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영국 재무장관]][[분류:1971년 출생]][[분류:런던 출신 인물]][[분류:자유보수주의자]][[분류:신보수주의자]][[분류:옥스퍼드 대학교 출신]] [목차] == 개요 == George Osborne [[보수당(영국)|보수당]] 소속의 [[영국]] 정치인이자 [[보수주의|보수]] 언론인이다. [[데이비드 캐머런]] 내각에서 재무부 장관을 맡았으며, 현재는 타블로이드 일간지인 [[이브닝 스탠더드]]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. == 생애 == [[런던]]에서 태어났다. 아버지는 오스본 & 리틀(Osborne & Little)이라는 벽지 제작 회사를 설립한 귀족 출신[* Sir Peter Osborne, 17th Baronet. 그가 사망하게 되면 오스본이 [[준남작]] 작위를 물려받아 18th Baronet이 될 것이다.]의 사업가이고, 어머니는 [[헝가리]]에서 태어난 [[유대인]]이다. 원래 이름은 기디온(Gideon)이었는데, 해당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13살에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조지로 개명했다고 한다. 이 후 오스본은 [[옥스퍼드 대학교]]에 진학하여 현대사를 전공하였다. 옥스퍼드 대학의 상류층 클럽인 벌링던 클럽[* Bullingdon Club.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와 [[보리스 존슨]] 현 총리 또한 해당 클럽의 멤버였다.]에 가입하기도 했다. 대학을 졸업한 오스본은 영국의 대표적인 [[우파]] 성향 신문사인 [[데일리 텔레그래프]]에 입사하였다가, 얼마 후에 보수당 당직자로 일하게 되었다. 당직자로서 오스본은 당시 보수당의 대표를 맡고 있었던 [[윌리엄 헤이그]]를 보좌하였다. 뛰어난 문필력의 소유자였던 오스본은 헤이그의 연설문들을 주로 작성하였으며, 덕분에 오스본은 당 지도부의 인정을 받아 2001년 총선에 보수당 후보로 공천되어 국회의원에 당선된다. 당시 오스본은 30세의 나이로 2001년 총선 당선자들 중에 최연소였다. 이 후 오스본은 당시 당 내 소장파들의 리더 격이었던 데이비드 캐머런의 심복이 되었고, 캐머런이 보수당 대표로 당선된 2005년에 [[그림자 내각]]의 재무부 장관으로 영전된다. 2010년에 치러진 [[제55회 영국 총선]]에서 보수당이 승리하면서,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내각에 그대로 재무부 장관에 임명된다.[* 공교롭게도 오스본이 당직자 시절 모셨던 윌리엄 헤이그가 외무부 장관에 임명된다.] 당시 영국은 [[대침체|글로벌 금융위기]]로 인해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고 있었다. 하지만 캐머런 총리와 오스본 장관의 [[경제적 자유주의]]에 기반한 감세, 규제완화 등 일련의 기업친화적인 경제정책들은 [[영국/경제|영국 경제]]를 성공적으로 회복시켰으며, 이러한 경제 성과 덕분에 보수당은 [[제56회 영국 총선]]에서 단독 과반이라는 쾌거를 이루어냈다. 이 후 캐머런 2기 내각에서도 오스본은 재무부 장관으로 유임되었고, 추가로 선임 장관[* First Secretary of State]에까지 임명되면서 명실상부한 캐머런 내각의 2인자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.[* 1기 캐머런 내각은 보수당-[[자유민주당(영국)|자민당]] 연정이었기 때문에, 1기 내각의 공식적인 서열 2위는 자민당 대표 겸 부총리였던 닉 클레그이다. 보수당 각료들로 한정해도 1기 내각의 선임 장관은 윌리엄 헤이그였기 때문에 서열 3위에 그친다.] 덕분에 오스본은 캐머런의 뒤를 이을 유력한 차기 총리 감으로까지 거론되기도 하였다. 하지만 [[브렉시트]] 국민투표 과정에서 오스본은 캐머런과 함께 잔류파의 핵심 인사로 활동하였고, 이 때문에 해당 국민투표에서 탈퇴로 결정되자 정치적 치명상을 입게 되었다. 결국 오스본은 캐머런과 함께 각료직과 의원직에서 사퇴하면서, 사실상 정계를 은퇴한 상태이다. 현재는 테블로이드 일간지인 [[이브닝 스탠더드]]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. [[크리스틴 라가르드]]가 차기 유럽은행총재에 지명됨에 따라 재무장관을 지낸 오스본이 [[IMF]]의 총재 후보에 올랐다. == 여담 == 프랜시스 호웰(Frances Howell)이라는 여성과 결혼하여 2명의 자녀를 두었다. 현재는 이혼한 상태이다. [각주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