趙文翽 (? ~ 696) [목차] == 개요 == [[당나라]]의 인물. == 생애 == 굳세지만 성격이 까다롭고 고집이 세서 거란 사람이 굶어도 군량을 베풀지 않았고 추장들을 노비처럼 무시했는데, 그 전에 부임한 영주도독이 유성에 치소를 두어서 해, 거란 등을 억누르면서 위로했지만 조문홰는 영주도독을 지내면서 정치를 잘못했다. [[손만영]], [[이진충]] 등이 이끄는 해, 거란 등이 불만을 품고 696년 여름 5월에 군대를 일으켜 영주를 공격하자 붙잡힌 후에 살해당했다. 조문홰가 살해당하고 영주 일대에 혼란이 일어나 [[걸걸중상]], [[걸사비우]] 등이 [[고구려]], [[말갈]]의 유민들을 이끌고 당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[[발해]] 건국의 계기가 되었다. == 창작물에서 == 드라마 [[대조영(드라마)|대조영]]에 [[최동준]]이 분했다. 극중에서 [[당나라]]의 대신으로 등장하고, 이후 영주 자사로 임명되어 그곳의 백성들에게 세금을 마구 징수하고 세금을 내지 못하면 곤장을 때리는 등 가혹한 통치를 하며, 거란족의 족장들이 목표한 세액을 징수하지 못했다면서 [[이진충]]에게 호통을 치는 태도를 보인다. 이 무렵 영주에 당도하여 백성들을 강제로 징병하던 [[이문]]이 부족한 사람은 거란인의 백성으로 채우라고 하자 조문홰는 거란인들이 [[봉기]]할 것을 우려하면서 만류하지만 이문은 오히려 [[반란]]이 일어나야 한다면서 그대로 시행해 영주에서 거란인의 봉기가 일어난다. 하지만 이 봉기 시도는 사전에 발각되어 [[이문]]에 의해 [[이진충]], [[손만영]]을 비롯한 거란의 주요 인사들이 옥에 갇혀 일단락되는 듯하지만, 이후 영주에 당도한 대조영의 군대에 의해 영주가 탈환되는 과정에서 조문홰는 붙잡힌다. 처음에는 이진충이 그를 처형하는 쪽에 무게를 두지만, [[설인귀]]가 당나라의 보복을 막기 위해 그를 당나라로 돌려 보낼 것을 설득한 끝에 이진충은 그를 돌려보내기로 합의 한다. 그러나 하북 전선에서 [[돌궐]]과의 싸움을 그만두고 영주로 돌아온 [[이해고]]가 조문홰의 송환을 반대하여 독단적으로 그를 베어 버리고, 그의 수급은 거란족 진영에서 이진충과 설인귀 앞에 모습을 드러내어 당나라와의 전쟁을 야기한다.[* 사실 이때 거란이 반란을 일으키던 시기의 당나라는 측천무후가 황제로 등극한 이후의 주나라이다.] --안습-- [[당나라]]와 측천무후의 [[주나라#s-2.4|주나라]]의 [[명재상]] [[적인걸]]을 주연으로 하는 [[중국 드라마]] 신탐적인걸 2에서는 [[주나라]]와 [[거란]]의 전쟁을 다루는 에피소드였는데, 역사와는 다르게 [[조문홰]]는 죽지않고 실은 거란족의 습격에 죽지않고 살아남아 있었고 적인걸과 수하 이원방 등의 활약으로 거란이 패배하면서 주나라가 이기고 거란이 멸족당하고 조문홰는 적인걸 일행 등과 함께 측천무후가 내린 상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역사왜곡이 이루어졌다.[* 심지어 이 드라마에서는 적인걸의 활약으로 주나라와 돌궐이 형제의 우애를 맺은 것으로 나온다!] 이는 중국 드라마의 특성인데 중국 드라마 특성상 중국의 왕조와 외세의 왕조가 맞붙는 내용을 다룰경우 실제 역사에서는 중국의 왕조가 패해도 드라마에서는 이겼다는 식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거의 대다수다. 아주 일부의 경우가 [[졌지만 잘 싸웠다]]거나 이기고 있는데 변수가 작용해서 어쩔 수 없이 졌다는 식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. 한마디로 중국식 [[정신승리]]인 셈. [각주] [[분류:생년 미상]][[분류:696년 사망]][[분류:수당시대/인물]][[분류:살해된 인물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