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다른 뜻1, other1=미국의 작가, rd1=조지 R.R. 마틴)] [include(틀:대영제국 훈장(기사작위 수훈자들-남자))] [include(틀:비틀즈)] [include(틀:역대 그래미 공로상 수상자)]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220px-George_Martin_-_backstage_at_LOVE.jpg]] '''조지 마틴''' [[기사작위|Sir]] George Martin, [[대영제국 훈장|CBE]] ([[1926년]] [[1월 3일]] ~ [[2016년]] [[3월 8일]]) (향년 90세) [목차] == 개요 == [[영국]]의 전설적인 음악 프로듀서. [[비틀즈]]의 거의 모든 음반에 대한 프로듀싱을 담당했다. 음악 산업과 대중 문화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[[1988년]]에 3등급 [[대영제국 훈장]](CBE)을 받았고, [[1996년]] 기사작위(Knight Bachelor)에 서임되었다. 또 [[1999년]]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. 아들 역시 프로듀서로, 자일스 마틴이다. == 비틀즈 이전 == 조지 마틴은 정규적 수업은 받지 못했지만, [[피아노]]를 배우며 자랐다. 청소년 시절에는 "포 튠-텔러스"(Fore Tune Tellers)라는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었으며, 영화의 [[OST]] 음악을 만드는 것을 꿈으로 가지고 있었다. [[제2차 세계대전]]때 [[영국 해군]]으로 복무한 이후, 마틴은 길드홀 음악-연극 학교에 진학해 수학했다. 졸업 후 그는 [[BBC]]의 [[클래식]] 음악 부서에서 일했으며, [[1950년]] [[EMI]]에 입사하게 된다. 그는 EMI의 산하 기업이자 당시 클래식 음악 및 극 음악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던 [[팔로폰]]레코드에서 일하게 되었다. 마틴은 후에 팔로폰 레코드의 대표가 되었으며, 녹음 세션과 아티스트등을 관할하는 스태프 프로듀서도 겸임하게 되었다. [[1950년대]] 중반, [[로큰롤]]이 인기를 끌자 마틴은 팔로폰에서 활동할 록 가수를 물색하였다. 그는 몇 명의 음악가[* 이중 무명 시절의 [[게리 글리터]]도 포함되어 있다.]를 찾아 음반을 내었지만,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없었다. == 비틀즈 == [[1962년]], 여러 음반사를 찾아다니며 계약을 시도하던 비틀즈의 매니저 [[브라이언 엡스타인]]은 조지 마틴에게 비틀즈의 데모 테이프를 전해주었다. 마틴은 그 음악이 마음에 들어 했으며, 비틀즈 멤버들이 다른 것들을 연주해 보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. 마틴은 비틀즈에게 오디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며, 드러머 [[피트 베스트]]를 제외한 멤버 전원이 오디션에 통과하게 되었다. 마틴은 피트 베스트의 드럼 실력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, 비틀즈 멤버들이 새 드러머를 구하자 피트 베스트를 추방하고 [[링고 스타]]로 대신했다. 그런데 1962년 9월 11일 녹음한 앨범 버전의 "[[Love Me Do]]"는 앤디 화이트라는 전문 드러머로 연주를 했는데, 이는 당시 조지 마틴이 링고 스타 역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. 다만 싱글로 발매된 9월 4일 버전은 링고가 드럼을 쳤다. 비틀즈의 프로듀서가 된 조지 마틴은, 천재 음악인이지만 음악적으로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은 [[존 레논]]과 [[폴 매카트니]]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개발 할 수 있게 도왔으며, 비틀즈의 곡들을 깔끔하게 손질하는 편곡 역할을 하고, 악보를 볼 줄 모르는 비틀즈 멤버들을 위해 비틀즈 곡을 악보로 정리해 타 밴드와의 라이브나 공연때 전달하는 역할도 했다. 비틀즈와의 이러한 활동은 프로듀서로써의 조지 마틴을 유명하게 만들었고, 그는 EMI를 떠나 동료 프로듀서들과 함께 "Associated Independent Recording"(AIR)이라는 회사를 설립한다. 비틀즈가 해체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던 [[1969년]], 마틴은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비틀즈 멤버 간의 긴장감을 알게 되었다. 그는 비틀즈와의 작업을 거부하기 시작했고, 녹음 엔지니어나 비틀즈 멤버 스스로 그의 역할을 담당하게 했다. 하지만 마틴은 비틀즈 멤버들이 "예전처럼" 그와 일 할 것을 약속한 후에, 그들의 사실상 마지막 앨범, "[[Abbey Road]]"를 만드는 것을 도와주었다.[* 발매일 기준으로 마지막 앨범은 [[Let It Be]]다. 하지만 녹음 및 믹싱작업은 오히려 Let It Be 앨범이 먼저 Get Back이란 이름의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다.] == 비틀즈 이후 == 가장 "비틀즈"같은 비틀이었던 [[폴 매카트니]]는 [[1970년]] 비틀즈가 해체된 이후에도 조지 마틴과 몇 번 더 작업을 했다. 존 레논은 가끔 "특이한" 생각들을 음반으로 완성하기 위해 조지 마틴을 찾았으나, 조지 마틴의 스타일을 항상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. 이로 인해 그는 대부분 스스로 음악을 프로듀싱했다. [[조지 해리슨]]은 자신이 만든 곡이나 생각들이 앨범의 더 큰 흥행을 위해, 조지 마틴에 의해 거절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(후에 조지 마틴은 "나는 조지를 아꼈기에 더 엄하게 대했다"고 인정했다). 그래서 해리슨은 자신의 음반을 스스로 프로듀싱 했으며 심지어 [[애비 로드]] 스튜디오에서 몇번 작업한 이후에는 스스로 녹음 스튜디오를 설립했다. 마틴은 링고 스타의 드럼을 "아주 안정적인 비트다"라고 칭찬했으나, 비틀즈 해체 후에는 따로 활동하게 되었다. 비틀즈 해체 후 몇 년이 흐르고도 마틴은 비틀즈와, 그들이 만들었던 음악으로 작업했다. 그는 녹음된 것을 리믹스해서 재 발매 혹은 [[컴필레이션 앨범]]으로 출시했다. 몇 곡은 비틀즈의 원곡에 오케스트라를 입히기도 했으며, [[비 지스]]와 피터 프램튼이 출연했던, 영화 ''[[Sgt. Pepper's Lonely Hearts Club Band]]''의 음악 감독을 맡기도 했다. 1989년도에 [[버클리 음악대학]]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. 비틀즈 외에도 마틴은 셜리 배시, 버나드 크리빈스, [[아메리카]], [[케니 로저스(가수)|케니 로저스]], [[더들리 무어]], 리틀 리버 밴드 등과 작업했다. 그는 ''All You Need is Ears''이라는 회고록에서 그의 인생과, 그가 프로듀서를 맡았던 유명 음악들의 제작 과정 등을 설명했다. 조지 마틴은 [[1999년]]에 은퇴했으며, 이와 동시에 자신이 프로듀서를 맡았던 곡들을 모은 회고적 성격의 앨범 "[[In My Life]]"를 발매했다. 우리 시각으로 2016년 3월 8일에 [[링고 스타]]의 트위터를 통해 그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. 향년 90세. 그의 아들 자일즈 마틴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비틀즈 앨범 프로듀싱을 맡고 있다.[* 2006년 [[태양의 서커스]] OST 앨범 [[Love(앨범)|Love]]부터 참여하고 있다.] == 디스코그래피 == 아래 목록은 프로듀서로서 조지 마틴의 디스코그라피 중 중요한 음반만 추려 놓은 것이다. * 마이클 플랜더스, 도널드 스완 — [[At the Drop of a Hat]] (1960) * [[비틀즈]] - [[Please Please Me]] (1963) * [[비틀즈]] - [[With The Beatles]] (1963) * 마이클 플랜더스, 마이클 플랜더스드 스완 - [[At the Drop of Another Hat]] (1964) * 마이클 플랜더스, 마이클 플랜더스드 스완 - [[Bestiary of Flanders & Swann]] (1964) * [[비틀즈]] - [[A Hard Day's Night]] (1964) * [[비틀즈]] - [[Beatles for Sale]] (1964) * 게리 엔 더 페이스메이커스 - [[Ferry Cross the Mersey]] (1965) * [[비틀즈]] - [[Help!]] (1965) * [[비틀즈]] - [[Rubber Soul]] (1965) * [[비틀즈]] - [[Revolver]] (1966) * [[비틀즈]] - [[Sgt. Pepper's Lonely Hearts Club Band]] (1967) * [[비틀즈]] - [[Magical Mystery Tour]] (1967) * [[비틀즈]] - [[The Beatles]] (1968) * [[비틀즈]] - [[Yellow Submarine]] (1969) * [[비틀즈]] - [[Abbey Road]] (1969) * [[링고 스타]] - [[Sentimental Journey]] (1970) * 폴 윈터 콘소트 - [[Icarus]] (1973) * [[아메리카]] - [[Holiday]] (1974) * [[제프 벡]] - [[Blow by Blow]] (1975) * [[아메리카]] - [[Hearts]] (1975) * [[아메리카]] - [[Hideaway]] (1976) * [[제프 벡]] - [[Wired(음반)]] (1976) * 지미 웹 - [[El Mirage]] (1977) * [[아메리카]] - [[Harbor]] (1977) * 게리 브루커 - [[No More Fear of Flying]] (1979) * [[칩 트릭]] - [[All Shook Up]] (1980) * 울트라복스 - Quartet(1982) * [[폴 매카트니]] - [[Tug of War]] (1982) * [[폴 매카트니]] - [[Pipes of Peace]] (1983) * [[폴 매카트니]] - [[Give My Regards to Broad Street]] (1984) * 로리 런던 - He's Got the Whole World in His Hands (1984) * 앤디 릭 - Say Something (1990) * [[폴 매카트니]] - [[Flaming Pie]] (1997) * [[셀린 디온]] - [[Let's Talk About Love]] (1997) * 조지 마틴 - In My Life》 (1998) * [[비틀즈]] - [[Love(비틀즈 음반)|Love]] (2006) [[분류:프로듀서]] [[분류:영국의 작곡가]] [[분류:1926년 출생]] [[분류:2016년 사망]][[분류:대영제국 훈장 3등급]] [[분류:비틀즈]][[분류:영국의 기사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