曹翕 생몰년도 미상 [[삼국시대(중국)|삼국시대]] 위나라의 황족. 조휘의 아들. [[조조]]의 손자. 242년에 조휘가 죽자 작위를 계승해 동평왕이 되었고 식읍이 계속 증가해 3천 4백호가 되었는데, 위나라가 멸망하고 [[서진]]이 건국되자 음구공에 봉해졌다. 뜸 뜨는 법을 연구해 최초의 침구전문서라 전해지는 의서인 조씨구경을 저술했지만 그의 저서는 사라졌다고 하며, 수서 경적지, 강남통지, 십이경명당언측인도 등에 그가 저술한 것임이 드러나고 있다. 해한식산방이라는 책도 저술했지만 그의 저서는 모두 소실되었는데, [[황보밀]]과 함께 썼던 책이 함께 지금도 존재한다고 하는 것으로 볼 때 적어도 당대에 소실된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이후에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. 또한 [[동진]]의 갈홍, 당의 왕도 등과 함께 뜸법에 영향을 준 사람이다. [[분류:위나라의 인물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