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역대 제 군주)] ||||||<table align=right><bgcolor=#BF2F7B> '''{{{#ece5b6 제(齊)나라 37대 국군 [br] 전씨 왕조 5대 국군[br] 2대 왕 {{{+1 선왕}}} 宣王}}}''' |||||||||| ||||<bgcolor=#BF2F7B> '''[[성씨|{{{#ece5b6 성}}}]]''' |||| 규(嬀) || ||||<bgcolor=#BF2F7B> '''[[본관|{{{#ece5b6 씨}}}]]''' |||| 전(田) || ||||<bgcolor=#BF2F7B> '''[[휘|{{{#ece5b6 휘}}}]]''' |||| 벽강(辟彊) || ||||<bgcolor=#BF2F7B> '''{{{#ece5b6 아버지}}}''' |||| [[제위왕]](齊威王) 전인제(田因齊) || ||<bgcolor=#BF2F7B> '''{{{#ece5b6 생몰 기간}}}''' || 음력 || 기원전 350년 ~ 기원전 301년 || ||<bgcolor=#BF2F7B> '''{{{#ece5b6 재위 기간}}}''' || 음력 || 기원전 319년 ~ 기원전 301년([[죽서기년]]) [br] 기원전 342년 ~ 기원전 324년([[사기(역사책)|사기]]) || [목차] [clearfix] == 개요 == 전씨 [[제나라]](田齊)의 제5대 군주이자, 제2대 [[왕]]. [[제위왕]]의 아들. [[제민왕]]의 아버지. 아버지의 뒤를 이어 나라를 잘 다스렸다[* 물론 그것이 제자백가 양성이다.]. 그러나 [[연(춘추전국시대)|연나라]]를 멸망시키고, 연나라를 약탈해 [[연소왕]]이 제나라에게 원한을 품어 아들인 제 민왕 때 72개 성 중 70개가 털리는 대참사가 벌어진다. == 생애 == 제 선왕 6년(기원전 314년), 제 선왕은 연나라에서 연왕 [[자지(전국시대)|자지]](子之)와 태자 희평(姬平)이 싸우면서 내분이 일어나자, 연나라를 쳐서 그 수도인 계를 50일만에 함락시켜 연나라는 잠시 멸망했다. 그리고 약탈을 자행하는 것을 막지 않아 결국 [[연소왕]]이 제나라에게 원한을 품어 훗날 [[악의(전국시대)|악의]](樂毅)를 등용해 제나라의 72개 성을 함락시켜 오히려 제나라가 멸망 위기에 처하게되고 명장 [[전단(전국시대)|전단]](田單) 덕에 겨우 나라를 겨우 회복시킨다.[* 여담이지만 [[사기(역사책)|사기]]에서는 이것이 [[제민왕]] 때 일로 기록하였다.] 제 선왕 18년(기원전 302년), 왕이 [[추연]](鄒衍), [[순우곤]](淳于髡), 전병, 접여, 신도, 환연 등의 유세가를 좋아해 집을 내리고 대부로 봉했다. 그리고 고자, 송견, 윤문, 팽몽, 계진, [[맹자]](孟子) 등도 제 선왕에게 의지했다. 제나라에서 제자 백가가 논쟁을 하며 자유로이 뜻을 펼쳐 선진(先秦) 문화의 절정을 이룬다. 제 선왕 19년(기원전 301년), 제 선왕이 죽고, 그 아들인 전지(田地)가 뒤를 이으니, 그가 바로 제 민왕(齊湣王)이다. == 평가 == === 제 선왕의 업적 === ==== 제자백가 양성 ==== 맹자, 추연, 순우곤 등을 등용해 [[제자백가]]를 양성하게 하여, 제나라의 문화가 융성해지는 계기를 마련했으며, 훗날 그것에 힘입은 유가(儒家)가 한나라 때 국교가 되는 기초를 마련한다. === 제 선왕의 실책 === 제 선왕은 재위 기간 중에 실수를 하여 훗날 제나라가 멸망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. ==== 합종 ==== 제 선왕 2년(기원전 318년), 제 선왕은 [[소진(전국시대)|소진]](蘇秦)의 말을 듣고 조나라, 위나라, 한나라, 연나라, 초나라와 합종하여, [[진(통일왕조)|진(秦)나라]]를 쳤으나 서로 간의 이해 관계 탓에 제대로 일을 해내지는 못했다. 그것이 훗날 진나라를 키우는 일이 되고 만다. ==== 초나라와의 동맹 파기 ==== [[초회왕]]이 제나라와 동맹을 파기하자, 그것을 좋다고 초나라를 친 것은 전혀 좋지 않은 행위였다. 그 이유는 역시 진나라를 키우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. ==== 연나라 약탈 ==== 위에 언급한 제나라의 약탈로 인해 연나라의 원망을 사서 [[연소왕]](燕昭王)이 악의를 보내 제나라를 영혼까지 털어버려 멸망 직전까지 가고 국력을 다시는 회복하지 못해 진나라에게 망하는 단초를 제공했다. == 사기의 기록 == 위는 죽서기년의 기록을 참조한 것이고, 사기에서는 어땠는지 보도록 하자.[* [[열국지]]는 사기를 따랐음을 알려두니 열국지를 보려고 하거나 봤던 사람은 참고하기 바란다.] 제 선왕 2년(기원전 341년), 제 선왕이 [[전기(전국시대)|전기]](田忌)와 [[손빈]](孫臏)을 보내 마릉에서 [[방연(전국시대)|방연]]을 사살했고, 위나라의 태자를 포로로 잡았다. 제 선왕 7년(기원전 336년), [[위혜왕|양혜왕]]과 평아에서 회맹했다. 제 선왕 8년(기원전 335년), 견에서 양 혜왕과 회맹했다. 제 선왕 9년(기원전 334년), 위 양왕과 서주에서 회맹해 왕을 칭했다.[* 사기에 따르면 아버지 제 위왕은 생전에 왕을 칭한 적이 없고, 아들이 추존해 준 것이 된다.] 제 선왕 10년(기원전 333년), 초나라가 서주를 포위했다. 제 선왕 11년(기원전 332년), 위나라와 제나라는 조나라를 쳤으나 수공으로 실패했다. 제 선왕 18년(기원전 325년), 제자백가를 맞이해 이들을 대부로 임명하여 대우했다. 제 선왕 19년(기원전 324년), 제 선왕이 죽고 그 아들 전지가 이어 제 민왕이 된다. [각주] [[분류:제나라의 군주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