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역대 조선 왕비)] ||<tablewidth=100%><tablebordercolor=#831035>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; padding: 7px 10px; background-image: linear-gradient(to right, #972000 0%, #bf1400 20%, #bf1400 80%, #972000)" {{{#ffd400 '''조선 정희왕후 윤씨 관련 틀'''}}}}}} || ||<bgcolor=#FFFFFF,#1F2023> {{{#!folding [ 펼치기 · 접기 ] ---- [include(틀:역대 조선 왕대비)] ---- [include(틀:역대 조선 대왕대비)] ---- }}} || ||<-2><tablealign=right><tablewidth=400><tablebordercolor=#bf1400><tablebgcolor=#fff,#1f2023>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; padding: 7px 10px; background-image: linear-gradient(to right, #972000, #bf1400 20%, #bf1400 80%, #972000)" '''{{{#ffd400 조선 제6대 왕비[br]{{{+1 정희왕후 | 貞熹王后}}}}}}'''}}} || ||<-2> {{{#!wiki style="margin: 0 -10px -5px; min-height: 26px" {{{#!folding 존호 · 휘호 · 시호 [ 펼치기 · 접기 ] {{{#!wiki style="margin: -6px -1.5px -11px" ||<-2><tablewidth=100%><tablebgcolor=#fff,#1f2023> 자성흠인경덕선열명순원숙휘신혜의신헌정희왕후[br](慈聖欽仁景德宣烈明順元淑徽愼惠懿神憲端良齊敬貞熹王后) || ||<width=50><colbgcolor=#bf1400> '''[[존호|{{{#ffd400 존호}}}]]''' ||자성흠인경덕선열명순원숙휘신혜의신헌(慈聖欽仁景德宣烈明順元淑徽愼惠懿神憲) || || '''[[시호|{{{#ffd400 시호}}}]]''' ||정희왕후(貞熹王后) ||}}}}}}}}} || ||<|2><width=50><colbgcolor=#bf1400><colcolor=#ffd400> '''출생''' ||[[1418년]] [[12월 8일]] {{{-2 (음력 11월 11일)}}} || ||[[조선]] [[충청도]] [[홍주군]] {{{-2 (현재 충청남도 홍성군)}}} || ||<|2> '''사망''' ||[[1483년]] [[5월 6일]] {{{-2 (음력 3월 30일)}}}[br]{{{-2 (향년 64세)}}} || ||[[조선]] [[충청도]] [[온양행궁|온양군 행궁]]{{{-2 (현재 충청남도 아산시 온천대로 1459)}}} || || '''[[능묘|{{{#ffd400 능묘}}}]]''' ||광릉(光陵) || ||<|6> '''재위''' ||<bgcolor=#bf1400> {{{#ffd400 '''조선 왕비'''}}} || || [[1455년]] [[6월 24일]] ~ [[1468년]] [[9월 22일]][br]{{{-2 (음력 1455년 6월 10일 ~ 1468년 9월 7일)[br](13년 2개월 27일 / 4,838일)}}} || ||<bgcolor=#bf1400> {{{#ffd400 '''조선 왕대비'''}}} || || [[1468년]] [[9월 22일]] ~ [[1469년]] [[12월 31일]][br]{{{-2 (음력 1468년 9월 7일 ~ 1469년 11월 28일)[br](1년 3개월 8일, 465일)}}}[* 1년 2개월로 이해하기 쉬운데, 1469년 2월이 윤달이었기에 1년 3개월이다.] || ||<bgcolor=#bf1400> {{{#ffd400 '''조선 대왕대비'''}}} || || [[1469년]] [[12월 31일]] ~ [[1483년]] [[5월 6일]][br]{{{-2 (음력 1469년 11월 28일 ~ 1483년 3월 30일)}}}[br](13년 4개월 6일, 4,875일)}}} || ||<-2> {{{#!wiki style="margin: 0 -10px -5px; min-height: 26px" {{{#!folding [ 펼치기 · 접기 ] {{{#!wiki style="margin: -6px -1px -11px" ||<tablewidth=100%><width=50><colbgcolor=#bf1400> '''[[본관|{{{#ffd400 본관}}}]]''' ||<colbgcolor=#fff,#1f2023><colcolor=#373a3c,#ddd>[[파평 윤씨|파평]](坡平) || || '''[[혼전|{{{#ffd400 전호}}}]]''' ||태경전(泰慶殿) || || '''부모''' ||부친 파평부원군 윤번[br]모친 흥녕부대부인 인천 이씨 || || '''형제''' ||3남 7녀 중 아홉째[* 일곱째 딸로, 언니 6명에 오빠 2명, 남동생 1명이 있었다.] || || '''부군''' ||[[세조(조선)|세조]] || || '''자녀''' ||2남 1녀 || || '''종교''' ||[[불교]] ||}}}}}}}}} || [목차] [clearfix] == 소개 == [youtube(f6JaxsvSk_w)] [[조선]] 제7대 국왕 [[세조(조선)|세조]]의 왕비이며 [[세종대왕]]과 [[소헌왕후]]의 둘째며느리. [[의경세자|덕종]], [[예종(조선)|예종]]의 어머니이자, [[월산대군]]과 [[성종(조선)|성종]], [[제안대군]]의 할머니, [[소혜왕후]], [[장순왕후]], [[안순왕후]]의 시어머니다. 또한 [[연산군]]과 [[중종(조선)|중종]]은 정희왕후의 증손자이다. 조선 역사상 최초로 수렴청정을 한 여성이라서[* 어찌보면 '만약 [[소헌왕후]]가 실제 역사보다 오래 살고 더 나아가 [[단종(조선)|단종]]이 성인이 되어 친정을 하게 된 뒤에도 얼마 동안 계속 살아있었다면?' 의 좋은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. 단종은 할머니인 소헌왕후와 어머니인 [[현덕왕후]]가 모두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숙부인 [[세조(조선)|수양대군]]을 견제할 사람이 없어져서 결국 [[계유정난]]을 막지 못하고 폐위되었다. 만약 [[성종(조선)|성종]]의 즉위 초기 내지는 그 이전에 정희왕후와 [[인수대비]] 모두 일찍 죽었다면 성종은 단종과 마찬가지로 어린 나이에 왕권을 위협받게 되었을지도 모른다. 실제로 성종은 장남이 아닌 차남이었던 탓에 정통성 자체는 형인 [[월산대군]]보다 약했으며 이 점에서 강력한 정통성을 가졌던 단종과는 대조적이므로, 정희왕후와 인수대비가 일찍 사망했을 경우 성종이 즉위 초기에 받게 될 위협은 단종보다도 훨씬 컸을 것이다.] 서적이나 사극에서 '정희대비'라고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, 이는 잘못된 표현으로 대비 시절이라면 공식 존호인 '자성대비(慈聖大妃)'가 올바른 표현이다. == 생애 == 처음에는 그냥 대군이었던 [[세조(조선)|수양대군]]의 아내로 시집왔다가, 수양대군이 '''단종을 몰아내고 찬탈하여''' 왕이 되면서 부부인에서 왕비로 출세한 인물이다. 상궁들이 자신의 언니를 보러 왔다가 우연히 본 여동생이 더 낫다고 여겨서 배필로 삼았다는 이야기도 있다. ~~ 언니 안습 ~~ 세조는 그녀를 매우 아꼈다고 하며, 슬하에 덕종(의경세자), 의숙공주, 예종 등 자녀가 3명밖에 없었지만 금슬은 좋았던 것 같다. 조선 최초로 [[수렴청정]]을 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인물로, [[예종(조선)|예종]]이 젊은 나이에 요절하자 [[한명회]] 및 여러 신하들과 의논한 끝에 [[잘산군]]을 [[성종(조선)|성종]]으로 즉위시켰다고 한다. 그 당시 예종의 원자 [[제안대군]]은 나이가 4세로 너무 어렸고, 세조의 장손 [[월산대군]]은 병약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여러 정황상 [[잘산군]]이 [[한명회]]의 사위라서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.~~ 제안대군, 월산대군 안습 ~~ 어느 쪽이건 왕위를 뒷받침 해줄 세력이 불안하다면 한명회를 끌어들이는 것이 더 낫다 여긴 듯 하다. 처음 신하들이 [[수렴청정]]을 부탁하자 자신보다는 한자를 아는 며느리 [[인수대비|수빈]]이 더 낫지 않냐고 거절한 기록이 있는데, 정말 한문을 몰랐다고 볼 여지도 있으나 겸양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. [[수렴청정]]을 하는 방식은, 직접 나와서 한 게 아니라 성종이 자신을 찾아와 의논해서 결정하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. 기본적으로 본인이 활약하던 시기에 자신의 남편이 벌인 일을 대강 정리하고[* [[이홍위|단종]]비 [[정순왕후 송씨]]에게 매달 [[쌀]]을 지급하거나 [[문종(조선)|문종]]의 유일한 외손자이자 (단종의 친누나인) [[경혜공주]]의 아들 정미수가 과거 시험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. 당시 정미수는 대역죄인의 아들이어서 과거시험을 볼 수 없었기 때문.], 손자 [[자을산군|성종]]의 정통성에 신경을 써서 아들 [[의경세자]]를 왕으로 추증하고(덕종), 의경세자의 비([[소혜왕후]])를 [[예종(조선)|예종]]의 비([[안순왕후]])보다 지위를 더 높게 올려줬는데 그 정도는 해 둬야 성종의 정통성에 문제가 없다고 여긴 듯 하다. [[자을산군|성종]]이 20세가 될 때까지 하기는 했지만, 실제로 성종은 15세를 넘겨가면서 대다수의 직무를 스스로 처리했다고 하는 걸 보면, 그냥 형식적으로 하고 있고 실제로는 성종이 거의 다 처리했을 듯 하다. 정말 중요한 일만 정희왕후와 의논해서 결정한 듯하다. 조기에 넘겨주지 못한 것은, [[자을산군|성종]]이 15세쯤 되던 시기에 [[한명회]]의 딸이었던 [[공혜왕후]] 한씨가 죽어서, 그 때 권한을 넘겨주었다가는 불필요한 오해를 살 지 몰라서였던 듯 하다. 한마디로 안정된 상태에서 넘겨주기 위해서 미룬 것이다. 실제로 그렇게 기다린 덕분에 그 시기에 높은 권력을 누리던 인물은 하나하나 사라져갔고 그때가 돼서야 성종에게 넘겨준다. 처음 [[수렴청정]]을 거두는 거라서 그런지 처음 거둘 때 반대도 많았던 모양. 그 이후로는 정사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고 노후를 보내던 중 1483년 온양행궁에서 온천욕을 한 뒤 독감을 얻어 얼마안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난다. 드라마에서는 보통 며느리 [[인수대비]]([[소혜왕후]])와 갈등관계인 손자며느리 [[폐비 윤씨]]를 옹호하거나 불쌍히 여기는 모습~~이이제이~~으로 묘사되는데, 실제론 내지까지 내리며 [[폐비 윤씨]]의 폐출과 사사[* 다만 [[폐비 윤씨]]를 원래 좋게 보았던만큼 사사까지 적극 도왔을지는 의문.]를 적극 도왔다[* [[폐비 윤씨]] 항목의 주석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"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음이야"라고까지 했다니 뭐.]. 하지만 [[인수대비]]와 다르게 ~~[[단종(조선)|단종]] 입장에서는 아쉽게도~~ 증손자 [[연산군]]이 즉위하기 전에 먼저 사망해서, 패륜의 피해자가 되지는 않는다. 자신의 친정인 파평 윤씨 가문만을 편들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. 그 예가 자기 족친이자 손자며느리 [[정현왕후]][* [[공혜왕후]] 한씨, [[폐비 윤씨]]에 이어 [[자을산군|성종]]이 3번째로 맞이한 왕비. [[진성대군|중종]]의 어머니.]의 친정아버지인 윤호를 국문한 것. == 대중매체에서 == [[수양대군|세조]]부터 [[자을산군|성종]]까지 [[사극]]의 단골 소재로 활용되는 사건들이 즐비한 시기에 살았던 덕에, 사극에 꽤 간간히 나오는 편. 보통 세조의 아내보다는 [[인수대비]]의 시어머니자 성종의 할머니, 왕실의 최고 어른의 포지션으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. MBC <조선왕조 오백년 : 설중매 편>에서는 [[정혜선]], KBS에서 방영한 <파천무>에서는 최란, <한명회(드라마)>에서는 홍세미가 열연하였다 [[파일:9I34h6q.jpg]] KBS에서 방영한 [[왕과 비]]에서의 정희왕후. 중견 탤런트 [[한혜숙]]이 열연하였다. 손자인 [[자을산군|성종]]의 즉위 후 [[수렴청정]]을 하면서 야심만만한 며느리 [[인수대비]]와의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, 전체적으로는 정치적인 모습보다는 단아하고 자애로운 어머니나 할머니의 모습으로 그려졌다. 일찍 부모를 잃은 시조카 [[이홍위|단종]]에게 다정했고, 남편이 즉위하는 과정에서 단종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희생된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며, 두 아들을 모두 앞세우는 비극을 겪는 인물이다. 사육신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 중전의 신분으로 대역죄인인 그들을 위해 불공을 올리는 장면까지 묘사될 정도. 드라마 자체가 대하 사극이었던 관계로, 긴 시간 동안 서서히 늙어가는 모습이 묘사되었다. [[파일:3lptr0Z.jpg]] ~~대비 시절이면 자성왕대비 혹은 자성대비가 맞는 표현이지만 애초에 [[폐비 윤씨]]와 [[김처선]]이 첫사랑인 사극이니 신경쓰지 말자~~[* [[SBS]]는 [[여인천하]] 때도 [[문정왕후]]의 대왕대비 시절 자막에 문정대비라고 넣은 적이 있다. 문정왕후는 성렬대비라고 해야 맞다.] SBS에서 방영한 [[왕과 나(드라마)|왕과 나]]에서는 중견 탤런트 [[양미경]]~~한 상궁~~이 정희왕후 역할을 맡았다. 전체적으로 기쎈 정치인의 면모보다는 자애로운 [[시어머니]], 할머니, 시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[[수렴청정]]의 모습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. 마지막까지 손자며느리 [[폐비 윤씨]]의 죽음을 슬퍼하다 쓰러져 사망하는 것으로 묘사된다.[*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~~기특하게도~~ 고증에 맞게 가체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~~무시무시한 크기의~~ [[비녀]]가 보이도록 같이 꽂혀 있다. 고증과 복식미 모두를 잡으려는 시도 같지만, 현실은 둘 다 놓치고 방영 당시에도 괴랄한 복장이라며 대차게 까였었다.] [[파일:8j8h7Hg.jpg]] KBS에서 방영한 [[공주의 남자]]에서는 중견 탤런트 [[김서라]]가 역할을 맡았다.[* 김서라는 [[왕과 비]]에서 [[한명회]]의 처를 맡은 바 있다.] [[계유정난]] 전에는 자신도 남편인 [[수양대군]]만큼이나 야심이 있어서 남편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집안을 단속하는가 하면, 딸인 세령에게도 냉정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줘, 시청자들의 원성을 샀다. 하지만 막상 남편이 왕위에 오른 후 김승유를 죽이기 위해 세령조차 [[노비]]로 강등시키고 미끼로 사용하는 등 폭주하는 모습을 보이자, 남편에게 맞서는가 하면 남편 몰래 세령과 김승유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빼돌려 조용히 살게 해준다. 결국 마지막 회에서 노년의 세조가 ~~늙어서 힘이 다 빠졌는지~~ ~~[[현덕왕후|형수님]]의 원혼을 보고 기가 허해졌는지~~ 죽은 줄로만 알았던 세령 부부를 우연히 보고 정희왕후에게 그들을 살려주어 고맙다는 말을 하며 훈훈하게 마무리.[* 원래 [[수양대군|세조]] 연간이면 당연히 가체를 쓰고 나오는게 맞는 고증이지만 이 드라마는 ~~요즘 사극의 트렌드처럼~~ 가체 대신 [[비녀]]와 첩지를 하고 나왔다. 아마 촬영시 배우들의 부담을 줄여주고 미적 아름다움을 최대화하기 위한 선택이었던듯. 아무튼 이 드라마는 ~~고증을 포기하면~~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색채의 [[한복]]과 복식을 보여주었다.] [[파일:dxsd7yR.jpg]] [[수양대군]]이 [[계유정난]]을 일으키기 전 부부인 시절 [[파일:ECywicl.jpg]] [[자을산군|성종]]대 대왕대비가 된 정희왕후 ~~주사아아아아앙!!!!~~ JTBC에서 방영한 [[인수대비(드라마)|인수대비]]에서는 중견 탤런트 [[김미숙]]이 계유정난 직전의 부부인 시절부터 말년의 자성대왕대비 시절까지의 정희왕후를 열연하였다. 전체적으로 야심도 있고 정치감각도 있는 여장부의 모습을 훌륭히 그려냈으며,[* 놀라운 것은 <인수대비>가 김미숙의 첫 사극 연기였다는 점이다! 2004년 [[토지]] 리메이크판에서 주인공 [[서희]]의 할머니 윤씨 부인 역을 맡은 적이 있지만, [[동학농민운동]] 끝무렵에서 [[일제강점기]]로 넘어가는 조선 말기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극으로 보기에는 좀 애매하다.] 특히 노년에 병으로 은퇴하기 전까지 맏며느리인 [[인수대비]]와 끊임없는 갈등을 빚으며 권력게임+고부갈등을 긴장감있게 보여주었다. 중간중간 똑똑한 ~~[[한자]]를 아는~~ [[인수대비]]에게 은근한 굴욕을 당하는 모습도 나온다. ~~하지만 글을 아는 며느리보단 [[문맹]]인 시어머니가 나은 법이지~~ 같은 작가의 전작인 [[왕과 비]]의 정희왕후가 외적으로 강단 있는 정치인의 모습보다는 단아하고 부드러운 어마니의 분위기를 많이 풍겼던 반면에, [[인수대비(드라마)|인수대비]]에서의 정희왕후는 상대적으로 기가 센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. 특히 시아버지 [[세종대왕]]의 [[후궁]]이자 [[이홍위|단종]]을 돌봐준 인물인 [[혜빈 양씨]]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. [[왕과 비]]에서는 겉으로나마 혜빈 양씨를 깍듯이 대하지만[* 물론 [[혜빈 양씨]]가 남편 수양대군의 적이다 보니, 마음속으로는 꺼려한다.], [[인수대비(드라마)|인수대비]]에서는 혜빈 양씨를 대놓고 무시한다.[* [[왕과 비]]에서는 [[양녕대군]]이 동생의 [[첩]]인 혜빈 양씨를 대놓고 멸시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 부분을 정희왕후한테 옮긴 듯 하다.] 극 초반에는 엄격한 시어머니와 정치적 내조를 통해 남편을 돕는 강인한 아내로서의 모습이 그려졌으며, [[수양대군|세조]] 사후 [[예종(조선)|예종]]시기 [[수렴청정]]을 시작하면서 왕실과 친정 [[파평 윤씨]] 가문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노회한 정치인의 모습으로 그려졌다. 큰며느리 [[인수대비]] 한씨가 파평 윤씨 일문의 비리가 담긴 장부를 들이밀며 정계 은퇴를 강요하면서 마지막 갈등이 폭발하고, 결국 굴복하여 은퇴한 후에는 극 초반과 같이 화해모드로 돌아서다가, 손주며느리인 [[폐비 윤씨]]의 사사 소식을 들으며 파란만장했던 일생을 회고하며 사망하는 것으로 극에서 하차했다. == 가족 == *본가 [[파평 윤씨]] 조부 : 판도판서 증 영의정 윤승례(版圖判書 贈 領議政 尹承禮, ?~?) 조모 : 검교 문하시중 창성부원군 문정공 성여완(檢校 門下侍中 昌城府院君 文靖公 成汝完, 1309~1397)의 딸인 경안택주 창녕 성씨(慶安宅主 昌寧 成氏) 아버지 : 판중추 증 영의정 파평부원군 정정공 윤번(判中樞 贈 領議政 坡平府院君 貞靖公 尹璠, 1384~1448) *외가 [[인천 이씨]][* 고려 최대의 문벌귀족이자 외척중 하나인 경원 이씨이다] 외조부 : 참찬의정부사 공도공 이문화(參贊議政府事 恭度公 李文和, 1358∼1414) : [[고려]] [[우왕]]비 근비 이씨의 언니의 아들 외조모 : 문하시중 양정공 최렴(門下侍中 良靖公 崔濂, ?∼1415)의 딸인 충주 최씨(忠州 崔氏) 어머니 : 흥녕부대부인 인천 이씨(興寧府大夫人 仁川 李氏, 1383~1456) 큰언니 : 강녕군 장간공 홍원용(江寧君 章簡公 洪元用, 1401?~1466)과 혼인 - 홍원용은 [[인수대비]]의 외숙부 : 남양 홍씨 큰오빠 : 파성군 이정공 윤사분(坡城君 夷靖公 尹士昐, 1401~1471) 올케언니 : 경력 장안지(經歷 張安之)의 딸 정경부인 덕수 장씨(貞敬夫人 德水 張氏) 작은언니 : 정경부인 윤씨(貞敬夫人 尹氏) 작은형부 : 우의정 창성부원군 양정공 성봉조(右議政 昌成府院君 襄靖公 成奉祖, 1401~1474) : [[성삼문]]의 재종숙이자 [[성녕대군]] 부인의 사촌 : 창녕 성씨 작은오빠 : 공조판서 영평군 성안공 윤사윤(工曹判書 鈴平君 成公安 尹士昀, 1409?~1461) : 중종비 [[장경왕후]]의 증조부 올케언니 : 검교 호조참의 최의검(檢校 戶曹參議 崔義儉)의 딸 부산현부인 수원 최씨(釜山縣夫人 水原 崔氏) 셋째 언니 : 정경부인 윤씨(貞敬夫人 尹氏) 셋째 형부 : 공조참판 이연손(工曹參判 李延孫, ?∼1463)와 혼인 넷째 언니 : 지중추부사 호려공 이염의(知中樞府事 胡戾公 李念義, 1409?~1492)와 혼인 다섯째 언니 : 오덕기(吳慶基)와 혼인 여섯째 언니 : 정경부인 안성군부인 윤씨(貞敬夫人 安城郡夫人 尹氏) 여섯째 형부 : 서원부원군 문양공 한계미(西原府院君 文襄公 韓繼美, 1421~1471)와 혼인 - 한명회의 6촌이자, 성삼문의 고종사촌 남동생 : 영돈녕 파천부원군 양평공 윤사흔(領敦寧 坡川府院君 襄平公 尹士昕, 1422~1485) - 중종비 [[문정왕후]]의 고조부 올케 : 병정 김자온(兵正 金自溫)의 딸 계림 김씨(鷄林 金氏) *[[전주 이씨]] 시가 시부 : 제4대 [[세종대왕]](世宗大王, 1397~1450, 재위 1418~1450) 시모 : [[소헌왕후|소헌왕후 심씨]](昭憲王后 沈氏, 1395~1446) 남편 : 제7대 [[세조(조선)|세조대왕]](世祖大王, 1417~1468, 재위 1455~1468) 장남 : 추존 [[의경세자|덕종대왕]](德宗大王, 1438~1457) 맏며느리 : [[인수대비|소혜왕후 한씨]](昭惠王后 韓氏, 1437~1504) : 인수대비(仁粹大妃) 손자 : [[월산대군]](月山大君,1454~1488) 손부 : 승평부대부인 박씨(昇平府大夫人 朴氏 1455~1506) 손녀 : 명숙공주(明淑公主 1455~1482) 부마 : 당양군 소이공 홍상(唐陽君 昭夷公 洪常, 1457~1513) 손자 : 제9대 [[성종(조선)|성종대왕]](成宗大王, 1457~1494, 재위 1469~1495) 장녀 : 의숙공주(懿淑公主, 1442~1477) 차남 : 제8대 [[예종(조선)|예종대왕]](睿宗大王, 1450~1469, 재위 1468~1469) 며느리 : [[장순왕후|장순왕후 한씨]](章順王后 韓氏, 1445~1461) 손자 : [[인성대군]](仁城大君, 1461~1463) 며느리 : [[안순왕후|안순왕후 한씨]](安順王后 韓氏, 1445?~1498) 손녀 : [[현숙공주]](顯肅公主, 1464~1502) 손자 : [[제안대군]](齊安大君, 1466~1525) 손녀 : 혜순공주(惠順公主, 1468~1469) == 관련 항목 == * [[금강경삼가해]] * [[묘법연화경(보물 제1147호)]] * [[봉선사]] * [[수렴청정]] * [[예념미타도량참법]] * [[합천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불좌상]] [[분류:조선의 왕비]][[분류:아시아의 섭정]][[분류:파평 윤씨]][[분류:홍성군 출신 인물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