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대한민국의 영구 미제 사건]] [[분류:국가재건최고회의 시대]] [[분류:유괴 사건]][[분류:1962년/사건사고]] [include(틀:사건사고)] [목차] [[파일:235FDC3B57E09D8B22.png]] == 개요 == [[1962년]] [[9월 10일]], [[대한민국]]에서 일어난 어린이 [[유괴]] 사건이자 '''[[대한민국 정부]] 수립 이후 최초의 영구 미제 사건'''. == 전개 == === 사라진 조두형 군 === [[1962년]] [[9월 10일]], [[서울특별시]] [[마포구]] [[공덕동]] 3-53[* 현 만리재로16길 2]에 살던 4살 조두형 군이 9시쯤 집 밖으로 놀러나갔다가 행방이 묘연해졌다. 조 군이 사라진지 사흘이 지난 후, 그의 가족 앞으로 1통의 편지가 도착했다. 편지의 내용은 ''''돈을 주면 두형이를 돌려보내 주겠다''''는 것이었다. 비로소 두형이의 유괴 사실을 알게 된 그의 가족은 경찰에 신고했다. 조 군은 마포에서 굉장히 부유했던 사업가 조 씨 집안의 2대 독자였다. 조두형은 [[1958년]]생이므로 살아 있다면, 현재 [age(1958-12-31)]~[age(1958-01-01)]세이다. === 거국적인 수사 === 금품을 노린 어린이 유괴 사건은 전례가 없던 탓에 크게 주목받았고 거국적인 수사가 진행되었다.[* 당시에는 전쟁의 영향으로 어린아이를 버리는 일은 잦았지만 유괴는 흔하지 않았다. 그리고 부모가 있는 아이는 길에서 '업어'오거나, 버려진 아이를 데려가서 키우는 경우도 있었지만 금품을 노리는 일은 드물었다.[[http://nasanha.egloos.com/11056843|참조]]] [[대한민국 경찰청|경찰]], [[대한민국 검찰청|검찰]]은 물론이고 당시 [[박정희]]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도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을 정도였다. 그 외에 [[행정자치부|내무부]], [[미래창조과학부|체신부]], [[대한민국 교육부|문교부]], [[한국전력]], 각종 언론 매체는 물론, 여성단체들까지 조 군을 찾기 위해 애썼다. 하지만 이러한 수사에도 조 군을 찾지 못하였으며, 그의 행방조차 알 수 없었다. 경찰은 ''''[[자수(법률)|자수]]한다면 관대한 처분을 내리겠다'''' 며 선처를 약속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. 1963년 5월에는 아시아레코드사 최치수 사장이, '두형이를 찾는 데에 도움을 주자'며 반야월 작사, 라음파 작곡, [[가수]] [[이미자]]가 부른 《두형이를 돌려줘요》라는 노래를 만들었다. 이미자의 슬픈 음색은 부모 심정을 담은 흐느끼는 대사와 함께, 듣는 이들의 가슴과 눈물샘을 자극했다.[[http://media.daum.net/society/people/newsview?newsid=20130909211115724|기사]] 이런 가운데 마포경찰서 앞으로 [[마산]]에서 보내진 것으로 보이는 괴편지가 도착하는가 하면, [[대구광역시|대구]]에서 조 군과 비슷한 사람을 목격했다는 제보도 들어와 경찰이 출동했지만 허탕만 쳤다. === 범인의 편지 === 첫 번째는 9월 13일, "10만 원을 삼각지로 가져오라"는 내용이었다. 6번째는 9월 15일, 돈을 보자기에 싸서 [[성북구]] 장위동 철로변의 91호 전신주 밑에 묻으라는 내용이었다. 8번째 편지는 20만 원을 요구하며, "내가 보낸 사람에게 20만 원을 주면 조 군을 10분 후에 돌려주겠다"는 것이었다.[* 당시의 20만 원이면, 현재 물가로 따지면 엄청난 수준의 금액이다. 남아있는 기록에 의하면, 1963년 9월 15일에 [[삼양라면]](100g)이 처음으로 나왔는데, 그 가격은 10원이었다. 당시에는 제법 고가였다. [[짜장면]] 15원 정도, [[커피]] 한 잔에 35원, [[김치찌개]]백반은 30원 정도. 이를 바탕으로 한 대략적인 추정은, 20만원(1963년) ≒ 5~6천만 원(2016년).] 그러나 범인은 20만 원의 몸값만 챙긴 후, 조 군을 돌려주지 않고 그대로 달아나고 말았다. [[http://media.daum.net/society/people/newsview?newsid=20130909211115724|이 기사에서는 가짜 돈이라는 말이 있다.]] == 그 후 조두형 군의 행방 == [age(1962-09-10)]년이 지난 지금도 [[진실은 저 너머에|'''모른다'''.]] 범인의 도주 직후 사력을 다해 범인을 쫓았으나, 결국 잡지 못하고 1977년 공소시효 만료로 영구 미제로 남게 되었으며, 더이상 조두형 군의 생사여부도 알 수 없게 되었다. 안타깝게도 아마 영원히 생사불명 미제사건으로 남을 것이고, 범인도 잡을 수 없을 듯하다.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, 범인은 이미 '''고령으로 인해 사망'''했을 가능성이 높다. 당시 납치범의 나이가 당시 25세라고 가정하면 1937년생으로 추정되니, 만약 생존해 있다면 현재 [age(1937-12-31)]~[age(1937-01-01)]세가 된다. 29년 후인 [[1991년]] 일어난 비슷한 사례의 [[이형호 유괴 사건]]을 감안하면, 범인은 돈을 요구하기 전에 조두형 군을 이미 죽였거나, 혹은 돈을 받은 뒤 후환을 방지하기 위해 조두형 군을 죽이고 암매장했을 가능성이 있다. 돈을 받은 뒤 이용가치가 떨어진 애를 계속 데리고 있었을 리는 없고, 어딘가에 버려 목숨만은 살려주었을 가능성도 낮다. 게다가 만약 위에 인용된 기사대로 실제로 가짜 돈이었고, 이를 범인이 눈치챘다면, 조두형 군에게 무슨 짓을 했을지 알 수 없다. 만약 범인이 돈에 미련이 많은 자라면 조두형 군에게 앵벌이를 시켰거나, 혹은 조 군을 불법입양 했을지도 모른다. 2014년 9월에는 자신이 조두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자신의 친척을 찾는다며 광고를 냈다. 2014년 10월 10일, 《[[궁금한 이야기 Y]]》에서 밝히길, 정작 [[DNA]] 검사 결과 조두형 군이 아닌 것으로 나왔다. 그리고 자기 진짜 가족을 부정하고, 자신이 조두형이라고 확신하는 [[망상]] 증상이 있는 것으로 소개되었다. 그의 형은, "어린 시절 부모님과 따로 떨어져서 살았다. 나도 부모에 대한 기억이 없는데 동생은 오죽하겠나, 싶어서 늘 안쓰럽게 생각해 왔었다"며, "IMF 때 해고당하고 처가살이를 하고, 그러면서 '언젠가는 내가 탈출해야겠다'는 생각에 자신이 조두형이라고 주장하게 된 것 같다"고 증언했다.[[http://media.daum.net/society/others/newsview?newsid=20141010150308245|기사 1]][[http://media.daum.net/entertain/star/newsview?newsid=20141010220806854|기사 2]][[http://thinkdifferent.tistory.com/7992|정리]] == 그 외 == 1년 후인 [[1963년]] 옆나라 일본에서 이 사건과 유사한 [[요시노부 유괴 살인 사건]]이 발생했다. 차이점이 있다면 요시노부 사건의 범인은 사건 발생 2년 만에 극적으로 검거되었다는 점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