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1992년 항공사고]] [[분류:노태우 정부/항공사고]] [[분류:대한민국 육군/사건사고]] [include(틀:사건사고)] ||||<table align=right><bgcolor=#00529c> {{{#fff '''항공사고 요약도'''}}} || ||<colcolor=#000000,#dcdcdc> '''발생일''' ||1992년 2월 14일 || || '''유형''' ||기상악화 || || '''발생 위치''' ||[[경상북도]] [[구미시|선산군]] || || '''기종''' ||UH-1H || || '''소속''' ||[[대한민국 육군]] || || '''기체 등록번호''' ||- || || '''출발지''' ||[[강원도]] [[홍천]] || || '''도착지''' ||[[포항시]] || ||<|2><bgcolor=#fac832,#fac832> '''{{{#black 탑승인원}}}''' ||승객: 6명 || ||승무원: 4명 || ||<|2><bgcolor=#fa4b4b,#fa4b4b> '''사망자''' ||승객: 6명 || ||승무원: 1명 || ||<|2><bgcolor=#2d7628,#2d7628> '''생존자''' ||승객: 0명 || ||승무원: 3명 || [목차] [clearfix] == 사건의 개요 == 1992년 2월 14일, 경북 선산에서 발생한 지휘관 헬리콥터 추락사건. 1992년 2월 14일 오전 9시 45분경 [[대한민국 육군|육군]] 204항공대 소속 [[헬리콥터]] UH-1H가 부대 순시를 위해 [[제7기동군단]]장인 [[대한민국 육군|육군]][[중장]] [[이현부]] [[장군]]과 동반한 [[참모]]들을 태우고 [[포항시]]로 이동하던 도중, [[경상북도]] [[구미시|선산군]] 장천면 상림리 [[마을]] 뒷편에 있는 삼정산 7부 [[능선]]에서 테일로터의 프로펠러가 분리되어 헬리콥터가 균형을 잃고 인근 [[과수원]]으로 추락했다. 이 과정에서 참모들과 [[당번병]]들은 [[군단장]]을 살리기 위해 군단장의 몸을 겹겹이 껴안았지만 대부분 [[사망]]했다. 부조종사 이수호 [[대위]]는 헬리콥터 폭발을 막기 위해 [[배터리]]를 분리하려고 시도했다. [[조종사]] 이지성 대위는 끝까지 [[조종간]]을 잡고 [[착륙]]을 시도했다. 그러나 헬리콥터는 완파되었고 탑승자는 대부분 사망했다. 이현부 장군은 [[서울특별시]]의 [[국립서울현충원]]에 안장되었으며 다른 순직자들은 [[대전광역시]]의 [[국립대전현충원]]에 안장되었다. 이후 군은 사고의 원인을 기상 불량이라고 발표했으나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대중의 관심이 그다지 기울여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. == 사망자 == * 이현부 중장(50, [[육군사관학교|육사]] 20기) - 제7기동[[군단]]장 * 허정봉 [[대령]](49, [[단기간부사관|단기]] 3기) - 군단 [[작전참모]] * 이원일 대령(50, 학군 11기) - 군단 [[군수참모]] * 노용건 대령(진)(40, [[육군사관학교|육사]] 30기) - 군단 [[감찰]]참모[* 부친 정보상세화를 위해 아들이 변경합니다. 92년 2월 진급발표, 전출예정이셨던 작전참모 후임자로 7군단 배속되셨었습니다.] * 한황진 [[소령]](32, 육사 37기) - 군단 [[비서실장]] * 서상권 [[중위]](25, 육사 45기) - 군단장 [[전속부관]] * 조규성 [[상병]](22) - 당번병 == 부상자 == * 이지성 대위(35, 3사 15기) - 조종사 현장에서는 살았지만 사고 후유증으로 사고당일로부터 1개월 후 사망했다. * 이수호 대위(진)(27, 학군 26기) - 부조종사 * 문기남 상병(22) - 당번병 == 기타 == 군단 본부대에서 사령부로 가려면 본래 덤프중대 쪽을 멀리 돌아서 가야했는데, 그것이 불편했던지 산등성이를 따라서 통신단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뚫어놓았는데, 이에 대해서 그 길을 뚫을 당시에 점쟁이가 뚫으면 안 된다고 경고를 했다는 유치한 괴담이 군단사령부 참모부 대대로 내려온다. 고참들이 야근 처음가는 신병들에게 반드시 들려주며 골려주곤 한다. 당시 김영삼 문민정부의 [[하나회]] 숙청에 불만을 가진 하나회 및 잠재세력들이 7군단장을 주축으로 뭉쳐 쿠데타 모의를 하는 정황이 있어 김영삼이 조용히 숙청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... 고 하는데, 이 사건은 연도를 보면 알지만 노태우 정부 말기에 일어난 일이다. 이 사고가 일어난 때에는 김영삼은 아직 민자당의 후보에조차 오르지 못한 상태였고[* 사건 당시 김영삼은 [[민자당]] 대표최고위원이었다.] 이후 [[1992년]] 12월 [[제14대 대통령 선거|14대 대선]]에서 당선되어 [[1993년]] 2월에 취임한 만큼 근거 없는 낭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