||<bgcolor=#ffffff,#191919><table width=100%> '''{{{#000000,#e5e5e5 정진영의 수상 및 영예 }}}''' || ||<bgcolor=#ffffff,#191919> {{{#!folding [ 펼치기 · 접기 ] ||<table align=center> '''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''' || ||<bgcolor=#028935> '''[[1997-98 KBL 챔피언결정전|{{{#fed300 1998}}}]]''' || }}} || ||<-2><table align=center> [[파일:/image/065/2005/07/04/jung_0.jpg]] || || '''이름''' || 정진영 (鄭鎭永) || || '''생년월일''' || [[1973년]] [[6월 26일]] ([age(1973-06-26)]세) || || '''국적''' || [[대한민국]] || || '''출신학교''' || 광신상고 - [[건국대학교]] || || '''포지션''' || [[포인트 가드]], [[슈팅 가드]] || || '''신체 사이즈''' || 184cm, 76kg || || '''프로입단''' || 1996년 [[전주 KCC 이지스|현대전자 농구단]] 입단 || || '''소속팀''' || [[전주 KCC 이지스|현대전자/대전 현대 다이냇/걸리버스]] (1996~1998) [br] [[부산 kt 소닉붐|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]] (1998~2000) [br] [[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|울산 모비스 피버스]] (2000~2004) [br] [[창원 LG 세이커스]] (2004) [br] [[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|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]] (2004~2005) || [목차] == 개요 == [[대한민국]]의 前 농구 선수. == 고교-대학 시절 == 90년대 초 갑자기 고교농구계에 유망주들이 쏟아져나오던 시절, 중위권 팀이던 광신상고를 대표하는 에이스였다. [[김현준(농구)|김현준]], [[문경은]]의 광신상고 후배이고 3점슛이 좋다는 점 때문에 이들의 후계자로 불리기도 했으나, 당시 고교농구계를 석권하던 휘문고 [[석주일]]-[[서장훈]]-[[현주엽]], 용산고 [[김병철]]-~~[[양경민(1972)|양경민]]~~, 경복고 [[전희철]]-[[우지원]], 홍대부고 [[이상민(농구)|이상민]]에 밀려 거의 무명 수준이었고, 2학년 때인 1990년 협회장기에서 우승컵을 들긴 했으나[* 상술한 강호들이 모두 불참한 대회였다.] 정작 3학년 때 단 한 차례도 4강에 오르지 못한 비운의 에이스이기도 했다. [[건국대학교]] 시절 1학년 때부터 주전이자 실질적 에이스였지만, 동갑내기 [[전희철]]이 국대에 뽑히고 [[우지원]]-[[김병철]]이 오빠부대를 몰고다니던 시절, 약체 건국대를 홀로 이끌다시피 했던 정진영은 [[대학농구연맹전]] 차수별 대회 예선 통과도 버거울 정도였고 그만큼 전국에 얼굴을 알릴 기회도 적었다. ~~[[채치수]]??~~ 그러다 3학년이던 1994년, [[변청운]](192cm), [[황문용]](191cm) 등 좋은 신입생들을 받으면서 드디어 고독한 에이스에서 벗어나 건국대를 [[1994 대학농구연맹전]] 1차대회 4위로 이끄는 등 모처럼 호성적을 거두었고, 이 성적을 바탕으로 건국대에 [[1994-95 농구대잔치]] 출전티켓을 안긴다.[* 당시 농구대잔치 출전권은 시즌 성적을 합산하여 12개 대학팀 중 단 6팀에게만 주어졌다.] 첫 출전한 농구대잔치에서 정진영은 평균 20점을 올리며 에이스의 역할을 톡톡히 했지만, 팀은 [[1994-95 농구대잔치]]에서 정규리그 1승 12패로 14개 팀 중 전체 꼴찌를 차지한다.[* 유일한 1승은 같은 대학팀인 한양대를 꺾은 것이었다.] 4학년이 된 정진영은 이상백배 한일대학농구대회 대학선발에 뽑히는 등 슬슬 인지도를 높여갔지만, 정작 팀이 [[1995 대학농구연맹전]]에서 연거푸 예선 탈락하는 등 성적이 좋지 못한 바람에 졸업전 마지막 [[1995-96 농구대잔치|농구대잔치]]에 참가하지 못한 채 황소군단의 유니폼을 벗는다. 건국대 졸업 후 정진영은 계약금 2억원에 세대교체 중이던 [[전주 KCC 이지스|현대전자 농구단]]의 1996년도 유일한 신인으로 입단한다. == 실업-프로 시절 == [[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|대우증권]], [[고양 오리온 오리온스|동양제과]]의 창단으로 92학번의 우수 선수들 중 연세대, 명지대(이상 대우증권 지명), 고려대, 한양대(이상 동양제과 지명) 선수들이 대거 신생팀으로 가면서, 팀의 유일한 신인이던 정진영은 비교적 쉽게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. 데뷔무대였던 4월 코리안리그 실업연맹전에서부터 일약 팀의 에이스로 올라서며 현대전자를 전체 3위로 이끌더니[* 이 때 우승팀은 [[전희철]]이 이끌던 창단팀 [[고양 오리온 오리온스|동양제과]]였다.], KBL 출범 직전 마지막 농구대잔치였던 [[1996-97 농구대잔치]]에서는 평균 22점(득점 7위)을 올리며 그야말로 맹활약, [[유도훈]], [[정경호(농구)|정경호]] 등과 함께 [[전주 KCC 이지스|현대전자]]가 실업부 2위로 6강 플레이오프에 오르는데 일등공신이 되고, 당시 언론들은 정진영의 맹활약을 "무명의 반란" 등으로 소개하며 [[전희철]](동양제과), [[김희선(농구)|김희선]](삼성전자)과 함께 신인왕 후보로 언급하기도 했다.[* 하지만 현대는 6강에서 대학부 3위팀인 경희대에 1승 2패로 탈락하고 만다. 당시 정진영은 경희대 2학년 [[강혁(농구)|강혁]]에 틀어막혔다.] [[파일:/pds/200902/13/52/c0013152_4994e2f533e6a.jpg]] [[1996-97 농구대잔치]] 직후 열린 1997년 KBL 원년시즌에서도 정진영은 14.5득점-1.9리바-2.7어시-1.5스틸을 올리며 토종에이스(팀내 득점 2위, 어시스트/스틸 1위)로 맹활약했지만, 외인 콤비 토드 버나드(C, 193cm)-라펠 맥길버리(F, 190cm)가 타 팀들에 비해 떨어졌던 탓에 소속팀이 원년시즌 8팀 중 7위에 머무는 것을 막지 못했다. 1997-98 시즌 [[국군체육부대|상무]]에서 [[이상민(농구)|이상민]], [[조성원]]이 돌아오고, 대학 최고의 포워드 [[추승균]]이 입단하면서, 전 시즌 에이스였던 정진영은 졸지에 후보로 밀리게 된다. 팀은 1997-98 시즌 챔피언에 올랐지만 정진영의 출전시간은 정규리그 평균 13분, 플레이오프 이후부터는 4분에 그쳤고, 시즌 종료 직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소한다. 그래도 재능은 인정받아서, 공익근무요원 복무 중이던 1998년 당시 [[신선우]] 감독의 로렌조 홀(C, 203cm) 영입 작전[* 당시 외국인 선수 1순위 선발권은 [[부산 kt 소닉붐|광주 골드뱅크]]가 가지고 있었다.1998년 당시 광주 골드뱅크는 IMF 여파로 부도위기를 맞은 나산그룹으로부터 농구단을 인수하면서 [[이민형]](F, 190cm), 김영주(G, 180cm), 김현국(F, 189cm) 등 노장들을 반강제로 은퇴시킨 상태라 선수층이 얇은 팀이었고, 이에 [[신선우]] 감독은 광주 골드뱅크가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서 로렌조 홀을 패스하는 것을 조건으로 대전 현대가 선수층이 얇은 광주 골드뱅크에게 유리한 1:2 트레이드(대전 현대 get: 최명도 ↔ 광주 골드뱅크 get: 정진영, 박재현)를 제안하였다. 이후 다음 순번인 [[서울 SK 나이츠|청주 SK]]와는 [[재키 존스]](C, 202cm)와 로렌조 홀의 맞트레이드를 통해 로렌조 홀을 영입했다. 하지만, 정작 현대는 SK의 [[재키 존스]]를 막지 못하며 챔프전에서 졌다(...)]의 반대급부로 [[부산 kt 소닉붐|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]]로 이적한다.[* 결국 이 트레이드는 삼각 트레이드였다. 대전현대 get: 최명도(from 광주 골드뱅크), 로렌조 홀(from 청주 SK) ↔ 광주 골드뱅크 get: 박재현/정진영(from 대전 현대) ↔ 청주 SK get: [[재키 존스]](from 대전 현대)] 소집해제 후 입단한 [[부산 kt 소닉붐|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]]에선 [[포인트 가드]]와 [[슈팅 가드]]를 넘나들며 평균 11.4득점-2.8리바-5.7어시-1.5스틸을 기록[* 팀내 득점 4위, 어시스트 2위, 스틸 1위였다. 팀내 득점 1-2-3위는 [[에릭 이버츠]]-[[현주엽]]-키이스 그레이였고, 어시스트 1위는 경기당 7.1 어시를 기록한 [[파워 포워드]] [[현주엽|매직히포]]였다.], 팀의 주전으로서 여전한 기량을 과시하지만, 얇은 선수층 탓에 시즌 막판 갑자기 9연패를 당하는등 무너지며 아깝게 6강 티켓을 놓치고 만다. [[파일:정진영_농구.jpg]] 광주 골드뱅크에서 한 시즌을 뛴 후에 2:2 트레이드.(광주 골드뱅크 get: [[정인교(농구)|정인교]], [[봉하민]] ↔ 울산 모비스 get: 정진영, 박재현)로 [[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|울산 모비스 오토몬스]]로 다시 이적했다. 이적 후 처음 두 시즌에는 주전과 식스맨을 넘나들며 ~~[[강동희]]~~-[[김영만(농구)|김영만]]과 함께 팀의 백코트에서 존재감을 보여줬지만, 2002-03 시즌 [[최희암]] 감독이 부임하고 시작된 팀 리빌딩 작업[* 이때 ~~[[강동희]]~~-[[김영만(농구)|김영만]]이 차례로 트레이드 되었다. ~~말이 개편이지 실제론 기아자동차 시절 흔적 지우기~~] 이후 [[전형수]] 등에 밀려 완전히 후보선수로 밀려났고, 2004-05 시즌을 앞두고 [[창원 LG 세이커스]]의 길도익(F, 191cm)과 1:1 트레이드 되었다. 2004-05 시즌 [[창원 LG 세이커스]]에선 부상 등을 이유로 단 한게임밖에 뛰지 못했고, 2004-05 시즌 중 [[김재훈(농구)|김재훈]]과 함께 [[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|인천 전자랜드]]의 [[김훈(농구)|김훈]], 김동언과 2:2 트레이드로 다시 이적한다. [[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|인천 전자랜드]]에서 팀의 식스맨이자 나름 슬래셔로 마지막 불꽃을 태웠으나, 2004-05 시즌을 마치고, 벤치에 계속 있으니 다른 길을 찾겠다며 은퇴했다. 실업 초년차와 프로 원년의 임팩트로 보면 한 팀의 주전멤버로 손색이 없었으나, 유난히 팀 운이 따르지 않았던 선수였다. [[전주 KCC 이지스|대전 현대]]에서 주전으로 잘나가나 싶더니 갑자기 [[이상민(농구)|이상민]], [[조성원]]이 돌아오고, [[부산 kt 소닉붐|광주 골드뱅크]]에서 주전으로 한 시즌을 잘 뛰고 있는데 갑자기 ~~[[강동희]]~~가 있는 [[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|팀]]으로 트레이드 되지 않나, 그래도 거기서 겨우 자리를 잡았더니 웬 [[최희암|고집 센 꼰대 감독]]이 떡하니 등장해 이유 없이 출전시간을 뺏질 않나... 가진 재능에 비해 빛을 많이 보지 못했던, 아쉬운 선수 중 한 명이다. == 관련 문서 == * [[농구 관련 인물(한국)]] [각주] [include(틀:문서 가져옴, title=정진영, version=84)] [[분류:대한민국의 농구 선수]][[분류:1973년 출생]][[분류:1996년 데뷔]][[분류:2005년 은퇴]][[분류:포인트 가드]][[분류:슈팅 가드]][[분류:전주 KCC 이지스/은퇴, 이적]][[분류:부산 kt 소닉붐/은퇴, 이적]][[분류: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/은퇴, 이적]][[분류:창원 LG 세이커스/은퇴, 이적]][[분류: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/은퇴, 이적]][[분류:건국대학교 출신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