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1941년 출생]] [[분류:함안 조씨]] [[분류:대법관]] [[분류:대한민국의 법조인]] [[분류:하동군 출신 인물]] [[분류:동아대학교 출신]] || '''성명''' ||<(> 조무제 (趙武濟)|| || '''본관''' ||<(> [[함안 조씨]][* 29세손 '''제(濟)''' 하(河) 항렬] || || '''출생''' ||<(> [[1941년]] (79세)[br][[경상남도]] [[하동군]] 옥종면 월횡리[* [[함안 조씨]] 집성촌이다.][[http://weekly.chosun.com/client/news/viw.asp?ctcd=C09&nNewsNumb=002323100022|#]] || || '''학력''' ||<(> [[진주교육대학교|진주사범학교]] (졸업) [br] [[동아대학교]] [[법과대학]] (학사) || || '''경력''' ||<(> 제4회 사법시험 합격 공군 법무관 부산지방법원 판사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원장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창원지방법원장 부산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부산지방법원장 대법관 동아대학교 법과대학 석좌교수 부산법원조정센터 상임조정위원장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|| [목차] == 개요 == 대한민국의 [[법조인]]이자 [[교수]]이다. == 생애 == [[1941년]] [[경상남도]] [[하동군]] 옥종면 월횡리의 농민 가정에서 3남 2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. 이후 [[진주교육대학교|진주사범학교]]를 졸업하고 부산 동신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[[동아대학교]] 국어국문학과 야간과정에 진학했는데, 당시에는 군 복무를 마치지 않으면 교사로 재직할 수 없었기에 허약체질로 [[징병검사]]에서 면제를 받은 그는 결국 교직을 그만두고 동아대학교 법과대학 주간과정으로 학적을 옮기게 된다. 그러다가 동아대 법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[[1965년]] 제4회 [[사법시험]]에 합격한 뒤, [[군법무관]]으로 복무하였다. 1970년 [[판사]]로 임용되었다. [[부산고등법원]]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던 1993년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에서 신고 대상 법관 중 가장 적은 6,434만원을 신고하며 '딸깍발이 판사'라는 별칭을 얻었다. 이후 1998년 [[김대중]] 대통령에 의해 [[대법관]]에 임명되어 2004년까지 재직했다. 대법관에서 퇴직한 뒤 [[변호사]] 개업 대신 현재까지 모교인 [[동아대학교]] [[법학전문대학원]]에서 석좌[[교수]]로 후학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. == 기타 == * 앞서 기술한 대로 1993년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에서 6,434만원을 신고, 법관 중 꼴찌를 기록하며 '딸깍발이 판사'라는 별칭을 얻었다. 덤으로 대법관 지명 시 신고한 재산은 약 7,200여 만원 * 나랏돈 허비 안 된다며 비서관 두지 않고 혼자 업무를 처리하였으며 당연히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였다. * 창원지원장 승진 시 주변에서 전별금을 주자 고사하다가 끝내 전액 부산고법 도서관에 기부하였다. * 법원 조정위원 수당 많다며 자진 삭감하여 절반만 받기도 하였다. * 서울 생활 시 전세보증금 2천만원 짜리 오피스텔에 거주하였다. * [[대법관]] 퇴직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은 첫번째 대법관이기도 하다. * 로펌 등으로 가지 않고 모교인 [[동아대학교]] [[법과대학]] 석좌교수로 가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. * 그와중에 연봉 많다고 모교에 연봉 절반 기부. 거주는 모교 근처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하고 계시다고. * 퇴임 시에는 ''' '법관은 주변으로 부터 초연하려면 고독이 따르기 마련이지만, 법관은 고독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.' '''는 말씀을 남김. * 한때 국무총리 후보로 거론되기도 하였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