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http://terms.naver.com/entry.nhn?docId=1727044&cid=49283&categoryId=49283]] [[고구려]] 쌍영총 기마도의 조우관을 쓴 고구려인 [[파일:attachment/조우관.jpg]] '''조우관(鳥羽冠)''' [[고구려]], [[백제]], [[신라]] 등 [[삼국시대]] [[한반도]]에서 공통적으로 쓰인 관모 형식.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변형모[* 삼국시대의 보편적인 고깔모자.]에 [[새]]의 [[깃털]]을 꽂아 장식한 [[http://terms.naver.com/entry.nhn?docId=1064416&cid=40942&categoryId=32094|관모]]다. 절풍모의 관모 부분과 조우 부분으로 나뉜다. 대개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이들이 썼는데, 작은 모자같은 것을 머리위에 올리고 양 옆에 깃털을 꽂아 턱아래로 줄을 묶어 썼다고 한다. 초기에는 여러가지 깃털을 사용한 천연 깃털 양식이 쓰인 것으로 보이는데 시대가 흐를 수록 고위 [[귀족]]들 사이에 금속제 양식의 조우관이 쓰였다. 이런 금속제 양식은 삼국 중 [[신라]]에서 주로 쓰였다. 조우관은 회화로도 모두 그 모습이 남아있는데, 고구려의 [[쌍영총]]과 [[무영총]] 고분벽화에서 조우관을 쓰고 말을 달리는 모습이 확인되며, 백제는 양직공도에 조우관을 쓴 백제 사신의 그림이 있으며, 신라는 1971년 중국 섬서성박물관이 발굴한 예빈도 그림에서 조우관을 쓴 신라 사신이 그려져 있다. [[삼국]]에서 공통적으로 쓰인 관모라는 점도 재밌지만, 이 시기 한반도인들이 관모를 깃털로 장식한 이유는 과거 [[유목]]민족이 [[새|조류]]숭배를 한 [[샤머니즘]]적 요소가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. 머리를 깃털로 장식한 것은 [[동북아시아]] 북방 민족들에게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모습이라고. 참고로 [[코에이]]에서도 [[여포]]에게 항상 이 조우관 비스무리 한 것을 씌운다(...)[* 중국내부에서 그려진 여포그림이 원조다] 모자의 형태는 계속 바뀌었고 신라 중대부터는 관복을 중국식으로 바꿨다는 기록도 있지만 그 뒤에도 관모를 새의 깃털로 장식하는 것은 계속했던 것으로 보이는데, 중국에서 발견된 당나라 황태자 이현(李賢, 654~684)의 무덤 벽화 예빈도에서 신라 사신이 조우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. [[파일:external/www.kocis.go.kr/15897791580_f50358b9ef_c.jpg]] [[파일:external/www.kocis.go.kr/Afrosiab_Wall_Painting_NMK_Article_00.jpg|width=400]] 7세기 중반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[[우즈베키스탄]] [[사마르칸트]]의 아프라시압 궁전 [[벽화]]에서 조우관을 쓰고 [[환두대도]]를 찬 사신들이 발견돼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, 일반적으로 [[고구려]] 사신설로 알려져 있지만 [[환두대도]]나 조우관이나 삼국 공통 양식이다보니 [[신라]] 사신설도 존재한다.[[http://www.hani.co.kr/arti/culture/culture_general/382724.html|#]] 고구려 사신설로 본다면 그 시기상 아무래도 [[연개소문]] 집권당시 [[당나라]]를 견제하기 위해 보낸 밀사가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. 왠지 [[삼국시대]] 배경의 [[사극]]에서는 조우관을 쓴 인물들을 보기 힘든데, 실제 큰 새의 [[깃털]]을 사용해야 하는 조우관 소품의 제작과 장기적인 관리가 까다로운 점이 가장 큰 이유인듯 하다. 그래서 그냥 [[상투]]를 들고 [[이마]]에 두건을 두르는 걸로 처리하거나 중국식 관모나 쓰개를 쓰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. [[KBS]]사극 [[삼국기]]에서도 엑스트라들이 잠깐 착용했었다. [[파일:external/img.kbs.co.kr/068006133_L.jpg]] [[KBS]]사극 [[대조영(드라마)|대조영]]에서 초기에 잠깐 나왔다. [[고사계]]와 요동출신들이 이 조우관을 잠깐 착용했다. [[MBC]] 사극 [[계백(드라마)|계백]]에서 [[김춘추]]가 이 조우관을 쓴 모습이 몇차례 나오기는 했다. 또한 초기에는 백제의 관모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재현해서 사용하는 모습이 보여 호평을 받았으나, 중후반대 이후로 자본의 압박인지 중국식 상투쓰개를 사용한다(…) 다행히 [[제왕의 딸 수백향]]에서 다시 상당수준으로 고증된 백제 관모와 금동관모가 등장해 중국식 상투쓰개 일색이던 고대사 사극에서 후술할 근초고왕, 대왕의 꿈과 더불어 좋은 선례를 남겼다. ||[[파일:/image/076/2011/03/04/2011030401000424000024222.jpg|height=500]]||[[파일:external/img.etoday.co.kr/20121231023524_252315_450_797.jpg|height=500]]|| ||근초고왕에 등장한 오라관||대왕의 꿈에 등장한 조우관|| [[근초고왕(드라마)|근초고왕]]과 [[대왕의 꿈]]에서는 지위 높은 주,조연들이 하나같이 조우관을 포함한 삼국시대 관모를 쓰고 나오는 개념있는 고증을 선보였다. 중국식 상투쓰개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그간 변형모 자체가 등장조차 하지 않던 사극에 비하면 월등한 고증이라고 볼 수 있다. [각주] [[분류:삼국시대]][[분류:모자]][[분류:한복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