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한국의 정부수립 이전 정당)] [목차] == 개요 == 1945년, [[여운형]]과 [[조선건국동맹]], [[조선건국준비위원회]] 출신 인물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중도좌익 성향의 정당. == 활동 == 1945년 말, 여운형을 주축으로 한 [[조선건국준비위원회]]는 [[미군정]]과 [[대한민국 임시정부]], [[우익]]에게 외면당하는 상태였다. 이에 여운형은 '''완전한 통일전선을 전개'''하고자 1945년 11월 12일 '조선인민당'을 창당했다. 이 정당은 [[건준]]이 [[정당]]으로 변모한 형태였기에, 강령이나 정치적 성향 및 정책은 광복 당시 건준의 그것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.[* 여운형은 이 정당의 지향을 '3강(정치, 경제, 문화) 5륜(국민皆勞(개로 : 모두가 다 일함), 국민皆兵(개병 : 모두 병역을 행함), 상호信讓(신양 : 믿고 양보함), 공공단결, 일치단결)으로 규정했다.][* 여담으로 이 당의 [[https://ko.wikipedia.org/wiki/%EC%A1%B0%EC%84%A0%EC%9D%B8%EB%AF%BC%EB%8B%B9#/media/File:Coat_of_arms_of_the_People%27s_Republic_of_Korea.svg|로고]]에는 [[태극]] 문양이 들어가 있었는데, 이는 보수우익에게도 호감을 주기 위함이었다. 웃긴건 그 로고가 [[조선인민공화국]] 국장이였다.] 조선인민당은 통일전선을 지향했기에, 좌익정당인 [[조선공산당]]에 비하면 정책이 온건한 편이었다. 물론 [[건준]] 후기에 공산주의자들의 영향력으로 인해 [[조선인민공화국]]을 선포하기는 하는 등 연관이 있었지만, 여운형과 공산주의자들은 분명히 다른 노선이었고 또 서로 간의 정치적인 갈등도 존재했었다. 그래서 여운형은 자파 세력을 규합해서 조선인민당을 창당한 것이었다. 그럼에도 여운형은 공산주의 세력과의 접촉은 계속해 나갔다.[* 당연한 것이 공산주의 세력도 통일전선 형성을 위해 끌여들여야 할 세력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. 그의 추종세력 중에도 공산주의자들이 있기도 하였다. 물론 [[조선공산당]]과 모종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자들도 적지 않았지만...] 한편 조선인민당은 중도파와 우익에게도 손을 내밀어, 노동자와 농민뿐만 아니라 [[소시민]]과 [[부르주아|자본가]]들과도 연합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. 1945년 말부터 1946년까지 조선인민당은 통일전선의 기치를 들며 정치활동을 벌였다. 하지만 조선인민당은 [[여운형]] 개인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. 여운형 개인을 중심으로 세워진 정당이었기에 다른 정치세력과 비교했을 때, 지지하는 군중은 많을지라도 동원할 수 있는 군중은 적었다. 게다가 당원들과 지지층 중에는 공산주의를 지지하고 [[조선공산당]]과 겹쳐지는 사람이 많았다.[* 그러니까 개인적으로 여운형을 존경하고 흠모하지만, 사상은 [[공산주의]]인 식이었다. 여운형은 [[공산주의]]와 분명 관계는 있었으나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. 차라리 [[사회민주주의]]나 [[민주사회주의]]에 더 가까운 사상을 가진 사람이었다.]'''분명 독자적인 정당이었지만 [[조선공산당]]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상태'''였던 것이다. 결국 조선인민당은 조선공산당과는 서로 보완하는 파트너 관계를 계속 이어나갈 수 밖에 없었다. 이후 1946년 중반이 되며 [[미소공동위원회]]가 파탄나자, 남한의 좌익세력들이 [[조선공산당]]을 중심으로 합당을 도모하면서 당내의 공산주의 세력이 대거로 빠져나가게 되며 당은 분열되고 말았다. 결국 여운형은 남은 세력들을 이끌고 다른 좌익정당의 합당 반대세력과 연합하여 [[사회노동당]]을 창당하게 된다. [[분류:대한민국의 진보정당]][[분류:사회민주주의 정당]][[분류:1945년 정당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