||<tablebordercolor=#808080><tablebgcolor=#FFFFFF><-2><tablealign=right><tablewidth=420> {{{#!wiki style="margin: -6px -10px" [[파일:정인성 교수(고고학자).jpg|width=100%]]}}} || ||<width=20%><colbgcolor=#808080> '''{{{#FFFFFF 이름}}}''' ||<(> '''정인성(鄭仁盛)''' || || '''{{{#FFFFFF 출생일}}}''' ||<(> [[1969년]] || || '''{{{#FFFFFF 출생지}}}''' ||<(> [[경상남도]] [[남해군]] || || '''{{{#FFFFFF 학력}}}''' ||<(> [[경북대학교]] {{{-1 (고고인류학과 / [[학사]])}}}[br][[경북대학교]] {{{-1 (고고인류학과 / [[석사]])}}}[br][[도쿄대학]](東京大学) {{{-1 (고고학 / [[박사]])}}} || || '''{{{#FFFFFF 현직}}}''' ||<(> [[영남대학교]] 문화인류학과 교수[br][[영남대학교]] 박물관장 || || '''{{{#FFFFFF 약력}}}''' ||<(> [[고려대학교]] 고고환경연구소 연구조교수[br]일본학술진흥회 특별연구원[br][[와세다대학]] 객원 조교수[br][[도쿄대학]] 문학부 외국인연구원[br][[도쿄도]] [[히노시]] 유적조사회 촉탁조사원[br][[도쿄대학]] 문학부 비상근연구원[br][[도쿄도]] [[히노시]] 유적조사회 주임조사원[br][[도쿠시마대학]] 고고학연구실 초청연구원 || [목차] [clearfix] == 소개 == 대한민국의 [[고고학자]], 교수. == 생애 == [[1969년]] [[경상남도]] [[남해군]]에서 태어났다. [[경북대학교]] [[경북대학교/학부/인문대학|인문대학]] 고고인류학과에서 학사, 석사학위를 받았고, 일본으로 유학해서 [[도쿄대학]](東京大学)에서 고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. [[도쿄대학]] 문학부 외국인연구원, [[와세다대학]] 객원 조교수, [[고려대학교]] 고고환경연구소 연구조교수 등을 거쳐서, [[2007년]] [[영남대학교]]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후학을 양성하고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. == 연구 == 주요 연구 분야는 한국고대고고학, 한국철기문화, 낙랑문화, 동북아역사고고학, 실험고고학, 식민지고고학이다. 그 중에서도 낙랑고고학, 고구려고고학, 발해유물, 식민지 고고학사, 진한대(秦漢代) 고고학, 중국 전국시대 고고학 등이다. 1998년 도쿄대에 세형동검을 연구하러 유학했다가 창고에 일제강점기 때 반출된 조선 유물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세키노와 야쓰이의 초창기 고적조사 연구에 몰입하게 됐다고 한다. 2002년 「樂浪文化の考古學的硏究」(낙랑문화의 고고학적 연구)로 박사학위를 받았다. [[http://www.hani.co.kr/arti/culture/culture_general/761665.html#csidxe0ccc685764f8a7ac4a91ca76bb2d29|기사]] ‘왕검성 대동강북안설’에 대해 반박하며 [[위만조선]]과 [[왕검성]]의 위치를 오늘날 [[요동 반도]]로 비정하였다. “위만조선 왕검성은 오히려 요동반도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군현이 설치되면서 대동강 유역권으로 옮아왔을 가능성이 높다.”고 하였다. 2015년에는 [[경산시|경산]] [[경산시/행정#s-1.3|북부동]]의 임당동과 조영동에 소재한 [[임당동 고분군]]이 도굴된 사건을 언론에 알렸다.[[http://www.hani.co.kr/arti/culture/culture_general/687293.html|[단독] 국가사적 삼국시대 고분 무참히 파헤쳐졌다]] 그리고 [[임당동 고분군]]의 사료적, 고고학적 가치를 알렸다. [[https://www.kbmaeil.com/news/articleView.html?idxno=364242|경산 임당동 고분 등 도굴 7명 검거]] == 주요 저서 == 정인성 외 공저, 2007. 02, 『한국고고학강의』, 한국고고학회. 정인성 외 공저, 2008. 08, 『일본에 있는 낙랑유물』, 학연문화사 . 정인성, 2010. 03, 『한일 청동기문화의 교류(농경·금속문화와 한일관계)』, 景仁文化社. 정인성 외 공저, 2011. 10, 『동아시아 고분문화』, 중앙문화재연구원. 정인성 외 공저, 2011. 11, 『일본소재 고구려유물』, 4, 동북아역사재단. 정인성 외 공저, 2012. 06, 『영남지역 원삼국시대 목관묘』, 학연문화사. 정인성 외 공저, 2012. 08, 『원삼국·삼국시대 역연대론』, 학연문화사. 정인성 외 공저, 2015. 08, 『낙랑 고고학 개론』, 진인진 정인성 외 공저, 2015. 11, 『영남의 고고학』, 사회평론아카데미. 정인성 외 공저, 2015. 11, 『한국 상고문화와 중국 동북지방』, 고려대학교 출판문화원. 정인성, 2017. 07, 『낙랑토성(번역서)』, 국립문화재연구소. 정인성 외 공저, 2018. 02, 『영산강유역 마한제국과 낙랑 · 대방 · 왜』, 진인진. 정인성 외 공저, 2018. 09. 『역사 여명기의 종족 정체성』, 진인진. 정인성 외 공저, 2018. 09, 『원사시대의 사화문화변동』, 진인진. 정인성 외 공저, 2019. 12, 『일본소재 고구려유물』, 동북아역사재단. [각주] [[분류:남해군 출신 인물]][[분류:고고학자]][[분류:1969년 출생]][[분류:경북대학교 출신]][[분류:교수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