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다른 뜻1, other1=2015년까지 제일모직 명칭을 썼던 기업, rd1=삼성물산)] [include(틀:삼성)] ||<-2><tablealign=right><tablewidth=400><tablebgcolor=#004494><tablebordercolor=#004494><bgcolor=#fff> [[파일:제일모직.jpg|width=300]] || ||<|3><bgcolor=#004494><width=25%> {{{#ffffff '''기업명'''}}} ||<colbgcolor=#fff,#2d2f34>'''한글''': 제일모직 주식회사 || ||'''영어''': Cheil Industries Inc. || ||'''한자''': 第一毛織株式會社 || ||<bgcolor=#004494> '''{{{#white 국가}}}''' ||[[파일:대한민국 국기.svg|width=22]] [[대한민국]] || ||<bgcolor=#004494> '''{{{#white 설립일}}}''' ||[[1954년]] [[9월 15일]] || ||<bgcolor=#004494> '''{{{#white 해산일}}}''' ||[[2014년]] [[7월 1일]] || ||<bgcolor=#004494> {{{#ffffff '''업종명'''}}} ||합성수지 및 기타 플라스틱 물질 제조업 || || {{{#fff '''본사'''}}} ||<bgcolor=#fff>경상북도 구미시 구미대로 58 (공단동) || ||<bgcolor=#004494> {{{#ffffff '''기업 분류'''}}} ||[[대기업]] || ||<bgcolor=#004494> {{{#ffffff '''상장유무'''}}} ||상장폐지 || ||<bgcolor=#004494> {{{#ffffff '''상장시장'''}}} ||[[유가증권시장]] (1975년 ~ 2014년) || ||<bgcolor=#004494> {{{#ffffff '''법인형태'''}}} ||피합병법인 || ||<bgcolor=#004494> {{{#ffffff '''종목코드'''}}} ||001300 || [목차] [clearfix] == 개요 == 옛 [[삼성그룹]](三星) 계열 패션, 의류, 섬유, 신소재 업체. 현 [[삼성물산 패션부문]] 및 [[롯데첨단소재]]의 뿌리이다. 약칭은 '일모'이다. 존속 당시 홈페이지 도메인은 'www.cii.samsung.co.kr'이었다. == 역사 == 창립 전 한국인들은 마카오에서 양복지를 사들여 양복을 해 입었는데, 문제는 수입 양복 값이 비쌌다. 이에 착안한 [[이병철]] 삼성물산 사장은 중역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[[1954년]] [[9월 15일]] 제일모직공업을 세웠다. 1955년 소모방공장 준공 후 1956년 국산 양복지 '골덴텍스'를 만들었고, 이후 방적/직포/방모공장 등을 잇따라 세워 기틀을 다진 뒤, 1961년 창사 최초로 복지를 수출한 후 1968년 경북 경산공장을 세워 이듬해 학생복지 '에리트' 생산도 개시했으나, [[1972년]] 7월 경산공장을 분리해 제일합섬(주)를 설립했다. 한때 [[제일제당]], [[제일합섬]]과 더불어 '제일' 삼총사 중 하나였다.[* 이후 제일제당은 계열 분리되어 [[CJ그룹]]이 되었고 제일합섬은 [[새한그룹]]으로 분리되었다가 외환위기 후 2000년에 해체되고, [[웅진그룹]]에 인수되어 웅진케미칼이 되었다. 그리고 웅진그룹이 어려워지자 [[일본]]의 [[도레이]]가 인수하여 도레이케미칼이 되었다가 2019년 도레이첨단소재에 합병됐다.] 1975년 기업공개 후 제일복장으로부터 '장미라사' 사업권을 이어받았고, 1976년 제일모직으로 상호를 변경했다. 같은 해 칠곡새마을공장을 필두로 1977년 안양디자인센터를 세우고 여성 기성복 '라보떼'를 출시했다. 1978년 부설여자중학교 및 실업고등학교[* 1982년 이후 성일여자중학교 및 성일여자실업고등학교로 변경됨.]를 열었고, 구미공장도 세운 뒤 탁구단도 창단했다. 1979년 기술연구소, 1981년 오스트레일리아 합작법인을 각각 냈고, 1982년 현지합작 양모공장을 세웠다. 1983년 안양 남성복생산공장 준공 후 1985년 신사복을 영국에 수출하며 1986년 카펫 생산을 개시했다. 1988년 의류사업본부(하티스트) 및 인테리어사업부를 신설하고 화성연구소를 열었다. 1991년 여천 C-SAN 공장을 세운 후 세계에서 3번째로 순모 120수 복지를 개발했고, 1992년 미국 현지법인 및 여천 EPS공장을 세우는 한편, 세계 최초로 초고밀도 113만 본 순모 카펫을 개발했다. 1993년 삼성물산과 공동으로 삼성패션연구소를 세운 후 1995년 '[[아이비클럽]]' 브랜드로 학생복사업에 재진출했고, 1997년 충남 예산공장을 세우고 미국 의류업체 '파멜라데니스'를 인수했고, 세계 최초로 인조대리석을 만들었다. 1999년 삼성물산으로부터 '에스에스패션' 브랜드를 넘겨받고 하이크리에이션을 합병했다. 2000년에 삼성물산으로부터 해외의류사업을 넘겨받고 2001년 학생복사업부를 [[아이비클럽]]으로 분사시켜 (주)대원에 넘겼으며, 2002년 구미 IT단지에 전자재료 공장을 세우고 2003년 F&F로부터 'KUHO[* 디자이너 이름이 정구호다. 전 제일모직 전무.]' 브랜드를 인수한 뒤 2004년 OPC사업을 삼성전자에 넘겼다. 2007년 개미플러스유통을 인수하고 2011년 에이스디지텍을 합병했다. 2012년 [[YG엔터테인먼트]]와 합작해 '네추럴나인'을 세웠다. 2013년에 패션부문을 [[삼성에버랜드]]에 넘겼고, 이듬해에는 [[삼성SDI]]로 합병됐다. == 기업정신 == === 사훈 === 1993년 이후 쓰이지 않는다. >'''신용, 정직, 성실, 근면''' === 사가 === 작사는 이은상과 조병화, 작곡은 김동진이 맡았다. ||(1절)지축을 울리는 우렁찬 소리 / 이 땅에 산업부흥 이룩하리라 사랑과 정열과 성실을 다해 / 새 세기 밀고 가는 역군을 보라 (후렴)푸른 하늘 나부끼는 제일모직 깃발 아래 / 온 누리는 빛이 난다 태양과 같이 (2절)인생에 으뜸가는 행복한 일터 / 한 마음 큰 뜻으로 이룩한 역사 감사와 소망으로 내일을 열며 / 언제나 제일가는 일터 만드세 || == 역대 임원 == * 대표이사 회장 * [[이병철]] (1962 ~ 1971) * 조우동 (1971 ~ 1973) * 대표이사 사장 * [[이병철]] (1954 ~ 1962) * 성상영 (1962 ~ 1967) * 이창업 (1967 ~ 1969) * 이은택 (1969 ~ 1974) * 조우동 (1974 ~ 1978) * [[이수빈(기업인)|이수빈]] (1977 ~ 1983) * 이성웅 (1980 ~ 1983) * 송세창 (1983 ~ 1987/1988 ~ 1989) * 이대원 (1989 ~ 1991) * 박홍기 (1997) * 안복현 (2001 ~ 2004) * 제진훈 (2004 ~ 2009) * 황백 (2009 ~ 2012) * 박종우 (2012 ~ 2014) * 윤주화 (2013 ~ 2014) * 조남성 (2014) * [[박상진(기업인)|박상진]] (2014) * 대표이사 부사장 * 이대원 (1987 ~ 1989) * 채오병 (1991 ~ 1993) * 유현식 (1993 ~ 1997) * 원대연 (1997 ~ 2001) * 안복현 (1999 ~ 2001) * 대표이사 전무 * 김헌성 (1973 ~ 1976) * 대표이사 상무 * 김헌성 (1970 ~ 1973) == 특징 == 주요 사업장으로는 [[경기도]] [[의왕시]] [[고천동]], [[충청북도]] [[청주시]] [[청원구]] [[오창읍]] 구룡리, [[경상북도]] [[구미시]] [[공단동]], [[전라남도]] [[여수시]] 평여동에 있다. 1954년 이래로 1996년까지 [[대구광역시]] [[북구(대구)|북구]] [[칠성동2가]]에도 사업장이 있었으나, 1996년 구미공장으로 통합 이전했다.[* 그 부지의 일부는 [[대구 오페라하우스]]로 [[삼성그룹]]에서 [[대구광역시]]에 기부채납했다. --나머지는 아직 미개발.-- 대구 삼성 창조 캠퍼스([[창조경제혁신센터]])로 탈바꿈 되었다. 현재 오페라하우스 앞 도로명이 "호암로"다.] 주주로는 국민연금공단이 7.84%, [[삼성카드]]가 7.62%, 한국투자신탁운용이 5.05%, 미래에셋자산운용이 4.50%의 지분을 보유했으며, 본사는 삼성엔지니어링의 13.1%, [[삼성정밀화학]]의 3.2%, [[삼성에버랜드]]의 4%, 삼성석유화학의 21.4%, [[삼성 라이온즈]]의 15%, 아이마켓코리아의 2.8%, [[한국경제신문]]의 6.66% 등을 가졌다. 직물 퀄리티는 국내 최고이며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다. 양복을 맞출 때 [[이탈리아]] 원단 바로 아래가 제일모직의 원단이다. 특히 회사 이름에 박혀있는 모직의 경우 기술력이 지금보다 낮았던 8090 당시에도 영국산 모직 원단에 버금가는 고급 원단으로 이름높았다. ~~한때는 일본 업체 불량률 보며 부러워했는데 격세지감~~ 이제는 일본은 라이벌 내지 한수 아래로 접고 세계구급으로 놀아주는 퀄리티다.[* 사실 이것은 일본 경제 전체가 알아서 자멸해주고 있는 탓도 있지만 그렇다고 제일모직의 기술력을 폄하할 일이 아니다. 일본 웹에서는 이 사실을 인정못하고 무슨 한국 기업이 중국 보듯 폄하하는 게 일상이지만.,] [[삼성그룹]] 계열사답게 연봉도 빡세고 일거리도 빡세다! 야근을 밥먹듯이 했었다. ~~유일하게 좋은 게 [[빈폴]] 반값 혜택~~ 물론 정규직 기준이었다. [[분류:삼성]][[분류:1954년 설립]][[분류:2014년 해체]][[분류:한국의 없어진 기업]][[분류:대한민국의 화학공학 회사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