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파일:조희창(상하이 조) 초상(사진).jpg]] 조희창(趙熙昌 또는 趙喜昌) 1916년 ~ 1987년 이후 [목차] == 개요 == [[일제강점기]]와 [[대한민국]] 시기의 인물로, [[백색테러]]를 감행했던 [[정치깡패]]이다. == 생애 == 해방 이전에는 [[중화민국/국민정부|중국]]에서 있다가, 해방 후에 귀국하여 [[김두한]]의 부하로 들어가서 [[우익]] 활동을 했다. 김두한의 [[여운형]] 습격 사건 때 동행했던 인물 중 한명이며, [[광통교]]에서 김두한과 함께 [[심영(배우)|심영]]을 향해 3발의 사격으로 하복부를 맞혀 병원으로 실려가게 만들었다. 또한 김두한은 조희창과 2명의 부하를 데리고, 심영이 입원된 [[김성진(1905)|김성진]] 외과로 가서 심영을 죽이려고 했으나, 김두한이 [[심영의 어머니]]의 애원 때문에 마음이 약해져서, 김두한이 심영에게 다시 한 번 나오다 걸리면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목숨을 살려줬다. [[6.25 전쟁]]이 [[정전 협정(6.25 전쟁)|정전협정]]으로 휴전이 되자, 김두한이 우익 조직을 해산하였고, 그 후에 조희창은 고향으로 내려가서 사업을 하며 살아갔다. [[1987년]] [[4월 1일]]자 [[경향신문]]에서 나온 '청년운동 반세기'이라는 기사의 내용에 의하면 대한민주청년동맹에서 김두한이 감찰부장일 때 별동대의 일원으로 있었다고 한다. [[5.16 군사정변]] 이후 [[이정재(조직폭력배)|이정재]]가 이덕현이라는 사람에 대한 살인을 교사하여 제 3세력을 제거하려고 한 혐의가 있다는 재판이 열릴 때 증인 중에 하나로 참석하였다고 한다. 그 이후로는 [[1987년]] [[4월 29일]]자에 나온 경향신문에서 나온 '청년운동 반세기'이라는 기사의 내용에 의하면 서예가로 조용히 산다는 소식이 있었고[* 뉴스 검색해보면 [[1980년대]]부터 여러 서예대전이나 미술대회 서예쪽 입상자 명단에 조희창이라는 이름이 뜨기는 한다. 허나 동명이인인지 아니면 상하이 조 본인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.], 1987년, 경향신문에서 대한민청에 대한 연재기사를 실었을 때 김두한의 [[우미관]] 식구들과 근황이 공개되기도 했다. 정확한 몰년은 알 수 없으나, 당시에 이미 상당한 고령이었기 때문에 몇 년 후에 세상을 떠났을 것으로 추정된다. 2021년인 현재 살아있으면 105살이나 되는 초고령인지라 살아있을 확률은 희박하다. 사실 살아있다면 야인시대 방영당시 언론에 등장했을법도한데 전혀 그런게 없었다.[* 야인시대가 한창 인기리에 방영되었을 당시, 실존인물들 중 살아 있던 인물들은 인터뷰를 하거나 촬영장에 방문했다.] == 대중매체에서 == === 드라마 [[야인시대]] === [[야인시대]]에서는 조희창의 별명인 [[상하이 조]]로 나온다. 자세한 내용은 [[상하이 조(야인시대)]] 문서 참조. == 기타 == [[동명이인]] [[https://ko.wikipedia.org/wiki/%EC%A1%B0%ED%9D%AC%EC%B0%BD|조희창]]이라는 별개의 인물이 있다. 해당 인물은 [[일제강점기]] 당시의 [[경찰]]([[순사]])이자 친일파며, [[제암리 학살사건|제암리 학살]]에 적극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. [각주] [[분류:대한민국의 조직폭력배]][[분류:1916년 출생]][[분류:몰년 미상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