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파일:external/dimg.donga.com/23691959.1.jpg]] 조창수와 딸 조윤희 || 이름 || 조창수(趙昌秀) || || 생년월일 || [[1949년]] [[4월 20일]] || || 국적 || [[대한민국]] || || 출신지 || [[경상북도]] [[대구광역시|대구시]](현 대구광역시) || || 학력 || [[경북고등학교 야구부|경북고등학교]] || || 가족 || 배우자 [[조혜정(배구)|조혜정]] / 딸 조윤희, 조윤지 || || 투타 || 우투우타 || || 포지션 || [[외야수]] || || 소속팀 || [[한일은행 야구단|한일은행]] (1969~1974) [br] 육군 야구단 (1971~1972) [br] [[롯데 자이언트]] (1975~1978) || || 지도자 || [[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|광주제일고등학교]] 감독 (1979~1981) [br] [[해태 타이거즈]] 코치 (1982~1984) [br] [[해태 타이거즈]] 감독대행 (1982) [br] [[롯데 자이언츠]] 코치 (1985~1989) [br] [[LG 트윈스]] 수석코치 (1990~1991) [br] [[삼성 라이온즈]] 수석코치 (1993~1997) [br] [[삼성 라이온즈]] 감독대행 (1997)[br] [[SK 와이번스]] 수석코치(2002~2002.08.11) [br] [[SK 와이번스/2군|SK 와이번스 2군]] 감독(2002.8.12~2002) || ||<-2><table align=center> '''한국시리즈 우승 코치''' || ||<bgcolor=#f01e23> '''[[1983년 한국시리즈|{{{#ffffff 1983}}}]]''' ||<bgcolor=#c30452> '''[[1990년 한국시리즈|{{{#ffffff 1990}}}]]''' || [include(틀:KIA 타이거즈 감독)] [include(틀:SK 와이번스 2군 감독)] [include(틀: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)] [목차] == 소개 == 프로야구 전 '''감독대행'''. 유독 감독대행이라는 말을 강조한데는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. 그의 야구 인생, 특히 지도자 인생을 보면 그렇다. == 선수 시절 == 1949년생으로 1967년과 1968년 [[경북고등학교 야구부|경북고]]가 전국대회에서 무려 다섯 번의 우승을 차지할 때, 그 주역이었다.[* 1967년 [[대통령배]], [[청룡기]] 및 1968년 [[대통령배]], [[청룡기]], [[황금사자기]]. 당시 서울에서 개최한 전국대회는 3개 뿐이라 사실상의 전관왕이라고 할 수 있다. [[봉황대기]]는 1971년에 창설됐으며 초대 우승을 경북고가 차지했다.] 함께 우승을 일군 선수가 [[임신근]]이었고, 당시 감독이 [[서영무]]였다. 그리고 3년 뒤의 [[남우식]] 시대까지 합쳐서 소위 경북고의 1차 전성기를 일군 주역이었다.[* 2차 전성기는 1970년대 중반의 [[이선희(야구)|이선희]], [[황규봉]] 시대. 3차 전성기는 1981년 3관왕[* 이 때는 청룡기, 황금사자기, 봉황대기 우승을 차지했다.] 당시 [[성준(야구선수)|성준]]과 [[류중일]]이 이끌던 멤버들.] [[고교야구]] 시절, 고교야구 역사상 최초의 끝내기 홈런의 주인공이었다. 홈런을 친 대회가 1968년 청룡기 [[경남고등학교 야구부|경남고]]와의 4강전이었으니, 팀 우승에 정말 제대로 기여한 셈. 졸업 후에는 [[한일은행 야구단|한일은행]]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, 한일은행에서 밀려난 후에는 새로 생긴 실업 팀 [[롯데 자이언트]]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. == 지도자 시절 ==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는 [[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|광주일고]] 감독으로 재직했다. 그러다가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새롭게 창단한 [[해태 타이거즈]]의 코치로 부임하게 되었다. 먼저 [[김동엽(1938)|김동엽]] 감독이 권유해서 가게 되었는데, 훗날 은사인 [[서영무]] 감독이 권유했을 때, 잠시 망설였다고 한다. 그러나 먼저 권유한 사람의 말을 따르게 되었는데, 돌아온 것은 망신뿐.. 그 결과로 빚어진 사건이 [[조창수·유남호 코치 잠적사건]]이다.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을 통해 살펴보시길. 간략히 말해 김동엽 감독은 짤리고, 그는 '''감독 대행'''에 임명되어 1982년 시즌을 소화한다. 김동엽 감독이 시즌 시작 후, 겨우 한 달도 채 되지 않아서 물러났기 때문에 사실상 그가 감독 역할을 했다. 그러나 정식 감독으로는 임명되지 못하고 [[김응용]] 감독이 부임하면서 다시 코치로 돌아갔다. 이후 강병철을 따라 롯데로, 다시 백인천을 따라 LG로 가서 코치 생활을 하다가 1993년에 [[우용득]]이 [[삼성 라이온즈]]의 새 감독으로 부임하자 수석코치로 임명된다. 그리고 감독이 교체되었음에도 유임되어, 1997년 뇌출혈로 [[백인천]]이 입원했을 때, 1차로 '''감독대행'''으로 팀을 지휘한다. 그리고 퇴원한 [[백인천]] 감독이 다시 시즌 도중 신인급 투수인 전병호를 때리고 그냥 집에 가는 초유의 상황이 나오면서[* [[전병호]]의 빰을 때리고 집에 갔다는 사건이다. 뒷날 뇌출혈과 스트레스로 도저히 감독직을 수행하기 힘들어서 자진 사임했다고는 하는데, 롯데 감독으로 다시 부임한 것을 보면,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 하다. 그러나 롯데 감독으로 부임하던 2002년까지 5년의 공백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어찌어찌 병세가 회복된 모양이다.] 결국 남은 시즌 동안 두 번째로 '''감독 대행'''으로 팀을 지휘하게 된다. 감독대행으로 경력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. 1997년 준PO에서는 [[김성근]]의 [[쌍방울 레이더스|쌍방울]]을 눌렀고, 객관적인 전력에서 뒤진다는 평을 받았던 [[LG 트윈스|LG]]와의 PO에서도 2승 3패로 상당히 선전했다.[* 사실 2연패 뒤 2연승을 기록했고, 5차전에서도 6회까지 2-0으로 앞서 [[리버스 스윕]]을 눈앞에 두고 있었는데, [[김영진(야구)|김영진]]이 [[포일(야구)|포일]]을 시전한 것을 시작으로 폭풍 7실점(...)하면서 역전패하면서 2승 3패가 된 것이었다.][* 여기서 발목을 제대로 잡힌 통에 LG는 정규시즌에서 불과 1.5게임차로 뒤졌던 해태와의 한국시리즈에서 1승 4패로 맥없이 물러난다.]그래서 시즌 종료 후, 새 감독 선임 과정에서 당연히 신임 감독으로 유력했지만, 그리고 스스로도 정식 감독으로 올라간다고 알고 있었지만, 결국 정식 감독에 오르지 못했다. [[서정환]]에게 밀렸는데, 이유는 서정환이 해태 시절 우승을 많이 해서 한국시리즈에 약한 팀 체질을 개선시킬 적임자라고 했다던가[* 그 외에도 플레이 오프에서 잘 던지던 박동희를 강판시키고 성준을 올려 서용빈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 패하는 어이없는 투수교체가 감독으로 승격되지 못한 원인인듯 하다.].~~그러나 조창수는 광주일고, 해태, 롯데, LG에서 모두 한번씩 우승했다는 게 함정~~ 물론 그 뒤의 역사는 [[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.]] 결국 '''감독대행만 세 번하고,''' 정식 감독에는 오르지 못했다. 감독대행 직에서 물러난 뒤, [[SK 와이번스]]의 수석코치와 2군 감독, 모교 [[경북고등학교 야구부|경북고]]의 감독을 지냈다. 그리고 그 뒤로는 완전한 야인으로 지내고 있다. 근래 나오는 뉴스는 부인과 두 딸에 관한 뉴스에 같이 취급되는 정도다. == 가족관계 == * 부인은 [[1976 몬트리올 올림픽]] 여자 배구 동메달의 주역이자, 나는 작은새로 불리며 명성을 떨친, 전 [[GS칼텍스 서울 KIXX]] 감독인 [[조혜정(배구인)|조혜정]]이다. 두 사람이 만난 것은 당시 여자 배구 실업팀 숙소 근처가 [[동대문운동장]]이라 야구선수인 조창수가 [[조혜정(배구인)|조혜정]]을 자주 찾아오면서부터였다고 한다. ~~아마 먼저 꼬신듯?~~[* 조창수 감독이 4살 연상이다. 이 정도면, 원래 남자가 먼저 들이대지 않던가.] 야구선수-배구선수 커플은 조창수-조혜정 커플이 처음.[* 이후 [[이재우]]-[[이영주(배구)|이영주]] 커플이 두번째 야구-배구 부부가 된다.] * 두 딸은 현재 프로골퍼로 활동 중이다. 언니인 조윤희는 결혼을 한 주부골퍼이고, 동생인 조윤지는 KLPGA에서 2010년 첫 우승을 차지하면서 주가를 올리며, 2010년 KLPGA 신인상에 올랐다. 참고로 조윤희의 남편, 그러니까 맏사위인 김현진도 프로골퍼다. * 야구선수인 [[최익성]]과 사이가 안 좋은 인물 중 하나이다.(다른 한 명은 [[서정환]]) 실제로 최익성과는 남들이 이해하기 힘든 타격폼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고. 하지만 감독대행 시절에 최익성에게 어느 정도 지원을 하고 그때마다 그를 이해해 주고 다음날이면 웃는 얼굴로 맞아주는 등 서정환에 비해 최소한의 양심을 보여줬다. [[분류:대한민국의 야구 선수]][[분류:대구광역시 출신 인물]][[분류:1949년 출생]][[분류:감독 대행/야구]][[분류:외야수]][[분류:우투우타]][[분류:해태-KIA 타이거즈/역대 감독]][[분류:경북고등학교 출신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