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조선(19세기)]][[분류:조선의 사건사고]][[분류:고종 시대]][[분류:1885년/사건사고]][[분류:러시아 제국의 역사]][[분류:한러관계]] || [[파일:출항하는 러시아군.jpg]] || || 사건당시 [[블라디보스토크]]에서 출항하는 [[러시아 해군]]의 모습 || || [[파일:1890년대의 제주 산지항 사진.jpg]] || || 옛 산지항의 모습. 현재는 멸실되었다. 위 사진속의 포구지역이 [[러시아군]]에 의하여 일시적인 점령하에 들어갔었다.[* 위 사진속 상단 조금 아래부분에 길게 이어진 검은 담처럼 보이는것이 [[제주읍성]]으로, 사건당시 성벽이 러시아 함대의 사정거리에 들어왔을 정도로 제주목관아와 제주읍이 가까웠다.] || [목차] [[http://www.jejusori.net/news/articleView.html?idxno=21017|관련 기사]] {{{+1 [[濟]][[州]][[城]] [[威]][[脅]][[事]][[件]] }}} == 개요 == [[1885년]] [[10월]], [[러시아 제국]] 함대가 조선령 제주도에 상륙해 섬의 일부분을 일시 점거 했으나 이내 1개월 만에 철수한 사건이다. == 배경 == >..조선 정부가 [[거문도 사건|거문도 문제]]에 이렇듯 엄중하게 대처하였던 이유는 무엇일까. 외아문 독판 김윤식의 의견에 따르면, 거문도 문제는 단순히 현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조선의 국권을 떨어뜨려서 미래에 다른 열강이 조선의 영토를 침해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. 실제로 당시 유럽일대의 [[신문]]들 에서는 '''[[거문도 사건|영국이 거문도를 점령]]하면 러시아는 반드시 제주도를 점령할 것이라는 기사가 지속해서 보도되고 있었다.'''.... > > > 우리역사넷 - [[거문도사건]] >---- >이 내용을 통해서 러시아는 제주도 점령을 이미 [[거문도 사건]] 이전부터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. 1885년 [[대영제국]]이 조선령 [[거문도]]를 점령하는 [[거문도 점령 사건]]이 일어나자 [[러시아 제국]]은 대영제국에 경고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[[대영제국]]이 [[거문도]]에서 영국해군을 철수하지 않으면서, [[러시아 제국]]이 조선령 [[제주도]]를 비롯 제주도 인근의 섬들과 [[울릉도]],[[진도]], [[추자도]], [[거금도]], [[장도]] 등의 남해안 지역의 섬들을 '''점령하려 한''' 사건이다. 또한 이미 러시아는 1885년 영국과의 갈등이 지속되면서 [[제주도]] 점령을 고려하고 있었고 이를 본격적으로 시도하였던 일이었기에 러시아 제국 입장에서는 어느정도 신속한 '''점령시도'''였다. 그러나 이후 보급문제와 [[영러관계]]가 좋아질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조선정부와의 관계또한 악화되어 가며 결국 [[제주도]]와 [[울릉도]], 남해안 일대의 섬들의 점령을 포기하고 철수하였다. 당시 [[러시아 제국]]은 얼지않는 항구인 [[부동항]]을 원했는데 이에 적합한 지역이 [[연해주]], [[만주]], 조선, [[일본]], [[중국]]이었다. 이에 [[러시아 제국]]은 자신들의 부동항 진출을 막던 [[대영제국]]을 어떻게든 거문도에서 철수시켜야 했고 이에따라 [[블라디보스토크]]에 정박중이던 러시아 제국의 함대들을 울릉도, 진도, 제주도, 차귀도에 보냈다.[* 이중 울릉도, 제주도에서는 상륙까지 한다. 하지만 진도와 차귀도는 상륙하지 못했다. 이유를 듣자니 진도는 주민들의 항의와 저항이 거세서 상륙하지 못했고, 차귀도는 파도가 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.] 그리하여 1885년 10월 18일 오전 9시 39분 경 러시아 함대는 [[쓰시마 섬]]을 거쳐 [[제주도]] [[월정리]] 인근 해안에 등장했다.당시 [[제주목사 심원택]]은 [[묄렌도르프]]가 제주도에 와서 [[러시아]] [[함대]]에 대하여 통역, 해결해 주기를 바랬으나 당시 [[]]묄렌도르프는 제주도에 직접 올수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결국 제주목사가 직접 나서서 이 사건을 해결했다. 이 사건으로 [[러시아 제국]]과 [[대영제국]]의 [[그레이트 게임]]이 심해졌고 조선정부는 러시아 제국의 이러한 횡보에 [[러시아|아라사]][[대사관]]에 항의하였다. 하지만 [[러시아 제국]] [[정부]]의 공식 사과는 없었다. 다만 일본과의 관계를 보아서, 이후 [[러일전쟁]]이 일어나는 원인 중 하나로 보이고 있다. 실제로 [[러시아 제국]]은 이 사건 이후로 1904년에는 [[용암포 점령사건|용암포를 점령]]하여 [[대한제국]]을 본격적으로 압박하기 시작하였으며, 이것을 계기로 [[러일전쟁]]이 일어났다. == 사건당시 진행상황^^[* 출처: '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제주도'(잡지),'1800년대 동아시아 정세 그리고 세계'(신문),'어느 러시아제국 외교관의 눈으로 바라본 동아시아' 회고록.(도서) 현재 이 도서는 [[러시아]]에서만 팔고있으며 번역을 해야한다. ]^^ == ||[[파일:러시아의 제주도 점령을 보도한 일본제국의 언론들.jpg]]|| || 러시아의 제주도 점령을 일제히 보도한 당시 일본제국의 언론사의 기사 || * 1885.10.18 오전9시30분 경 제주 월정리 해안에 출몰. 이에따라 재주목과 정의현에서는 각 연대와 봉수대에서 봉화와 연기를 올렸다. 오전9시52분 경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주둔 제2함대에서 통역관 [[헨른 리스콥차이스키]]가 제주목 관아에 상륙을 원한다고 밝혔으나 [[제주목사]]와 [[정의현령]]은 이를 묵인하고 제주도 일대에서 식량을 어느정도 줄테니 돌아가라고 하였다. 하지만 러시아 함대에서는 상륙을 할수 없으니 함선의 [[정박]]을 요구하였다. 그러면서 포문을 제주도로 향하게 하였다. 오전10시5분 경 제주목에서는 제주도 동북부 [[환해장성]]에 군대를 배치하는 한편 각 진과 조선정부와 외세의 군사적 친입을 파발로 알렸다. 오전10시40분 경 각 진에서는 군대가 모여 환해장성에 배치되었다. [[헨른 리스콥차이스키]]는 이에 대하여 반발하고 군대를 철수할것을 요구하였으나 묵인되었다. 대부분 지역에 환해장성을 수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. 오후1시8분 경 러시아 함대에서 제주도의 정박중이던 어선2척의 어부들과 대화를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였다. 오후6시20분 경 러시아 함대의 정박허가 가 승인되었다. 이에 러시아 함대 선박2척이 제주항에 정박하였다. * 1885.10.19 오전4시에 러시아 장교와 만남을 가졌다. 하지만 이른 시간대라 다시 각 진영으로 돌아갔다. 오전 8시에 러시아 장교와 [[관덕정]]에서 회담을 하였다. 그리고 그들의 목적과 경위를 알아보려고 노력하였다. 오전 8시46분 경에 러시아 함대의 군인들이 제주민가를 순찰하였다. 그러자 정의현에서 군대를 성 내로 들여보냈다. 오후 12시경 [[제주목사 심원택]]의 지위하에 장대였던 [[운주당]], [[공신루]]에서 군인들의 정비가 있었다. 오후 4시37분 경 러시아 장교와 2차적인 회담을 가졌다. 하지만 별다른 소득은 얻지 못하였다. 오후 5시50분 경 비가와서 바다의 파도가 높아지자 러시아 함대의 배1척이 좌초되었다. 이후 제주도민들과 러시아군이 수리를 하였다. * 1885.10.20 제주도에 정박중이던 [[판옥선]] 4척과 방패선1척이 애월항 인근에 정박하였다. 한편 러시아 함대는 조선정부의 반응이 없자 제주읍성을 향해서 대포를 설치하기도 하였으나 이후 철거하였다. * 1885.10.21 조선 조정으로부터 문제에 대한 답이오지 않자 제주도 내의 1군데의 목과 2군데의 현에 미리 대비를 하라고 알렸다. 그러나 당시 고종은 러시아 제국에 항의하는 문서를 내지 못하였다. * 1885.10.22 1886년10월22일 오전4시에 항구에 정박중이던 러시아 함대와 제주도 어민들과의 충돌이 있었으나 큰 사태로 번지지는 않았다. * 1885.10.23 1886년10월23일 오전9시56분 경 제주도의 환해장성의 성곽을 보수하였다. 오후 7시22분 경에 다시 봉화를 올리고 파발을 띄웠다. 하지만 조선정부로 부터의 답장이 오지않은 상황이었기에 전투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았다. [[대정현]]에서 환해장성 보수를 하려고 하였으나 무산되었다. 오후 9시34분 경에 제주읍성의 장대 운주당과 [[관덕정]]에서 수자기를 올렸다. * 1885.10.24 1886년10월14일 오후1시30분에서 2시까지 러시아 함대의 군인들이 '민가 열다섯 호'를 악탈을 하였다. 이에 제주목에서 항의하였다. 그러자 제2함대 통역관 [[헨른 리스콥차이스키]]는 러시아 함대의 실수를 인정하며 어느정도 인정하는 입장을 보였다. * 1885.10.25 기록말소, 현재 전해지는 기록 없음. * 1885.10.26 기록말소, 현재 전해지는 기록 없음. * 1885.10.27 [[러시아 제국]]의 [[황실]]에서 [[조선]]정부에 답장을 보내왔다. 다만 현재 이 서류는 창덕궁에서 방화당시 소실되어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. * 1885. 10.28~11월 3일 [[러시아 제국]]이 [[제주도]]를 통해서 [[대영제국]]을 견제하려 시도하자 [[대영제국]]은 러시아 제국에 항의하며 러시아는 제주도와 [[조선]]에서 간섭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다. 그러자 [[러시아 제국]]은 이를 강력히 부인하며 러시아 제국은 조선령 남해안 일대의 섬들과 제주도 그리고 그 부속도서를 점령할 의도가 없고, 대영제국이야 말로 [[거문도 사건|거문도]]에서 군대를 철수하지 않았으니 오히려 [[러시아 제국]] [[함대]]가 제주도를 점령해도 무방하다는 문서를 전달하였다.[* 러시아와 영국의 [[그레이트 게임]]속 세계(1996년 지방잡지)] == 여담 == 영국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[[거문도 사건]]을 일으키자 러시아가 이에 대항하여 저지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. 한국사 교과서에도 영국의 거문도 사건은 서술되어 있으나, 러시아의 제주성 위협사건은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