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다른 뜻1, other1=1972년 출생의 교수, rd1=조정훈(1972))] * [[정치인/목록]] [[파일:external/rokps.or.kr/370.jpg|width=150]] 趙定勳 1914년 ~ 1987년 10월 1일 [[대한민국]]의 전 [[정치인]]이다. 호는 학산(鶴山)이다. 1914년 [[전라북도]] [[남원시|남원군]]에서 태어났다. [[경성부]] 사립 중동학교(현 [[중동고등학교]])를 졸업하였다. 1935년 전라북도 남원군 남원읍 [[요천]]강변에 있는 금수정이라는 [[정자]]의 [[http://www.sjbnews.com/news/articleView.html?idxno=446853|현판을 썼다]]. [[8.15 광복]] 후 [[대한독립촉성국민회]] 남원군 지부장, [[대동청년단]] 남원군 단장을 지냈다. 1948년 [[제헌 국회의원 선거]]에서 대동청년단 후보로 전라북도 남원군 [[선거구]]에 출마하였으나 조선민족청년단 [[이정기(정치인)|이정기]]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. 1950년 [[제2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무소속]]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[[지역구]] [[대한민국 국회의원|국회의원]]인 [[민주국민당]] 이정기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. 이후 [[자유당]]에 입당하였다. 1954년 [[제3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양영주에게 [[자유당]] [[공천]]에서 밀리자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양영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. 1958년 [[제4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민주당(1955년)|민주당]] 후보로 전라북도 남원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자유당 양영주 후보에 설욕하고 당선되었다. 같은 해 민주당 중앙위원에 임명되었다. 그러나 1959년 민주당을 탈당하여 자유당에 복당하였다. 1960년 [[제5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[[사회대중당]] [[박환생]]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. 1961년 [[3.15 부정선거]]에 가담하였다는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. 1966년 [[신한당]]에 몸담았다. [[분류:남원시 출신 인물]][[분류:제2대 국회의원]][[분류:제4대 국회의원]][[분류:무소속 국회의원]][[분류:민주당(1955년) 국회의원]][[분류:자유당 국회의원]][[분류:1914년 출생]][[분류:1987년 사망]] [[분류:중동고등학교 출신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