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5.18 민주화운동)] [youtube(H9QsldGvjUA)] >'''"내가 아무리 성직자지만 나에게도 [[M16A1 소총|M16]]이 주어져 있다면 (계엄군을 향해)쏘고 싶은 심정이었다."''' >---- >[[1988년]] [[5.18 민주화운동|광주]] 청문회 당시, 위의 영상 4분 지점부터 해당 증언이 등장한다. [목차] == 개요 == [[대한민국]]의 [[가톨릭]] [[성직자]]. [[천주교 광주대교구]] 소속 [[신부(종교)|신부]]이자 [[몬시뇰]]이다. [[세례명]]은 '비오'로, 본명인 조철현(曺哲鉉) 대신 '조비오'로 불릴 때가 많았다.[* 가톨릭 신자들 중 나이 많은 신자들은 이름 대신 세례명으로 호칭할 때가 많다.] 본관은 [[창녕 조씨|창녕]](昌寧)[* 26세손 '''현(鉉)''' 호(鎬) 종(鐘) 항렬.]. == 상세 == [[1937년]] [[4월 1일]] [[전라남도]] [[나주시|나주군]] 본량면 북산리(현 [[광주광역시]] [[광산구]] 북산동 369-1번지)에서 태어나[[http://www.namdonews.com/news/articleView.html?idxno=419438|#]], [[광주가톨릭대학교|광주신학교]][* 현 [[광주가톨릭대학교]]]를 졸업한 뒤 [[1969년]] 사제품을 받아 전남 나주성당에서 사목활동을 시작했다. [[http://unyielding.jss.or.kr|예수의 소화(小花) 수녀회]]도 창립했다. [[1980년]] [[5.18 민주화운동|5·18 민주화운동]]에 참여하였는데 당시에는 소위 온건·수습파로서 시민군에게 “광주 시민의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무기를 내려놓아야 한다”며 무릎 꿇고 호소하였으며, [[1980년]] 5월 26일에는 오전 9시 광주를 무력진압하려는 계엄군을 막기 위해 죽을 각오를 하고 맨손으로 소위 '죽음의 행진'에 나섰다. 이후 [[김대중]] 등과 함께 구속 기소되어 4개월간 옥고를 치렀다.[[http://www.hani.co.kr/arti/society/area/762086.html|#]] 후에 [[영화]] [[화려한 휴가]]의 '김 신부'의 [[모티브]]가 되기도 했다. 1989년부터 사회복지법인 소화자매원 이사장,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초대 [[5.18 기념재단]] 이사장, 2000~2002년까지 [[학교법인 조선대학교]] 관선이사장을 각각 지냈으며, 5·18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했다. 또한 [[광주민주화운동]]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을 증언하였다.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056&aid=0010681049|헬기 사격’ 증언마다 일치…전두환 재판에 영향 줄 듯]] 이를 두고 [[전두환]]은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헬기 사격을 증언한 조 신부를 향해 "거짓말쟁이"라고 언급했는데 이 부분이 조 신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[[전두환]]에 대한 [[사자명예훼손죄]] 혐의 재판이 이뤄지고 있다. 2008년 1월 16일 [[교황]] [[베네딕토 16세]]로부터 [[몬시뇰]] 칭호를 받았다. 2016년 9월 21일에 천주교 성 요한 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[[향년]] 79세로 [[선종(가톨릭)|선종]]하여 전남 담양군 소재 천주교묘지에 안장되었다. 생전에 3차례에 걸쳐 전재산을 광주인권평화재단에 기부하였는데, 선종 당시 통장 잔고는 0원이었으며, 유품은 낡은 옷과 이부자리, 책장 2개를 차지한 책 400여 권뿐이었다고 한다. 이 책들은 유언에 따라 전부 조철현 신부가 이사장을 맡았던 사회복지법인 소화자매원에 기증되었다. [[천주교 광주대교구]] 조영대 프란치스코 신부가 그의 조카이다. 2020년 6월 10일, 제33주년 [[6월 항쟁]] 기념식에서 5.18 민주항쟁 참여와 민주화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되었다. [[분류:대한민국의 가톨릭 신부]][[분류:1937년 출생]][[분류:2016년 사망]][[분류:창녕 조씨]][[분류:광산구 출신 인물]][[분류:5.18 민주화운동/관련 인물 및 단체]][[분류:광주가톨릭대학교 출신]][[분류:국민훈장 모란장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