鄭泳 (? ~ 1398) [[조선]]의 인물. [[정도전]]의 차남. [[정진]]의 동생. [[정유(조선)|정유]], [[정담]]의 형. 정담(鄭澹)이라고도 한다. 봉화현 사람으로 1396년에 도승지에 임명되었고 1397년에 [[이성계]]의 명으로 박자안을 석방하면서 직첩을 회수한 후에 장형 1백대를 집행하고 삼척으로 유배보내도록 했으며, 1398년에는 중추원부사에 임명되었다. 그러나 이성계가 여덟째 아들인 [[의안대군#s-1|의안대군]]을 책봉해 세자로 세우자 [[신의왕후]] 한씨 소생의 이복형들이 불만을 품었으며, [[태종(조선)|이방원]]이 주도적으로 군사를 일으켜 [[제1차 왕자의 난]]이 일어났다. 이방원이 군사를 일으키면서 [[정도전]], [[남은]] 등 수많은 개국공신들이 목숨을 잃는데, 이 때 정영은 동생인 정유와 함께 변고가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이를 구원하러 가다가 병사들에게 살해당했다. <봉화정씨세보>에 따르면 정영은 정도전의 둘째 아들이 아니라 정도전의 셋째 아들이다. 이 때문에 《조선왕조실록》, <봉화정씨세보>에 정도전의 가족관계가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《조선왕조실록》에서 정영에 대해 사관이 가족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아서 잘못 기록한 것이라는 의견이 있는데, 그 근거로 둘째 아들로 나온 [[정영]]은 영(泳) 또는 담(澹)이라 하고 넷째 아들로 정담이 나와 정도전이 자식의 이름을 동일한 음으로 지은 것처럼 나온 이 부분이 오류라는 것이다. 드라마 [[정도전(드라마)|정도전]]에서도 등장하는데, <봉화정씨세보>에 근거해 정도전의 아들이 세 명으로 나왔지만, 제작진이 《[[조선왕조실록]]》도 참조해서 정영이 정도전의 차남으로 나온다. [[분류:조선/인물]][[분류:봉화 정씨]][[분류:1398년 사망]][[분류:살해된 인물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