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]][[분류:한국의 독립운동가]][[분류:건국훈장 애족장]][[분류:창녕 조씨]][[분류:영천시 출신 인물]][[분류:1908년 출생]][[분류:1998년 사망]] || 성명 ||<(> 조병화(曺秉華) || || 본관 ||<(> [[창녕 조씨]][* 23세손 '''병(秉)''' 병(柄) 상(相) 항렬.] || || 생몰 ||<(> [[1908년]] [[8월 18일]] ~ [[1998년]] [[1월 1일]] || || [[출생지]] ||<(> [[경상북도]] 신녕군 지곡면 현고동[br](현 경상북도 [[영천시]] 화남면 삼창리 현고마을)[* 인근의 귀호리·금호리와 함께 [[창녕 조씨]] 집성촌이다. 독립유공자 [[조재만]], [[조규설]]·[[조규창]] 전 국회의원도 이 마을 출신이다.] || || 추서 ||<(> 건국훈장 애족장 || [목차] == 개요 == 한국의 [[독립운동가]].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. == 생애 == 조병화는 1908년 8월 18일 경상북도 신녕군 지곡면 현고동(현 영천시 화남면 삼창리 현고마을)에서 태어났다. 이후 [[일본]]으로 건너갔다. 1932년 4월 일본 [[오사카]]의 계시교회에서 '삼천리 강산을 나의 무대로 삼아'라는 제목으로 동포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강연을 하다 일경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. 이후에도 계속하여 오사카 거주 한국인을 상대로 민족의식을 고취하였고, 1934년 10월에 '기독청년들아 분기(奮起)하라'라는 제목으로 연설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의 탄압을 받기도 했다. 또한 1943년 6월 일본 [[야마구치현]](山口縣) 아사(厚狹)정으로 이주하여 일제의 한국인 차별대우의 부당성을 폭로·규탄하였다. 1944년 5월에는 동포들에게 [[태평양전쟁]]의 추이와 조국독립이 머지 않음을 역설하여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고 한글보존을 위하여 활동하던 중 그해 8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. 그는 이 일로 인하여 구금되었으며 1945년 8월 21일 야마구치현 지방재판소에서 징역 2년, 집행유예 3년형을 언도받고 출옥하였다. 1982년 [[미국]]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1998년 1월 1일 별세하였다. 198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수여되었으며,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되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