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youtube(xUQjjhQbGMM)] {{{+1 朝報 }}} [목차] == 개요 == [[조선시대]]의 [[신문]]으로 폭은 35cm에 길이가 일정치 않은 낱장의 [[종이]]에 [[초서]]체로 쓰인다.[* 1890년5월 프랑스인 모리스 쿠랑의 기록] 조보에 대한 기록은 [[중종(조선)|중종]] 15년(1520년)의 것이 가장 오래되었으니 적어도 중종대부터 발행된 것으로 보이며 중국에서 조보와 비슷한 매체를 일찍히 발행했다는 기록이 있다. == 상세 == [[조선왕조실톡]]에서 [[http://comic.naver.com/webtoon/detail.nhn?titleId=642598&no=168&weekday=wed|만화로 그린 조보에 대한 내용]] 보다시피 '기별'이라고도 한다. 현대적인 신문의 조건인 날짜 기록, 정기적인 정보전달, 날씨부터 다양한 기사들을 기록할 것 등등 현대 신문의 조건을 두루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. 다만 기자, 제목 이런 건 없었다고 한다. 매일 아침 [[승정원]]에서 제작 유포되었으며 임금에게 올라간 상소문이나 조정의 인사이동, [[중국]]과 [[일본]]의 소식 등 다양한 기사들이 올라갔으며 매일 아침 이렇게 작성된 조보는 임금에서부터 조정의 신하들이 볼 수 있었으며 조보의 내용을 베껴 쓴 [* 많은 양을 베껴 쓰느라 글씨를 빠르게 쓰게 되어 글씨를 잘 알아보기 힘들었다고 한다.] [[관보]]는 고위 관료와 양반계층에 한해 배달이 되었다. 관보는 먼 지방에 있는 관료나 귀양 간 선비들에게도 일주일, 한 달치 등이 모아져서 전달되기도 했으며 중요한 정보전달매체였다고 볼 수 있다. 당시에는 이미 목제 활자와 금속활자가 존재했음에도 손으로 베껴 쓴 이유는 정보의 대량 유통을 막기 위해서였다고. 조정의 소식이 외부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일부러 활자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. [* 다만 중국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조보를 발간했는데 이때는 활자를 이용해서 인쇄했다고 한다.] 어쨌거나 이러한 조보가 초서체이고 활판인쇄도 되지 않다 보니 초서체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있었다. [[선조(조선)|선조]]대인 1577년에 민간업자들이 사헌부의 허가를 얻어 민간 조보가 목판 인쇄되어 상업 발행되었는데 사대부나 글 좀 아는 백성들 사이에서 가독성이 좋은 데다가 누구나 면포 조각이나 곡물을 낸다면 [* 당시에는 쌀이나 면포가 화폐의 역할을 했다.]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큰 인기를 끌었지만, 선조가 조보의 발매가 민간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는 국가기밀의 유출을 우려, 크게 분노하며 해당 민간업자들은 죄다 [[유배]]형에 처해졌고 민간 조보 발행을 허가 낸 관료들도 좌천시키며, 민간에서의 신문제작은 3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. 이를 두고 율곡 이이가 윗대가리들은 죄다 책임을 회피하는데 급급하면서 아랫놈들만 고생한다고 대차게 깠던 적이 있었다. 조보는 근대적 신문의 최초이자 원류로 불리는 [[독일]]의 렐라치온, 아비소보다 무려 30년 먼저 앞서 발행한 것으로도 유명하다. [youtube(f1SjGXKOgCM)] 2017년 4월, [[조선]] 시대의 민간 조보가 현물로 처음 발견되었다. 이 조보는 1577년 인쇄물로 세계 최초의 상업 일간지이자 활자신문으로 경북 영천 용화사의 지봉 스님이 경매 사이트에서 입수하였다.(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hm&sid1=103&oid=055&aid=0000522693|#1]], [[http://www.tbc.co.kr/tbc_news/n14_newsview.html?p_no=20170417164142AE04433|#2]]) 원칙적으로는 위에 있는 사람만 볼 수 있었지만 몰래몰래 빼가다보니 심지어 [[오사카]]에서 조선의 과거시험 합격자를 알아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. == 현대책으로 발행 == [[국사편찬위원회]]에서 2008년에 조보 일부분을 모아 원문을 한국사료총서 제52집 세권으로 발간하였다. [[http://db.history.go.kr/item/level.do?levelId=sa_096|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]] 1859년(철종 10)부터 1892년(고종 29)까지 약 33년 간에 걸쳐 발행된 조보들로 약 1,350편이다. 다만 국사편찬위원회 도서관 소장본만 모아 발행한 것으로 타기관이나 기타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시대 조보들은 편철하지 못한 것이다. 기타 자세한 내용은 [[http://db.history.go.kr/item/level.do?levelId=sa_096_$3exp|해제 항목]]을 참조. == 기타 == || [youtube(NZk4aed6YCk)] || [youtube(xtZvTMhlrrg)] || [[조선]] 중종 때부터 시작하여 수백여년간 계속 신문을 제작해왔기 때문에 여러 황당한 에피소드도 많다고 한다. 글씨를 너무 못 써서(...) 탄핵까지 당한 기자(1600년([[선조(조선)|선조]] 33년) 이형원), 국가기밀 누설방지를 위해 이 부분은 빼라고 [[오프 더 레코드]]를 걸어놓은 기사를 몰래 게재해버린 기자(1597년(선조 30년), 1632년(인조 10년)), 중국 요동 지방이나 일본 지역까지 --친절히-- 신문을 배달해댄 일, 정치인들의 여색 관련 문제들만 미친듯이 파헤치던 기자(1612년(광해군 4년)), 임금만 볼 수 있던 탄핵상소문을 전국에 속보로 올려버린 기자(1621년(광해군 13년)), 신문기사로 이조판서까지 낙마시켜버린 기자(1569년 이조판서 박충원) 등등이 있다고 한다.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3&oid=032&aid=0002799136|[이기환의 흔적의 역사] '보도지침' '오프더레코드'를 어긴 조선의 기자]] [[분류:조선의 고문서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