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목차] == 개요 == 貞和堂 金氏 대한제국 시절 [[민갑완]]과 마찬가지로 국제정세에 희생된 비운의 여인. 집안은 [[광산 김씨]]로 헌종의 무품 빈 [[경빈 김씨]]와 같은 집안이다. == 생애 == [[고종(대한제국)|고종]]의 새 왕후로 [[간택]]되었던 여인. [[을미사변]] 이후 간택되어 입궁했으나, [[춘생문 사건]]으로 무마되었다. 강제 출궁 후 처녀로 수절하다,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고 대한제국이 일제에게 병합한 뒤인 1917년에야 일본의 트집으로[* 일본으로 건너가 천황을 알현하고 오라는 요구를 고종이 거부하자 [[윤덕영]]이 고종의 허락을 받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김씨를 입궁시킨 것.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괴롭히는 윤덕영을 이기지 못한 고종은 자기 대신 순종으로 하여금 일본에 다녀오라고 말해 사실상 허락을 하고 만다.], 재입궁하여 후궁으로서 당호를 받았다. 품계는 상궁. [[영친왕]]의 아내로 고종 황제의 낙점을 받았던 [[민갑완]]이 끝내 결혼하지 않고 처녀로 늙어죽은 사례처럼, [[민갑완]]이나 그녀 역시 둘 다 간택에 확정되었으나 정지척 상황과 맞물려 희생된 것이다. 그녀가 1871년생이고 을미사변이 1895년이고 고종의 새 왕후 간택 역시 1895년이라고 치면, 그녀는 무려 22년 동안 처녀로 수절하다가 47세의 나이로 입궁하게 된 것이다.[* 일부 책에서는 그녀가 명성황후가 왕비로 책봉될 때 간택에서 떨어진 처녀라 쓰고 있으나 1917년 입궁 당시 47세였다면 1871년생으로 명성황후가 책봉된 1866년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다.] 그러나 고종 황제를 보지도 못한 채 궁궐 구석의 작은 방에서 살아야 했고, 고종이 사망하던 순간까지 내전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. 고종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비로소 유해나마 상면할 수 있었고, 황후는 커녕 후궁으로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한 채 평생 쓸쓸히 지내다 사망한다. [[분류:조선의 후궁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