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파일:external/tv03.search.naver.net/201003291157188261.jpg|width=150]] 趙鍾昊 [[1921년]] [[12월 22일]] ~ [[2010년]] [[3월 25일]] [[대한민국]]의 전 [[정치인]]이다. 호는 약송(若松)이다. 형 [[조종승]]도 [[대한민국 국회의원|국회의원]]이었다. [[종교]]는 [[불교]]이다. 1921년 [[충청북도]] [[단양군]] 어상천면에서 태어났다. [[국민대학교]]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[[8.15 광복]] 후 [[한국민주당]]에 참여하였다. 이후 공무원이 되어 [[단양군]]에서 면장, 면의회 의원 등을 지냈다. 1954년 [[제3대 국회의원 선거]]에 [[무소속]]으로 충청북도 단양군 [[선거구]]에 출마했다가 낙선하였다. 1958년 [[제4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. 1959년에는 [[민주당(1955년)|민주당]]에 입당할 뜻을 내비쳤다가 [[자유당]]에 입당하였다. 1960년 [[제5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는 [[헌정동지회]]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. 1960년 [[3.15 부정선거]]에 관여하였다는 이유로 [[대한민국 국회]]에서 공민권 제한 심사 대상이었으나 제한되지는 않았다. 1961년 [[5.16 군사정변]] 이후 [[윤보선]]의 비서 역할을 하였다. 1963년 [[제6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부터 1971년 [[제8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까지 각각 [[민정당]], [[신민당(1967년)|신민당]], [[국민당(1971년)|국민당]] 후보로 충청북도 [[제천시|제천군]]-단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. 1973년 [[제9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민주통일당]]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-중원군-제천군-단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[[민주공화당]]의 복수공천을 받은 [[이해원(1930)|이해원]], [[이종근(1923)|이종근]]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. 1978년 [[제10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[[충주시]]-중원군-제천군-단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이종근 후보와 신민당 [[이택희]]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.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에 선출되었다. 이후 [[민주정의당]]에 입당하였다. 1981년 [[제11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[[서울특별시]] [[동작구]] 선거구에 출마하여 [[민주한국당]] [[서청원]]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. 1985년 [[제12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동작구 선거구는 [[허청일]]에게 돌아가고 대신 민주정의당 [[전국구]] [[대한민국 국회의원|국회의원]]으로 당선되었다. [각주] [[분류:단양군 출신 인물]][[분류:1921년 출생]][[분류:한양 조씨]][[분류:2010년 사망]][[분류:제4대 국회의원]][[분류:제5대 민의원의원]][[분류:제11대 국회의원]][[분류:제12대 국회의원]][[분류:무소속 국회의원]][[분류:자유당 국회의원]][[분류:민주정의당 국회의원]][[분류:국민대학교 출신]][[분류: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