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목차] == 개요 == [[파일:external/ichef-1.bbci.co.uk/_73481005_gaetjensblowupportrait-(2).jpg]] 조셉 에두아르드 게이텐스(Joseph Edouard Gaetjens, [[1924년]] ~ [[1964년]](?)[* 사망한 날짜가 아니라 실종으로 처리된 날짜이다.])는 [[아이티]] 출신 [[미국]]의 축구선수다. == 활동 내역 == 그는 아이티의 [[수도(행정구역)|수도]]인 [[포르토프랭스]]에서 태어났다. 그 이후 성인이 되자 미국으로 건너가서 [[축구선수]]를 했다. 때마침 [[1950 FIFA 월드컵 브라질]]의 출전으로 인해 축구선수가 필요해진[* 이 해에 바로 [[한국전쟁]]이 터진 바람에 주전선수들마저 전선으로 투입됐기 때문이다. 당시 미국은 [[징병제]]를 실시 중이었다.] 미국은 선수들을 되는대로 모집했는데, 불법체류자이든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사람이든 간에 이 팀에 지원하면 미국 국적을 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우면서 선수를 모집했다. 이에 게이텐스도 응해서 그날 부로 미국 국적을 얻고 [[미국 축구 국가대표팀]]의 일원으로 1950년 월드컵에 출전했다. 조별리그는 [[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]], [[칠레 축구 국가대표팀]]과 더불어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라는 [[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]]과 같은 조에 배정받았다. 첫경기 스페인전에서는 팀이 팀인 관계로 형편없는 경기력을 보인 끝에 1-3으로 털리고 말았다. 하지만 그 다음 경기인 잉글랜드전에서 '''그야말로 전설을 써내렸다.''' 잉글랜드전에서 미국팀은 시종일관 밀렸지만 실점은 하지 않고 있었다. 전반 38분경 게이텐스가 때린 단 1개의 슈팅이 이 경기에서 미국이 시도한 유일한 유효슈팅이었는데 '''그게 골인이 된 것'''이다. 관중들은 모두 눈을 의심했다. 이후 잉글랜드는 그야말로 성난 사자처럼 덤벼들었고 이로 인해 미국의 프랭크 보기 골키퍼의 그야말로 [[똥꼬쇼|환상의 선방쇼]]를 보여줘야만 했다. 프랭크 보기 골키퍼는 수십개의 달하는 잉글랜드의 유효슈팅을 온갖 방법으로 막아냈고 결국 게이텐스의 골을 지켜낸 끝에 '''잉글랜드를 격파하는 이변을 보여줬다.''' 하지만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힘을 다 쏟아부었는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칠레전에서 5골이나 헌납한 끝에 조 꼴찌로 광탈해버렸다. 하지만 게이텐스의 그 골 하나는 인구에 확실하게 회자되었다. 이후 게이텐스는 아이티로 되돌아와서 살았는데, 문제는 [[1950년대]] 말 이후로 아이티 본국은 그 악명높은 [[프랑수아 뒤발리에]] 치하였고, 게이텐스의 동생이 [[정치범]]으로 몰렸다는 것이었다. 그래서 결국 게이텐스의 다른 가족들은 미국으로 망명했으나, 게이텐스만은 "설마 그냥 운동선수일 뿐인데 어찌 하겠어?"하는 안이한 심정으로 아이티에 남아있다가 1964년에 [[비밀경찰]]에게 끌려간 뒤 행방이 묘연해졌다. 생사여부조차 아무도 알 수 없고, 사망했다면 어떻게 숨졌는지 알 수 없다. [[분류:1924년 출생]][[분류:미국의 축구선수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