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세리에 A)] ||<-2><tablewidth=100%><table bordercolor=#fed508><tablebgcolor=#00244b><bgcolor=#fff> [[파일:GenoaCFC.png|height=300]] || ||<-2><bgcolor=#9d002c> {{{+1 '''{{{#fed508 제노아 CFC}}}'''}}} || ||<-2><bgcolor=#00244b> '''{{{#fed508 {{{+1 Genoa C. F. C. }}}}}}''' || ||<width=25%> '''{{{#fed508 정식명칭}}}''' ||<width=75%><bgcolor=#fff>Genoa Cricket and Football Club SpA || || '''{{{#fed508 애칭}}}''' ||<bgcolor=#fff>Rossoblu(적-청), Grifone(그리핀들) || || '''{{{#fed508 창단년도}}}''' ||<bgcolor=#fff>1893년 (클럽) 1897년 (축구단) || || '''{{{#fed508 소속리그}}}''' ||<bgcolor=#fff>[[이탈리아]] [[세리에 A]](Serie A) || || '''{{{#fed508 연고지}}}''' ||<bgcolor=#fff>[[제노바]](Genova) || || '''{{{#fed508 홈구장}}}''' ||<bgcolor=#fff>[[스타디오 루이지 페라리스]](Stadio Luigi Ferraris) [br] 36,536명 수용 가능 || || '''{{{#fed508 라이벌}}}''' ||<bgcolor=#fff>'''[[UC 삼프도리아|{{{#2657c5 UC 삼프도리아 }}}]]''' - '''[[데르비 델라 란테르나]]''' || || '''{{{#fed508 구단주}}}''' ||<bgcolor=#fff>엔리코 프레치오시(Enrico Preziosi) || || '''{{{#fed508 감독}}}''' ||<bgcolor=#fff>[[다비데 발라르디니]](Davide Ballardini)[* 이 팀에서만 네번째 감독직을 맏고있다.] || || '''{{{#fed508 주장}}}''' ||<bgcolor=#fff>[[도메니코 크리시토]](Domenico Criscito) || || '''{{{#fed508 공식 웹 사이트}}}''' ||<bgcolor=#fff>[[http://www.genoacfc.it|[[파일:Genoa.png|width=30]]]] [[https://twitter.com/GenoaCFC| [[파일:트위터 아이콘.svg|width=30]]]] [[https://www.instagram.com/genoacfcofficial/| [[파일:인스타그램 아이콘.svg|width=30]]]] [[https://www.facebook.com/genoaCFCofficial/| [[파일:페이스북 아이콘.svg|width=25]]]] [[https://www.youtube.com/channel/UCcFYiZvNtDbvVak3wEj3usA| [[파일:유튜브 아이콘.svg|width=30]]]] || ||<-2><bgcolor=#9d002c> '''{{{#fed508 우승 기록 }}}''' || || {{{#fff [[세리에 A|{{{#fed508 '''__세리에 A__'''}}}]][br]{{{#fed508 (9회)}}}}}} ||<bgcolor=#fff>1897-98, 1898-99, 1899-1900, 1901-02, 1902-03, 1903-04, 1914-15, 1922-23, 1923-24 || || {{{#fff [[코파 이탈리아|{{{#fed508 '''__코파 이탈리아__'''}}}]][br]{{{#fed508 (1회)}}}}}} ||<bgcolor=#fff>1936-37 || [목차] == 개요 == '''세리에 A 원년 우승팀이자 현재는 세리에 A의 생존왕''' [[이탈리아]] [[제노바]]에 연구를 둔 [[축구]] 클럽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구단이다. [[유벤투스 FC|유베]]와 [[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|양]][[AC 밀란|밀란]]에 이어 4번째로 많은 세리에 우승을 차지한 명문 클럽. 한 번만 더 스쿠데토를 차지하면 엠블렘에 10회 우승을 상징하는 별을 달 수 있다. ~~근데 96년째 못달고 있다~~ [[세리에 A]]의 초대 시즌은 단 네팀이 참가하여 하루에 토너먼트를 몰아하는 방식인 등 틀이 잡히기 전 선두주자로서 이득을 톡톡히 누렸다고 볼 수 있다. 1920년대까지 전설적인 수비수 [[렌초 데베키]] 등을 앞세워 강자의 지위를 누리다가 그 후로는 강등과 승격을 반복하는 별볼일 없는 행보를 보였다. 그러다 2000년대 중엽 현 구단주 엔리코 프레치오시[* 유럽내에서 레고 다음가는 장난감 회사의 회장이다.]가 인수한 후 공격적인 투자로 2007-08 시즌부터 [[세리에 A]]에 안착하였다. 경영진의 협상력이 대단해 선수를 곳곳에서 싸게 사와 터뜨리고 빅클럽에 팔아치우는 기술이 가히 신의 경지. 현금을 받기보다 유망주 공동소유를 최대한 활용하고 그것도 터뜨린다. 스카우팅 능력도 대단한 듯 프레치오시는 16세의 [[리오넬 메시]]를 데려올 기회가 있었지만 포기했다고 한다. [[밀라노]]의 두 클럽과 특히 우애가 돈독해 그 팀 팬들은 제노아를 '형제의 클럽'이라 부른다. 다만 너무 선수를 갈아치우는 통에 조직력을 맞출 시간이 부족해 성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는다. 다만 [[AC 밀란]]과는 이탈리아와 거리가 먼 국내에서나 형제노아라고 불러주는 것이지, 실제 현지 사정은 한 밀라니스타가 제노아 팬을 살해함으로써 밀란이 제노아로 원정가는 순간 [[최루탄]]까지 터뜨리는 전쟁통이 되었다.[* 이거 때문에 2007년 제노아의 세리에 A 승격이후 한동안 제노아 팬들의 산시로 원정이 금지된다. 제노아 팬들은 1995년때 밀라니스타에게 살해당한걸 잊지않고 복수하겠다고 이를 갈고있었고 일부 밀라니스타들도 몇놈 더 칼빵놓겠다고 기다리고 있었다. 다행히도 원정금지 덕택에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후 2007년 11월 11일, 가브리엘레 산드리 사건(라치오 서포터인 산드리라는 당시 26세 남성이 유벤투스 원정당시 라치오 서포터의 난동에 휩쓸리면서 -산드리는 라치오 울트라스 멤버긴 했지만 이때는 울트라스와는 따로 이동하고 있었다.었다.- 경찰의 발포에 총을 맞고 사망한다.)이 터지면서...] 이들의 이적 매커니즘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. 한 선수가 이적 직후 시즌을 1. 매우 잘 보냈다 → 관심있는 빅클럽에 현금 + 유망주를 받고 판다 2. 괜찮은 활약 → 한시즌 더 주전으로 써보고 1을 기대한다 3. 보통 → 다음시즌 영입된 기대주에 의해 벤치로 밀려난다 4. 생각보다 부진 → 유망주 영입에 교환카드로 제시된다 5. 많이 못했다 → 하위 클럽으로 팔리거나 임대된다 당장 승격 시즌과 비교하여 2011년 현재까지 남아있는 선수가 각주를 단 세명. 이들을 빼면 언제나 팔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면 된다. 항상 세리에 A의 이적시장에서 가장 많은 선수를 파고사는 클럽. [[축구왕 슛돌이]]의 배경이 된 클럽으로 여러모로 일본과 관련이 깊다. [[세리에 B]]이던 시절 일본의 축구스타 [[미우라 카즈요시]]를 영입하고 2009-10 시즌까지 아식스 유니폼을 입기도. 팀 명칭이 제노바가 아닌 제노아인데, 이것은 이탈리아 거주 잉글랜드인들의 클럽으로서 창단되었기 때문이다. 그렇기에 클럽 초창기 한동안은 이탈리아인들은 클럽에 가입할 수 없었다. 파시스트 정권 시기에는 한때 강제로 제노바로 개명당하기도 했으나 2차 대전 이후 다시 제노아로 복귀했다. [[지안 피에로 가스페리니]]가 2006년에 감독을 맡은 뒤 2006-07 시즌 세리에 A 승격에 성공했고 2007-08 시즌 [[마르코 보리엘로]]가 세리에 득점 3위에 오르며 팀을 안정적으로 중위권으로 안착시켰다. 2008-09 시즌 이적생 [[티아고 모타]]와 [[디에고 밀리토]]의 활약으로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노렸으나 아쉽게도 4위 [[ACF 피오렌티나]]에 상대전적에서 밀린 5위로 유로파리그로 갔다. 그리고 모타와 밀리토는 [[인테르]]행... 2009-10 시즌에는 [[에르난 크레스포]]와 [[로드리고 팔라시오]]가 왔으나 결국 앞서 떠난 두 선수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초반 3연승 이후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이며 유로파리그 조별예선 탈락[* 발렌시아와 릴과 한 조가 되며 운이 없었다.], 리그는 9위로 유로파리그조차 가지 못했다. 2010-11 시즌을 앞두고 [[루카 토니]], [[미구엘 벨로수]], [[치코 플로레스]], [[카카베르 칼라제]], [[에두아르두 카르발류]] 등을 영입하며 의욕적인 이적시장을 보냈다. 하지만 의외로 조직력이 맞지 않는 보습을 보이며 중위권에서 맴돌다가 10위로 마쳤다. 팀을 오래 이끌었던 가스페리니 감독은 시즌 중 경질되고 다비데 발라르디니가 선임되기도 했다. 2011-12 시즌은 감독이 두 번 교체되는 진퉁 끝에 후반기 최악의 부진을 겪으며 최종전 전까지 잔류를 확정짓지 못하다가 최종전에서 팔레르모를 홈에서 2:0으로 꺾고 간신히 17위로 잔류했다. 23라운드에서 35라운드까지 13경기 연속 무승을 기록했으며 이 와중에 시에나와의 홈경기에서는 후반 5분까지 4:0으로 끌려가며 빡친 홈팬들의 난동으로 경기가 중단되어 홈경기 무관중 징계를 받기도 했다. 2012-13 시즌은 팔라시오와 벨로수가 떠나고 페스카라의 승격 주역 [[치로 임모빌레]]가 다소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이며 강등 위기를 겪었다. 이로 인해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데 카니오-델 네리-발라르디니로 시즌 중 감독을 두 번 교체했다. 다행히 로마에서 임대로 친정팀에 1시즌 복귀한 보리엘로가 12골을 득점해주며 두 시즌 연속 17위로 마감했다. 2013-14 시즌을 앞두고 제노아를 중상위권으로 이끌었던 지안 피에로 가스페리니 감독이 3시즌 만에 컴백했고 이번에는 강등걱정 없이 무난하게 14위로 마무리했다. 2014-15 시즌에는 [[유벤투스]]에 전반기 유일한 패배를 안기며 14라운드까지 3위에 오르는 등 선전했다. 그러나 DTD의 법칙을 거스르지 못하며 잠시 중위권인 9위까지 내려가기도 했으나 반등에 성공하며 승점 59점으로 리그 6위를 기록해 [[유로파리그]] 진출을 확정지었다. 그러나 지난 시즌 [[파르마 FC]]가 그랬던 것처럼 [[UEFA]] 라이센스를 획득하지 못해 7위인 하필이면 라이벌인 삼프도리아에게 넘겨주고 말았다. 토트넘에서 데려온 [[이아고 팔케]]가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고 전반기에는 와싯의 양아들 [[알레산드로 마트리]]가 7골을[* 후반기에는 유베로 갔다.], 후반기에는 사수올로에서 임대로 데려온 레오나르도 파볼레티[* 시즌 후 완전영입]가 10경기 7골을 기록해주었다. 2015-16 시즌은 승점 46점, 11위로 마감했다. 2016-17 시즌은 승점 36점, 16위로 마감했다. 2017-18 시즌은 초반부터 2무 5패로 19위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. 하지만 반등에 성공하여 최종 12위를 기록하였다. 2018-19 시즌 초반에는 폴란드의 신성 [[크시슈토프 피옹테크]]를 영입하여 그의 활약으로 중상위권에 위치하였으나 겨울 이적시장에 [[AC 밀란]]에 팔았다. 최종 승점은 38점, 18위 [[엠폴리]]와 동일한 승점이었으나 득실차 단 한점 차이로 17위를 기록하며 가까스로 잔류를 성공했다. 2019-20 시즌에도 극적으로 17위 잔류를 성공한 뒤, 2020-21 시즌에는 강등권에 머물다가 치고 올라가 11위를 기록 중. == 1군 스쿼드 == [include(틀:제노아 CFC)] == [[영구결번]] == ||<-2><tablebordercolor=#06222e><bgcolor=#06222e> '''{{{#fff 제노아 CFC 영구결번}}}''' || ||<width=50%><bgcolor=#af191c> {{{#fff No.6 잔루카 시뇨리니}}} ||<width=50%><bgcolor=#af191c> {{{#fff No.12 서포터즈}}} || 제노아에서 8시즌 활약한 스위퍼 잔루카 시뇨리니의 번호인 6번과, 구단의 12번째 선수인 [[서포터즈]]를 위해 구단에서 12번의 [[영구결번]] 처리를 결정했다. [각주] [[분류:세리에 A]][[분류:제노아 CFC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