|||| [[파일:external/tv03.search.naver.net/20070313140019197819482.jpg]] || || 이름 ||<(> 정인영(鄭仁永) || || 출생 ||<(> [[1920년]] [[5월 6일]]([[강원도]] [[통천군]]) || || 사망 ||<(> [[2006년]] [[7월 20일]](향년 86세) || || 본관 ||<(> [[정(성씨)|하동 정씨]] || || 학력 ||<(> [[아오야마가쿠인대학]] 중퇴 || || 가족 ||<(> 부인 김월계[* 2003년에 타계.][br]고명딸 정형숙[* 1974년에 사망.], 장남 정몽국, 차남 정몽원 || [목차] == 개요 == [[대한민국]]의 [[기업인]]. [[한라그룹]] 명예회장. 1920년 5월 6일 태어났다. [[정주영]] [[현대그룹]] 창업주의 첫째 동생이자, [[정순영]][* [[성우그룹]] 명예회장.], [[정세영]], [[정상영]][* [[KCC그룹]] 명예회장.]의 형이다. 자세한 가족관계에 대해서는 [[범 현대가]] 문서 참조. == 생애 == 14살에 [[서울특별시]]로 올라와 야간 YMCA 영어과에서 2년 동안 공부한 뒤 [[일본]]으로 유학, [[아오야마가쿠인대학]] 야간 [[영어영문학과|영어과]]를 다니다 2학년을 중퇴하고 귀국, [[동아일보]] 기자가 되었다. 1950년, [[6.25 전쟁]]으로 가족들과 함께 부산에서 피난생활을 하던 도중 [[미군]] 사령부 통역 모집 광고를 접하고 지원하며 미군 [[통역장교]]로 근무하였다. 미군 [[공병]]부대 장교 통역 생활을 하면서 일종의 [[정경유착]]으로 미군 발주 공사를 형 [[정주영]]에게 연결하여 [[현대건설]]이 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줬다. 전쟁이 끝난 1953년에 현대건설에 합류하여 부사장직을 역임하며 1965년, 태국의 [[파티니-나라티왓 고속도로]], 1971년 베트남 공사 등을 수주하며 정주영을 보필했다. 현대건설 부사장을 하던 도중인 1962년,“부존자원 없는 나라에서 [[중공업]] 개발 없이는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.”면서 경기도 군포에 한라그룹의 모태가 되는 [[현대양행]]을 '''독자적으로 설립'''한다. 그 뒤 1969년에 현대건설 사장, 1970년 현대아메리카 사장직을 역임했다. 그러나 1970년에 [[현대그룹]]의 중동진출에 제동을 걸며 '중동 진출 신중론'을 펴며 정주영과 갈등을 빚었고 결국, 1977년, 현대건설을 떠나 현대양행[* 여담으로 손혜원 20대 국회의원도 1981년 현대양행 기획실 디자이너로 근무한 바 있음.]에 완전히 정착하며 1978년, 한라건설, 1980년, 한라자원, 1980년 [[만도기계]][* 국내에 [[김치냉장고]]를 정착시킨 '딤채'가 바로 1995년 만도에서 나온것이다.], 1980년 인천조선 (1990년 한라중공업으로 개명, 홍보실 오일용 상무), 1984년 한라시멘트 등을 설립하며 독립적으로 [[한라그룹]]을 만든다. 승승장구하며 1996년에는 자산 6조 2000억원, 매출 5조 3000억원, 종업원 2만여명이 딸려 있는 자산총액 기준 12위의 [[재벌]]로 성장했다. 그러나 은행대출에 의존한 무리한 확장으로 부채비율이 무려 1000%에 달하는 상황에서 1997년 [[외환 위기]]가 터지자 심각한 자금난에 빠지면서 공중분해 직전 상황까지 몰린다. 이후 상당수 계열사와 부동산을 외국에 매각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그룹의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다. 참고로 한라그룹은 2013년 [[공정거래위원회]] 발표에서 자산총액 7조5000억원으로 [[공기업]]을 제외한 '[[순환출자|출자총액제한]] 기업집단' 순위에서 39위에 올랐다. 그 뒤 차남 [[정몽원]]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나서 [[명예회장]]으로 지내다가 2006년 7월에 숙환으로 별세했다. == 직장생활 == 그는 비즈니스는 사람 대 사람의 관계이기 때문에 정감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소소한 거래처나 이해관계자라 해도 서신을 주고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. 1989년, [[뇌졸중]]으로 쓰러진 후 [[휠체어]]를 타고 다녀야만 했다. 그러면서도 1990년대에는 연간 200일 가까운 해외출장을 감수했다. 당시 언론에서는 '휠체어의 부도옹([[오뚝이]])'이라고 불렀다. 참고로 2018년 [[만도]]에서는 휠체어를 타게 된 장애인들에게 휠체어를 지원하는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다. 열심히 하고 능력 있는 사람은 [[뛰어난 아랫사람]]의 지위에 남겨두지 않고 초고속 승진시켰다. 대리 [[경력직]]으로 입사해서 5년만에 상무를 달았던 사례가 있다.[* 일반인은 아무리 과장부터 시작해도 상무 달 때까지 15년 이상 걸린다.] 이런 고속 승진에 대해 기존 직원들의 반대가 심했으나 묵살했다. [Include(틀:문서 가져옴, title=정인영, version=105)] [[분류:대한민국의 기업인]] [[분류:1920년 출생]] [[분류:2006년 사망]][[분류:아오야마가쿠인대학 출신]][[분류:한라그룹]] [[분류:범 현대가]] [[분류:통천군 출신 인물]] [[분류:실향민]] [[분류:강원도(북한) 출신 인물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