|| 성명 ||조응삼(趙應三) || || 본관 ||[[한양 조씨]] || || 생몰 ||[[1875년]] [[8월 14일]] ~ [[1956년]] [[6월 25일]] || || [[출생지]] ||[[충청도]] 충주목 금목면 유촌리[br](현 [[충청북도]] [[음성군]] 금왕읍 유촌리)[* 인근의 삼봉리·유포리와 함께 [[한양 조씨]] 집성촌이다.] || || 사망지 ||[[충청북도]] [[음성군]] 금왕읍 유촌리 || || 추서 ||건국훈장 애국장 || [목차] == 개요 == 한국의 [[독립운동가]], [[의병장]].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. == 생애 == 조응삼은 1875년 8월 14일 충청도 충주목 금목면(현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) 유촌리에서 태어났다. 그는 1907년 8월 23일 [[정봉준]] 의병대에 가담했으며, 13도 연합 의진이 구성되고 있을 때 100여 명의 의병과 함께 총기를 가지고 지평, 원주 등지에서 9월 중순까지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일본군에게 체포되었다. 그가 체포된 직후 그의 부대는 [[이인영(독립운동가)|이인영]]의 연합 의진 휘하에 귀속되어 서울 진공 작전에 가담했다. 조응삼은 체포된 뒤 공주 지방 재판소로 압송되어 폭동죄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공주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. 이후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56년 6월 25일에 사망했다.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조응삼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,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. [[분류: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]][[분류:한국의 독립운동가]][[분류:조선 의병장]][[분류:한양 조씨]][[분류:음성군 출신 인물]][[분류:1875년 출생]][[분류:1956년 사망]][[분류:건국훈장 애국장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