||||<tablealign=right><tablebordercolor=#0047a0><tablewidth=450><tablebgcolor=#0047a0>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; padding: 5px 10px; background-image: linear-gradient(115deg, #cd313a 50%, #0047a0 50%)" '''[[독립유공자|{{{#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}}}]]'''[br]{{{#FFFFFF '''{{{+1 조명하}}}[br]趙明河'''}}}}}} || ||||<#ffffff,#1F2023>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조명하.jpg|width=100%]]}}} || ||<|2><width=25%> {{{#FFFFFF '''출생'''}}} ||<#ffffff,#1F2023>[[1905년]] [[4월 8일]] || ||<#ffffff,#1F2023><(> [[황해도]] [[송화군]] 하리면 장천리[[http://w3devlabs.net/korea/archives/7404|#]] || ||<|2> {{{#FFFFFF '''사망'''}}} ||<#ffffff,#1F2023>[[1928년]] [[10월 10일]] (향년 23세) || ||<#ffffff,#1F2023><(> [[일본령 대만]] [[타이베이|다이호쿠]] 다이호쿠 형무소 || || {{{#FFFFFF '''본관'''}}} ||<#ffffff,#1F2023><(> [[함안 조씨|함안(咸安) 조씨]][* 29세손 口제(濟) 항렬. 아버지 조용우(趙鏞禹)는 28세손 용(鏞) 항렬.][[http://encykorea.aks.ac.kr/Contents/Item/E0051749|#]] || || {{{#FFFFFF '''별칭'''}}} ||<#ffffff,#1F2023><(> 일본 이름 아카가와 도미오(明河豊雄) || || {{{#FFFFFF '''학력'''}}} ||<#ffffff,#1F2023><(> 황해도 송화 풍천보통학교 중퇴[br]일본 오사카 상공업중학교[* 현재의 오사카 공립 돈다바야시 중고등학교] 상업학부 중퇴 || || {{{#FFFFFF '''이력'''}}} ||<#ffffff,#1F2023><(> [[황해도]] [[송화군]]청 판임관[* 군청서기][br]찻집 부귀원(富貴圓) 종업원 || || {{{#FFFFFF '''장지'''}}} ||<#ffffff,#1F2023><(> [[국립서울현충원]] 애국지사 묘역 || || {{{#FFFFFF '''서훈'''}}} ||<#ffffff,#1F2023><(> [[건국훈장]] 독립장 || [목차] [clearfix] 趙明河 ([[1905년]] [[4월 8일]] ~ [[1928년]] [[10월 10일]]) [목차] == 개요 == [[대한민국]]의 [[독립운동가]]이다. 특이하게도 [[한반도]]나 [[중국 대륙]], [[미국]]이 아닌 [[타이완 섬]]에서 활동하였다. 그리고 [[총]]이나 [[폭탄]]이 아닌 [[검]]을 이용해서 의거를 일으킨 것도 특이한 점. 일제 식민지였던 타이완 섬에서 [[다이쇼 덴노]]의 바깥사돈이자 [[쇼와 덴노]]의 장인, [[고준 황후]]의 친정아버지인 육군 대장 구니노미야 구니요시 왕(久邇宮邦彦王)을 처단했다. 조명하는 일본 황족을 처단하는데 성공한 유일한 한국인 독립운동가이다. == 생애 == [[황해도]] [[송화군]] 하리면 장천리 태생[[http://w3devlabs.net/korea/archives/7404|#]]으로 젊었을 때는 [[황해도]] [[신천군]] 군청서기로 근무하기도 했다. 그러나 1926년 [[6.10 만세 운동]]과 [[나석주]] 의사의 [[동양척식주식회사]] 폭탄 투척 의거를 보고 깨달은 바가 있어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. 범을 잡기 위해서는 범의 소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일단 [[일본]]으로 건너가 아키가와 도미오(明河豊雄)라는 가명을 쓰면서 [[오사카]]에서 전기제작소의 직공, [[메리야스]] 공장 노동자, 상점원 등으로 일하고 밤에는 상공전문학교를 다녔다. 그러나 일본에서 뜻을 펼 마땅한 기회가 오지 않자, [[대한민국 임시정부]]에 합류하려는 목적으로 일본을 떠났다. 1927년 11월 기착지인 [[타이완 섬]]에 도착했다가, 바로 [[상하이]]로 가는 것이 여의치 않아 [[타이중시]]에 가서 [[일본인]]이 경영하는 찻집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[[타이완 섬]]의 항일운동가들과 손을 잡고 좋은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. 처음에는 [[대만총독부]]의 총독 등 요인을 암살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답답해 하다가, 1928년 5월 [[대만]]에 주둔하던 일본군 병력인 [[대만군]]을 [[검열]]하기 위해 당시 [[천황]] [[쇼와 덴노]]의 장인([[고준 황후]]의 아버지)이자 본인도 황족인 육군대장 구니노미야 구니요시 왕(久邇宮邦彦王)이 육군특별[[검열]]사로 파견된다는 신문보도를 접하고 그를 처단하기로 결심했다. 5월 14일 [[타이중시]]에서 열린 환영식 환영인파 속에서 기다리다가 구미노미야가 탄 차에 뛰어올라 독을 묻힌 칼[* 독이 아니라 배설물을 가볍게 도포했다고도 한다. 상처에 감염증을 일으키기 쉽기 때문.]을 집어던졌고[* 조명하 의사는 임시정부 등 독립운동 조직과 직접적인 연결이 없었기 때문에 총이나 폭탄을 구할 수 없었다. 그래서 타이완의 항일운동가들에게 무술과 검술을 배웠다고 전해진다.] 현장에서 체포되었다. 목에 칼을 맞은 구니노미야는 즉사하지는 않았으나 칼에 찔린 상처에서 패혈증이 생겨 다음해 1월 죽었다. ||<tablealign=center><tablewidth=400>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AKR20200921144000089_02_i_P4_20200922050204774.jpg|width=100%]]}}}|| ||<bgcolor=#0047a0> {{{#fff '''체포 직후 촬영된 조명하의 [[머그샷|{{{#fff 머그샷}}}]]. 왼쪽은 한국 연구진이 대만에서 새롭게 발견한 사진이다.'''}}} || 조명하 의사는 1928년 7월 18일 타이완 고등법원 법정[* 현재는 대만 사법원 및 대만고등법원 건물로 쓰이나, 현재의 건물은 1934년에 준공된 건물이다.]에서 열린 특별공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[* 당시 일본에서 황족에 위해를 주는 사건은 대역죄라 하여 1심제였고 사형만이 선고될 수 있었다.], 10월 10일 [[타이베이]] 형무소[* 현재는 타오위안으로 이전했고 옛 건물은 철거, 현재 벽만 일부 남아있다.]에서 총살형으로 순국했다. 향년 24세. 이 사건으로 당시 대만 총독 가미야마 만노신이 사임했으며, 이후 당시 조선 총독이었던 [[야마나시 한조]]가 조선인 '관리' 및 후속 조치 미흡으로 사임하는 간접적인 원인이 된다. == 사후 == ||<tablealign=center><tablewidth=400>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external/c2.staticflickr.com/16798192503_d5ffd92890_h.jpg|width=100%]]}}}|| ||<bgcolor=#0047a0> {{{#fff '''[[서울대공원|{{{#fff 서울대공원}}}]]에 세워져 있는 동상[*이미지출처 [[https://www.flickr.com/photos/kwangmo/16798192503|Sony DSC-RX10, 2015년, 사진 촬영자 최광모, 공용 도메인 기증~~깨알같은 일제 카메라~~]]]'''}}} || 독립 후인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(現 독립장)이 추서되고 유해는 서울 동작동 [[국립서울현충원]]에 안장되었다. 조명하 의사의 동상이 과천 서울대공원에 있다. 주 [[타이베이]] 한국학교에도 조 의사의 동상이 있다.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001&aid=0007996903|#]] 1989년 5월 13일, [[KBS1]]에서 [[https://youtu.be/R8_ZzjCoHqA|특집드라마 '조명하']]를 방영하였다. 극본은 이상현, 연출은 최상현 PD였고 [[궁예(태조 왕건)|궁예]]와 [[김두한(야인시대)|김두한]]으로 유명한 '''[[김영철(배우)|김영철]]이 조명하 의사 역을 맡았으며,''' 구니노미야 역은 최명수가 연기했다. 그 외 출연진은 [[이낙훈]], [[신구(배우)|신구]], [[연규진]], [[박원숙]], 안영주, 장희진, 고아라, [[장항선(배우)|장항선]], 김하림, 백찬기, [[이원종(1944)|이원종]], 김종구, 김창봉, [[최수종]], 서영진, 이한승, 박정웅 등이다. 2018년에는 대만 타이중에 그의 기념비가 세워졌다.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4&oid=001&aid=0010060157|관련 기사]] 2020년에 단도의 사진 등 추가 사료가 발견되었다.[[https://n.news.naver.com/article/001/0011896266?sid=104|#]] || [youtube(9hmJMcHFFlQ, width=640, height=380)] || 조명하 의사 증손 조경환씨 인터뷰 [[분류:한국의 독립운동가]][[분류:송화군 출신 인물]][[분류:1905년 출생]][[분류:1928년 사망]][[분류:총살형된 인물]][[분류:옥사한 인물]][[분류:함안 조씨]][[분류:건국훈장 독립장]][[분류:국립서울현충원 안장자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