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파일:정형근.jpg]] 鄭亨根 [[1945년]] 음력 [[7월 26일]] ~ ([age(1945-07-26)]세) [목차] == 개요 == [[대한민국]]의 전 법조인, [[공무원]], [[정치인]]이다. 본관은 [[해주 정씨|해주]](海州)[* 농포공파 22세 근(根) 항렬.], 호는 송산(松山)이다. [[임진왜란]] 때 의병장 [[정문부]]의 12대손이다. == 생애 == 1945년 [[경상남도]] [[거창군]] 마리면 영승리[[http://www.munhwa.com/news/view.html?no=199911065000601|#]]에서 6남 2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. 이후 부산 동신초등학교, [[경남중학교]], [[경남고등학교]](17회), [[서울대학교 법과대학]], 동 대학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. 학부 시절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역임하였다. 대학원 재학 중 [[사법시험]]에 합격하였고 [[대한민국 육군]] [[군법무관]]([[중위]])으로 병역의무를 이수하였다. 이후 [[검사(법조인)|검사]]로 근무하였다. 1983년부터 [[국가안전기획부]]에 파견되어 근무를 하였다. [[노신영]] 안기부장이 "'''똑똑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 보내달라"'''고 검찰에 요청해 정형근이 파견된 것. 안기부에 파견 직후 [[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]] 같은 주요 사건을 수사하였으며, 이후에는 공안통으로 방첩 분야에서 주로 일했다. 하지만 5~6공 내내 국가안전기획부에 소속돼 있을 때 [[고문]]을 지휘했고, 본인의 지인들을 돕고자 정보부 내 인맥을 활용해 약점을 잡는 등 무리한 일을 많이 벌여 '''주변에서는 찬사를, 정적들과는 불구대천의 척을''' 지게 되었다. 1986년에 '민족해방노동자당 사건' 관련자로 지목된 심진구(1960~2014)의 [[http://www.ohmynews.com/NWS_Web/view/at_pg.aspx?CNTN_CD=A0002058222|고문수사를 지휘했고,]] [[서경원]]은 밀입북 사건으로 수사받을 당시 안기부 대공조사국장이었던 정형근이 자신을 직접 고문했다며 석방 이후 폭로했다. 이로 인해 정형근은 DJ집권시절 검찰조사를 받을뻔 했는데, 그답게 용케 체포를 면했다.([[http://news.kbs.co.kr/news/view.do?ncd=3814278|KBS]], [[http://imnews.imbc.com/20dbnews/history/2000/1858712_19530.html|MBC]], [[http://news.donga.com/3/all/20000212/7507906/1|동아일보]]) 정형근이 벌인 일 중 크게 원한을 샀던 일 중 하나가 바로 '''상대방의 자식문제를 가지고 협박'''한 것이었다고 한다.[* [[측천무후]] 시절의 혹리(혹독한 관리) [[내준신]]이 심지 굳은 중신들을 압박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즐겨쓰는 등 역사가 오래된 수법이라고 한다. 앞서 언급한 내준신의 경우, 이 방법을 쓰면 결국 내준신 무리들이 원하는 대로 응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.] 이런 연유로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후, [[이후락]], [[전두환]]의 경우처럼 과거 [[김대중|DJ]]를 핍박하거나 죽이려 들었던 사람들이 세간의 예상과 다르게 정치보복 없이 비교적 평온하게 여생을 보낸 반면, '''유독 정형근만큼은''' 당사자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휴대전화를 바꿔쓴 적도 있을만큼 원한갚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. 1994년 말부터 1995년까지 국가안전기획부 제1차장을 역임하였으며, 1996년 [[제15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신한국당]] 후보로 [[부산광역시]] [[북구(부산)|북구]]-[[강서구(부산)|강서구]]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. 1999년 [[국가정보원]]의 언론대책 문건을 폭로하였다. 2000년 [[제16대 국회의원 선거]]와 2004년 [[제17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서 연속으로 당선되어 3선을 기록했으며 2006년 한나라당 [[전당대회]]에서 최고위원에 선출되었다. 참고로 2004년 선거 때는 [[열린우리당]] [[이철]] 후보와 맞붙어서 '''공안검사 VS 사형수'''라는 재미있는 구도가 나오기도. 2008년 [[제18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는 후배 법조인 [[박민식]]에 밀려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했고, 이에 승복해 정계를 떠나 [[변호사]]로 활동 중 얼마 안 되어 [[국민건강보험공단]] [[이사장]]으로 부임, 2011년까지 재임했다. 그리고 2011년부터 [[뉴라이트(대한민국)|뉴라이트]]전국연합 상임[[의장]]을 역임하였다. 하지만 제일저축은행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. == 사건 사고 == 1999년 [[옷 로비 사건]] 때 얼떨결에 [[앙드레 김]]이 예명을 쓰게 된 경위를 파헤쳤다. 목요상 당시 청문위원장이 앙드레 김에게 증인선서를 할 때 본명을 요구하면서 '''김봉남'''이라는 이름이 밝혀졌는데, 정형근이 질문 도중에 '''"어떻게 해서 앙드레 김이라는 예명을 쓰게 되었나?"'''라는 질문을 하고 이에 앙드레 김이 상세히 설명한 것이다. [[2005년]] 현직 국회의원일때 한 호텔방에서 40대 여자와 몇 시간 동안 같이 있다가 그녀의 남편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. 정형근은 자신이 주문한 필리핀산 묵주를 받기 위해 같이 있었다, 묵주를 주고 받느라 같이 있었다며 궁색한 변명을 했다. 그래서 "얼마나 특별한 묵주이길래 수령하는 데 몇 시간이 걸리냐" "호텔방에서 둘이 손 잡고 [[기도(종교)|기도]]만 하고 있었냐" 등의 조롱을 들었고, 끝내 '묵사마'라는 [[별명]]을 얻었다. 그뿐만 아니라 애초에 [[가톨릭]]에서는 [[간음|아내 외의 여자를 탐하지]] 말라고 가르친다[* [[모세의 십계명#s-1.2|십계명]]의 (가톨릭 기준) 6번째, 9번째 명령 참조. 정형근은 거짓말을 하지 말고, 간음하지 말며,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3개나 어긴 셈이 된다.] [[파일:external/www.sporbiz.co.kr/47489_72245_5828.jpg]] 같은 해 국회에서는 북한 간첩의 통신목록이 들어있는 디스켓을 증거로 입수했다고 하다가 디스켓을 보여달라는 기자의 요구에 디스켓을 '''[[복사기]]로 복사후 인쇄한 A4용지를'''을 들고 나와버리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[[컴맹]] 인증을 한 적도 있다.[* 정 씨가 40년대 중반 출생인 걸 감안할 때,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. 다만 어려운 사법고시에 합격해 3선 의원까지 지낸 실력자도,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않으면, 이런 망신을 당할 수 있다는 걸, 세간에 깊이 인식시켜 준 해프닝 중 하나.] == 여담 == * 사위(서봉규)도 검사이며 과거에 대전지검 영동지청장, 대구지검 포항지청장을 지냈고 현재는 광주고검 전주지부에서 근무하고 있다.(연수원 26기). == 선거 이력 ==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. || 연도 || 선거종류 || 소속정당 || 득표수(득표율) || 당선여부 || 비고 || || 1996 || [[제15대 국회의원 선거]] (부산 [[북구·강서구 갑|북·강서 갑]]) || '''[[신한국당]]''' || '''56,876 (60.08%)''' || '''당선 (1위)''' || || || 2000 || [[제16대 국회의원 선거]] (부산 북·강서 갑) || '''[[한나라당]]''' || '''48,104 (76.56%)''' || '''당선 (1위)''' || || || 2004 || [[제17대 국회의원 선거]] (부산 북구·강서구 갑) || '''[[한나라당]]''' || '''41,547 (51.15%)''' || '''당선 (1위)''' || || == 둘러보기 == [include(틀:제15대 국회의원/부산광역시)] [include(틀:제16대 국회의원/부산광역시)] [include(틀:제17대 국회의원/부산광역시)] [[분류:거창군 출신 인물]][[분류:해주 정씨]][[분류:1945년 출생]][[분류:대한민국의 뇌물 범죄자]] [[분류:서울대학교 출신]][[분류:제15대 국회의원]][[분류:제16대 국회의원]][[분류:제17대 국회의원]][[분류:신한국당 국회의원]][[분류:한나라당 국회의원]][[분류:공무원 출신 정치인]] [[분류:경남고등학교 출신]][[분류:친이]][[분류:대한민국의 보수주의자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