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]][[분류:한국의 독립운동가]][[분류:건국훈장 애국장]][[분류:배천 조씨]][[분류:순천시(평안남도) 출신 인물]][[분류:1920년 출생]][[분류:몰년 미상]][[분류:경북대학교 출신/전신 학교]] ||<-2><table align=right><bgcolor=white> [[파일:조소영.jpg|width=300px]] || || 성명 ||조소영(趙宵影) || || 일본식 성명 ||白川亨吉|| || 이명 ||조형길(趙亨吉) || || 본관 ||[[조(성씨)|배천 조씨]] || || 생몰 ||[[1920년]] ~ ?[* 1944년 6월 이후임은 확실하나 정확히는 알 수 없다.] || || [[출생지]] ||[[평안남도]] [[순천시(평안남도)|순천군]] 신창면 신창리[br](현 평안남도 [[은산군]] 신창리) || || 추서 ||건국훈장 애국장 || [목차] == 개요 == 한국의 [[독립운동가]].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. == 생애 == 조소영은 1920년 평안남도 순천군 신창면 신창리(현 은산군 신창리)에서 태어났다. [[대구사범학교]]에 입학한 후, 그는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[[불교]]를 [[대승불교]]로 개혁하여 불교의 신앙으로서 강고한 정신력과 경제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, 1940년 12월 1일부터 1943년 6월 20일까지 [[대구광역시|대구부]]에서 같은 학교 학생 [[현영만]]·김병욱(金炳旭)·강증룡(姜曾龍) 등과 함께 그 결사체로서 '무우원(無憂園)'을 조직, 집행장으로서 동지 규합에 진력하였다. 또한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하여 「무우원(無憂園)」, 「문장연구(文章硏究)」, 「글공부」라는 책자를 편찬 및 인쇄하여 동지들에게 배포했으며, 활동 경비 조달을 위해 「저원(貯円)」이란 명목으로 100엔을 목표로 200엔을 적립하였다. 대구사범학교 졸업 후 [[일본]] [[도쿄]]로 건너가 아자부구(麻布區) 이마이초정(今井町)에 거주하면서도 비밀 결사 무우원의 사업을 계속 이어나가던 중, 1943년 6월에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1944년 6월 1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[[치안유지법]] 위반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언도받고[[http://theme.archives.go.kr/next/indy/viewIndyDetail.do?archiveId=0001165848&evntId=&evntdowngbn=N&indpnId=0000104583&actionType=det&flag=2&search_region=|#]]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옥사 순국하였다. 197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으며,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