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목차] == 개요 == [[삼국유사]] 제3권 탑상(塔像)편에 실린 대표적인 '''꿈 이야기'''로, 조신몽(調信夢), 조신지몽(調信之夢)이라고도 한다. 우리 고전문헌에서 일장춘몽 속의 허무한 인생을 그린 '''원조 격''' 작품이니, 중국의 [[한단지몽]], [[남가일몽]]에 못지 않게 우리 조상님들 또한 꿈 이야기에 일가견이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. 이 플롯은 우리 국문학사상 전기체(傳奇體) 소설의 효시라 일컫는 [[조선]]시대 매월당 [[김시습]]의 [[금오신화]]에 실린 <용궁부연록(龍宮赴宴錄)>에서도 그 편린을 엿볼 수 있다. 조선 중-후반기에 이르러 [[꿈 결말]]과 [[모에속성]]을 가미하여 완성도를 높인 작품이 서포 [[김만중]]의 [[구운몽]] 되시겠다. 하지만 꿈 속에서는 세속적 욕망에 매우 충실하고 일장춘몽은 그저 형식적 교훈으로만 보이는 후대의 몽자류 소설과 달리, 조신의 꿈은 [[불교]]적인 주제를 잘 담은 비극적인 작품이다. == 내용 == ||주인공은 [[신라]]의 [[승려]] 조신(調信). 조신은 본디 세달사(世達寺)[* [[삼국유사]] 판본 중에는 세규사(世逵寺)라고 쓴 것도 있으나, 다른 판본들과 비교해보면 규(逵)는 달(達)을 잘못 쓴 것이다. 절 이름은 세달사가 맞는다. 하지만 삼국유사으 ㅣ판본 중 '세규사'라고 쓴 것도 있으므로 인터넷에서도 표기가 세규사/세달사로 엇갈린다. [[고려시대]]에는 흥교사(興敎寺)라고 불렀는데, [[궁예]]가 집을 떠나 처음으로 출가한 절이다. 후에 폐사가 되어 잊혀졌으나, 2012년에 [[강원도]] [[영월군]]에서 터가 발굴되어 위치가 확인되었다.]에 있었는데, 절의 장원(莊園)이 명주(溟洲 현 [[강릉시|강릉]])에 있었으므로 파견되어 장원을 관리하였다. 조신은 명주 태수[* 太守, 옛날 중국의 지방관(地方官)을 이르는 말로 한국과 일본도 한때 이 관직명을 사용했었다.] 김흔(金昕, 803-849)의 딸을 보고 한눈에 반하여 [[낙산사]] [[관세음보살]]상 앞에서 그 여인과 맺어지게 해주십사 하고 남몰래 기도하였다.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록 연분이 맺어지기는커녕 다른 남자와 혼사가 정해졌다는 소문이 들릴 뿐이었다. 조신은 밤중에 불당에서 관세음보살을 원망하며 눈물을 흘리다가 그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. 그런데 웬일인가, 사모하던 낭자가 제 발로 절에 나타나 불당 문을 열고 조신을 찾아오지 않는가. 김씨 낭자 또한 부모가 정한 혼처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, 우연히 만난 조신에게 연정을 품고 과감히 집을 나온 것. 그리하여 두 사람은 그대로 도피하여 부부의 연을 맺고 가정을 일구었다. 두 남녀는 40년간 같이 살면서 자식들 5명을 낳았으나 집은 서발 장대 거칠 것이 없는 판이었다. 나중에는 그 보잘것없는 누옥도 잃고 온 가족이 함께 떠돌아다니며 구걸로 먹고 살기를 10년간 했다. 어느 날 해현령(蟹峴嶺) 고갯길을 넘어가는데 15살 된 큰아이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죽자, 부부는 대성통곡을 하며 시신을 길 옆에 묻었다. 그 뒤 남은 가족들이 우곡현(羽曲縣)에서 풀을 엮어 집으로 삼아 구걸로 먹고 살았다. 부부는 늙어서 움직이기도 힘든데, 어느 날 10살 된 딸이 마을에서 구걸을 하다가 [[개]]에게 발목을 물려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. 부부가 이 꼴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여 눈물을 흘리는데 아내가 침중하게 입을 열었다. "제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는 아름답고 젊었으며 의복도 깨끗했습니다. 콩 한쪽이라도 나누어 먹으며 함께 살아온 세월이 벌써 50년이니 참으로 깊은 인연입니다. 그러나 병은 깊어가는데 굶주리며 추위에 떨기를 피할 수 없으니, 이제는 보잘것없는 음식이라도 제대로 빌어먹지도 못하여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. 아이들이 이런 꼴을 당해도 돌보지도 못하는데 언제 부부의 즐거움을 즐길 수 있을까요? 아름다운 얼굴이며 밝은 웃음도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지고, 난초처럼 향기로운 언약도 바람에 흩날리는 버드가지처럼 지나갔습니다. 이제 생각해보니, 예전의 기쁨이 바로 근심의 뿌리였습니다. 다 함께 굶어죽기보다는 서로 헤어져 상대방을 그리워함만 못할 것입니다. 좋다고 취하고 나쁘다고 버림은 사람 마음에 차마 할 짓이 못 되지만, 인연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, 헤어지고 만남에도 명이 따르는 것이지요. 바라건대 이제 헤어집시다." 조신은 아내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각자 아이들을 둘씩 데리고 헤어지기로 하였다.[* 헤어지자고 말하는데 기뻐하다니, 아무래도 힘들게 살아오면서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져버린 듯하다.] 떠나기 전에 아내가 말하였다. "저는 고향으로 갈 테니 당신은 남쪽으로 가십시오." 두 사람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헤어지려는데 조신이 꿈에서 깨어났다. 새벽빛이 희뿌옇게 밝아오는데 머리카락과 수염이 [[마리 앙투아네트 증후군|새하얗게 세어버렸다]]. 마치 한평생의 희노애락을 모두 겪은 듯 세상사에 뜻이 사라지고 재물에도 관심이 없어졌다. 또한 자기 앞에 있는 관세음보살상을 바라보기가 부끄러웠다. 조신이 돌아가는 길에 꿈 속에서 큰아이를 묻은 곳에 들러 땅을 파보았더니 돌[[미륵]]이 나왔다. 조신은 미륵상을 물에 씻어 가까운 절에 봉안하고 세달사로 돌아와 소임을 내려놓은 뒤, 정토사(淨土寺)를 세우고 부지런히 선행을 하며 살았다. 이후 조신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.||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조신이라는 사람이 스님으로 살다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는데, 운 좋게 그 여자도 조신에게 호감이 있어서 둘은 사실상 [[야반도주]]를 해 가정을 꾸렸다. 하지만 밑천 없이 대충 가정부터 만들었으니 둘 다 가난에 허덕이며 수십 년간 살다 끝내 첫 아이까지 잃고, 자식들은 구걸로 먹고 살다가 개한테 물리는 지경에 처한다. 조신 부부는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서로가 만남이 바로 고통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하고 [[이혼]]하기로 한 것. 근데 여기까지 [[꿈 결말|전부 다 꿈]]이었고, 조신은 깨달음을 얻어 속세에 관심을 잃은 후 다른 절(정토사)을 세우고 선행을 베풀며 살다 어찌 되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. 과연 [[불교]]에 기반을 둔 삼국유사의 집필취지에 부합하는 불교식 교훈과 결말로 끝난 이야기라 하겠다. == 기타 == 춘원 [[이광수(소설가)|이광수]]가 이 작품을 대단히 좋아해서 중편소설 [[꿈]]을 썼다. 이 소설의 배경은 똑같이 신라시대지만 [[TV 문학관]]에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바꾸어 방송하였는데, 각색을 대단히 잘했다고 평가받는다. 마지막에 나오는 훈남이 [[임성민]]. [[신상옥]] 감독은 이광수의 소설 <꿈>을 굉장히 좋아해서 <꿈>을 두 차례나 영화화했는데, 1954년에는 [[최은희]]와 황남 주연이었고, 1967년에는 [[신영균(배우)|신영균]]과 김혜정 주연이었다. [[배창호]] 감독도 1990년에 <꿈>을 영화화했지만, 이광수 소설보다는 삼국유사를 원작으로 했다. [[안성기]]와 [[황신혜]] 주연이고 [[정보석]]과 [[최종원]], [[윤문식]]도 나온다. 시나리오는 배창호 감독과 [[이명세]] 감독이 같이 썼다. 현실-꿈-현실의 플롯을 가진 소설이 후에 금오신화를 포함해서 많이 등장하고 [[구운몽]]에서는 확연히 오마주를 담은 것을 볼 때, 이 이야기는 당시에 사회에 큰 충격을 준 듯하다. 태수 김흔의 생몰년을 볼 때, 이 이야기는 9세기 초중반쯤 창작되거나 실제로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. 이 이야기가 생겨났을 시점에서 수십년이 지났을 때쯤인 9세기 말, 이야기의 배경이 된 세달사에서는 [[궁예|어떤 애꾸눈 청년]]이 출가해서 잠시 몸을 의탁하게 되고, 이 청년은 훗날 절을 떠나 [[태봉|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는데]]... 시기상으로만 보자면, 아마 그 역시 조신의 이야기를 접해서 주변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을 가능성도 있겠다. [[분류:설화]][[분류:신라의 도서]] [[분류:꿈(잠)을 소재로 한 작품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