff ''' 국적 ''' }}} ||[[파일:미국 국기.svg|width=28]] [[미국]] || ||<bgcolor=#aeaa7a> {{{#ffffff ''' 학력 ''' }}} ||[[제이비어 대학교]] {{{-2 ([[경영학]] / [[학사|B.A.]])}}} || ||<bgcolor=#aeaa7a> {{{#ffffff ''' 배우자 ''' }}} ||배우자 데보라 건랙 || ||<bgcolor=#aeaa7a> {{{#ffffff ''' 자녀 ''' }}} ||슬하 2녀 || ||<bgcolor=#aeaa7a> {{{#ffffff ''' 종교 ''' }}} ||[[가톨릭]] || ||<bgcolor=#aeaa7a> {{{#ffffff ''' 정당 ''' }}} ||[include(틀:공화당(미국))] || ||<bgcolor=#aeaa7a> {{{#ffffff ''' 약력 ''' }}} ||[[오하이오]] 제8구 연방 하원의원[br]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[br]공화당 하원 [[원내대표]][br]'''제53대 연방 하원의회 의장''' || ||<bgcolor=#aeaa7a> {{{#ffffff ''' SNS ''' }}} ||[[https://twitter.com/speakerboehner?lang=en| [[파일:트위터 아이콘.svg|width=20]]]] || [목차] [clearfix] == 개요 == 미국의 '''제53대 연방하원의회 의장'''이자 13선 하원의원이었으며 [[2011년]]부터 [[2015년]]까지 하원의장으로 활동한 뒤, 2015년 [[9월 25일]], 갑작스럽게 하원의장 사퇴 및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. 10월 29일, 후임 하원의장으로 선출된 [[폴 라이언]]에게 하원의장직을 넘기고 이틀 후 하원의원직에서도 사임해 정계를 떠났다. [[공화당(미국)|공화당]] 출신으로, [[오하이오 주]]를 정치적 배경으로 오랫동안 미국 정가에서 활동하였다. 오하이오 주 남쪽 소도시인 레딩에서 태어났으며, 어려운 집안 사정에 식당 웨이터, 술집 종업원까지 하면서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해 지역에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기도 했다. 하원 의장 취임 후 연설에서 이 어려웠던 시절 기억을 회고하면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.[[http://www.segye.com/newsView/20101103004557|#]] == 정치 == 유년시절에는 집안의 정치적 성향[* 베이너의 부모는 하층 노동자 계층 출신으로 민주당을 지지했다고 한다.]의 영향을 받아 [[민주당(미국)|민주당]]을 지지했었지만 취업 후 첫 월급에서 세금이 뭉텅(...)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분노해 공화당 지지자로 유턴했다고 한다. 이후 [[1985년]]부터 오하이오 주 의회 하원의원으로 활동하며 정계에 입문하게 됐고 [[1990년]] 오하이오 주 제8선거구에 공화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해 61.1%를 득표하며 당선,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. 정계 입문 후 얼마 되지 않은 [[1992년]], [[릭 샌토럼]] 등 초선의원 6명과 함께 하원 의사당 내 위치한 은행과 우체국에서 벌어진 비리 사건을 파헤치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됐으며, [[1994년]] 중간 선거에서는 [[뉴트 깅리치]] 원내 대표와 함께 세금 감면 및 행정부 규모 축소를 골자로 한 ‘미국과의 계약’(Contract with America) 공약 입안에 참여해 대승을 이끌었다. 이 덕분에 깅리치가 하원의장에 취임한 후 본인도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. 그러나 [[1996년]], 민주당의 [[빌 클린턴]]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고 [[U.S. Government Shutdown|여러차례 그 발목]]을 잡아온 깅리치 하원의장의 이미지가 악화되자 [[1997년]] 여름, [[빌 팩슨]] 뉴욕 주지사와 함께 깅리치의 사퇴를 요구했다. 그러나 깅리치는 강력하게 거부했고, 다수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던 [[딕 메이]] 등 공화당 지도부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해 실패했다. 결국 이 책임을 지고 빌 팩슨 주지사가 사임해야 했으며 뒤이은 [[1998년]] 중간 선거에서 다시 공화당이 승리했지만 이 사건의 영향으로 깅리치는 [[데니스 해스터트]]에게 하원의장 직을 넘겨줘야 했으며 베이너 본인도 전국위원회 의장 경선에서 패배해 자리를 내줘야했다. 이후 [[2001년]]부터 [[2006년]]까지 하원 노동교육위원회 상임위원장으로 활동했고, [[2005년]] 톰 딜레이 다수당 원내 대표가 개인 부패 문제로 인해 사임하자 경선에서 [[로이 블런트]] 원내총무와 대결하여 122표를 획득하며 13표차로 승리, 드디어 다수당 원내대표직에 오를 수 있었다. 하원 노동교육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할 당시 민주당의 [[에드워드 케네디]] 상원의원과 함께 공교육 개혁 법안인 '낙제학생 방지법안(No Child Left Behind Act)'을 입법, 초당적 지지로 통과시켜 주목을 받기도 했다.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No_Child_Left_Behind_Act|#]] 그러나 2006년 중간 선거에서 [[조지 W. 부시]] 행정부가 반복된 국내 실정과 [[아프가니스탄 전쟁]], [[이라크 전쟁]] 문제로 국민들의 신임을 잃으면서 공화당이 하원에서 12년만에 패배하고 말았고 베이너 역시 민주당의 [[낸시 펠로시]]에게 하원의장 경선에서 패하며 원내대표직 유지에 만족해야 했다. [[2008년]] [[버락 오바마]] 행정부로 정권이 민주당에게 넘어간 후, [[2010년]] 중간 선거에서 [[티 파티]] 등을 중심으로 기존 민주당지지 성향의 남부, 중서부 농촌이 대거 공화당을 지지하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게 됐으며[* 공화당으로서는 [[1938년]] 이후 가장 크게 거둔 하원 선거 승리다.], 드디어 원내대표 직에 오른지 6년만인 [[2011년]] 공화당 하원의원의 만장 일치로 낸시 펠로시를 누르고 제53대 미국 연방하원의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. === 제53대 연방하원의장 취임 이후 === ||<table bordercolor=#aeaa7a><table align=center><tablebgcolor=#aeaa7a>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youtube(w1_gatxzpg4)]}}}|| || {{{#fff '''[[낸시 펠로시|{{{#fff 낸시 펠로시}}}]] 원내대표에게 의사봉을 넘겨받는 존 베이너 하원의장'''}}} || [[2011년]] [[1월 5일]], 112대 미국 의회가 공식 개원함에 따라 하원의장 선출 투표에서 공화당 하원의원 241명 전원의 찬성을 받아 공식적으로 하원의장 자리에 오르게 됐다. 관례에 따라 선출 후 소수당 원내대표가 된 민주당 [[낸시 펠로시]] 전 하원의장에게 의사봉을 전달받았으며 [[샘 레이번]] 전 하원의장 이후 처음으로 다수당 원내대표, 소수당 원내대표를 모두 거쳐본 최초의 하원 의장이 되었다. 하지만 하원의장 취임 이후로는 가시밭길을 걷게 됐다. 베이너 자신은 [[https://votesmart.org/candidate/key-votes/27015/john-boehner#.XXyudigzaUk|표결권 직접 행사를 최소화하면서]] 소극적 의장 역할 수행에 집중하고자 했지만, 2010년 선거에서 대승에 기여한 [[자유지상주의]] 단체인 [[티 파티]] 등 [[포퓰리즘]] 성향의 보수 단체의 영향력이 당 내에서 강해지면서 당 자체가 우경화 경향을 띄게되면서 [[론 폴]], [[사라 페일린]] 등에게 지나치게 오바마 정부에 타협적이라며 하원의장 임기 내내 당으로부터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 받았다. 그 영향인지 [[버락 오바마]] 행정부와는 정부 규모 축소 및 감세, 특히 [[오바마케어]] 문제로 임기 내내 충돌했는데 법이 제정된 [[2010년]]부터 [[2014년]]까지 무려 60여 회나 오바마케어 폐지를 시도했으나 소수여당인 민주당의 강한 반대와 공화당 내 배반표 단속에 실패하여 무위로 돌아갔다. 2015년 9월 25일, [[프란치스코]] 교황의 의회 연설이 있었던 다음날 갑작스럽게 연방 하원의장직 사임을 발표했는데 2014년 중간선거 이후 더 심해진 [[버락 오바마]] 행정부와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 간 갈등을 중재할 수 없어라고 한다. 10월 있었던 후임 하원의장 선출 선거에서 [[폴 라이언]] 하원의원이 승리하면서 자리를 넘기고 같은 날 의원직에서도 사퇴해 정계를 완전히 은퇴하게 되었다. == 정계 은퇴 이후 == 은퇴 이후에는 미국 내 2위 담배회사인 레이놀즈 아메리칸의 임원으로 취직하였다.[[https://www.yna.co.kr/view/AKR20160916000900071|#]] 이후 공화당 내 정치 원로로서 [[2016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|2016년 대선 경선]]에서 [[테드 크루즈]]를 [[루시퍼]]라고 표현하면서 비토했고, [[도널드 트럼프]]가 공식적으로 당내 후보로 지명받자 당 중진 중에는 이례적으로 공식적인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.[[https://edition.cnn.com/2016/05/12/politics/john-boehner-backs-donald-trump/|##]] 하지만 2017년 1월 공식적으로 대통령에 취임한 트럼프 행정부가 이후 좌충우돌 행보를 보이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[[https://www.yna.co.kr/view/AKR20170527008100071|"완전한 재앙"이라고 비판]]했고 아예 [[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|2020년 대선]]에서는 지지 의사 표명을 포기했다. == 여담 == [[분류:미국의 정치인]][[분류:미국 공화당 소속]][[분류:1949년 출생]][[분류:오하이오 주 출신 인물]][[분류:미국의 보수주의자]][[분류:미국의 가톨릭 신자]][[분류:신보수주의자]][[분류:욱일대수장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