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]][[분류:한국의 독립운동가]][[분류:조선 의병장]][[분류:연일 정씨]][[분류:광주시 출신 인물]][[분류:1874년 출생]][[분류:몰년 미상]][[분류:건국훈장 애족장]] || 성명 ||정원경(鄭元景) || || 본관 ||[[연일 정씨]][* 지주사공파, 포은공파.][* 홍순석, 「포은가문의 절의(節義)와 계승」, 『용인향토문화연구』 제13집, 용인향토문화연구회, 2013, 107쪽.[[https://memory.library.kr/files/original/ca453ca5c1bd1f505f698b1a37ffc456.pdf|#]]] || || 생몰 ||[[1874년]] [[2월 10일]] ~ ? || || [[출생지]] ||[[경기도]] [[광주시|광주유수부]][br](현 경기도 [[광주시]]) || || 사망지 ||미상 || || 추서 ||건국훈장 애족장 || [목차] == 개요 == 한국의 독립운동가.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. [[연일 정씨]] 포은공파로 [[정몽주|포은 정몽주]]의 후손이다. == 생애 == 정원경은 1874년 2월 10일 경기도 광주군(현 광주시)에서 태어났다. 이후 선대의 세거지인 경기도 [[용인시|용인군]] [[모현읍|모현면]] 고밀동으로 이주했다. 그는 1908년 4월 경기도 용인군에서 이익삼(李益三)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하여 4월 10일 [[정기인]]·김장옥(金長玉) 등 20여 명과 함께 경기도 용인군 수여면 금량시(金良市)에서 광목 4필, 짚신 20족을 군수품으로 모집하였다. 같은 해 5월 15일에도 경기도 용인군 하동면 삼배울(三倍蔚)에서 현금 20원을 군자금으로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. 1910년 1월 24일 경성지방재판소(京城地方裁判所)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.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.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정원경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