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/선수단)] ---- ||<table width=100%><table align=center><tablebgcolor=#ff7518> '''{{{#ffffff 정영삼 관련 틀 }}}''' || ||<bgcolor=#ffffff,#191919> {{{#!folding [ 펼치기 · 접기 ] ---- [include(틀:한국프로농구 주장)] ---- ||<table width=100%><table align=center><tablebgcolor=#ff7518> '''{{{#ffffff 정영삼의 역대 등번호 및 수상}}}''' || ||<bgcolor=#ffffff,#191919> {{{#!folding [ 펼치기 · 접기 ] ---- [include(틀:KBL 역대 자유투상)] ---- ||<-5><table align=center><bgcolor=#ff7518><color=#373a3c> '''[[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|{{{#ffffff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}}}]] {{{#ffffff 등번호 11번}}}''' || || 김택훈(2006~2007) || → || '''정영삼(2007~2008)''' || → || [[서장훈]](2008~2011) || ||<-5><bgcolor=#ff7518><color=#373a3c> '''[[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|{{{#ffffff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/엘리펀츠}}}]] {{{#ffffff 등번호 3번}}}''' || || [[정선규]](2006~2008) || → || '''정영삼(2008~2010)''' || → || 송수인(2012~2013) || ||<-5><bgcolor=#ff7518><color=#373a3c> '''[[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|{{{#ffffff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}}}]] {{{#ffffff 등번호 2번}}}''' || || 박승환(2006~2007) || → || '''정영삼(2010~2011)''' || → || 이현민(2011~2012) || ||<-5><bgcolor=#ff7518><color=#373a3c> '''[[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|{{{#ffffff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}}}]] {{{#ffffff 등번호 8번}}}''' || || 박광재(2011~2012) || → || '''정영삼(2013~2014)''' || → || 김태형(2014~2015) || ||<-5><bgcolor=#ff7518><color=#373a3c> '''[[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|{{{#ffffff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}}}]] {{{#ffffff 등번호 20번}}}''' || || 손장훈 (2010~2012) || → ||<bgcolor=#0046ad> '''{{{#ffffff 정영삼(2014~)}}}''' || → || 현역 || ---- }}} || }}} || ||<-3><table align=right><table width=450><table bordercolor=#ff7518><table bgcolor=#ffffff,#191919>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; padding: 7px 10px; background-image: linear-gradient(to bottom, #ff7518 0%, #ff7518)" {{{+1 {{{#ffffff '''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No.20'''}}}}}}}}} || ||<-3><height=40><bgcolor=#0046ad> {{{#ffffff '''INCHEON ETLAND ELEPHANTS'''}}} || ||<-3>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정영삼2020-21.png|width=80%]]}}} || ||<-3><height=40><bgcolor=#0046ad> '''{{{+2 {{{#white 정영삼}}}}}}''' || ||<|2><-2><colbgcolor=#ff7518><height=40> {{{#ffffff ''' 출생 ''' }}} ||[[1984년]] [[4월 21일]] ([age(1984-04-21)]세) || ||[[파일:거제시 CI.svg|height=18]] [[경상남도]] [[거제시]][* 초등학교 5학년 때 [[대구광역시]]로 이사갔었다고 한다.] || ||<-2><height=40> {{{#ffffff ''' 국적 ''' }}} ||[[파일:대한민국 국기.svg|width=28]] [[대한민국]] || ||<-2><height=40> {{{#ffffff ''' 신체 ''' }}} ||[[키(신체)|키]] 186.7cm|[[체중]] 88kg || ||<-2><height=40> {{{#ffffff ''' 포지션 ''' }}} ||[[슈팅 가드]] || ||<-2><height=40> {{{#ffffff ''' 학력 ''' }}} ||대성초등학교{{{-2 (졸업)}}}[br]계성중학교 {{{-2 (졸업)}}}[br][[계성고등학교(대구)|계성고등학교]] {{{-2 (졸업)}}}[br][[건국대학교]] {{{-2 (졸업)}}} || ||<-2><height=40> {{{#ffffff ''' 프로입단 ''' }}} ||[[2007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|2007년 드래프트]] {{{-2 (1라운드 4순위, [[창원 LG 세이커스|창원 LG]][* [[최승태(농구)|최승태]] 트레이드 때 지명권 교환으로 실제 입단팀은 인천 전자랜드])}}} || ||<-2><height=40> {{{#ffffff ''' 병역 ''' }}} ||[[파일:attachment/sangmu.png|width=30]] [[상무 농구단]] (2011~2013) || ||<-2><height=40> {{{#ffffff ''' 소속 ''' }}} ||[[파일:external/s20.postimg.org/Elephants_eng_emblem.png|width=30]] '''[[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]] (2007~ )''' || ||<-2><height=40> {{{#ffffff ''' 응원가 ''' }}} ||[[신현희와 김루트]] - 오빠야[* 내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~ 정!영!삼! 혼자 끙끙 앓다가 죽어 버릴것만~ 정!영!삼!] || [목차] [clearfix] == 개요 == [[대한민국]]의 [[농구]] 선수. == 아마추어 시절 == [[거제시]] 출신으로 5학년 때 대구광역시로 이사를 갔다. 이후 대구로 이사 후 전학간 학교인 대성초에 농구부가 있었고 농구부 테스트를 하면 자장면과 탕수육을 준다는 친구의 말에 입단 테스트를 봤다고 한다. 테스트 후 농구부를 하면 매일 자장면과 탕수육을 사준다는 말에 농구를 시작했다고 한다. 이후 계성중과 계성고에 진학했다. 계성고를 졸업하고 [[건국대학교]]에 진학했다. [[건국대학교]]에서 [[노경석]]과 함께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다.[* 본인은 노경석이 더 농구를 잘했다고 했다.] 돌파력이 뛰어나고, 준수한 슈팅력을 갖췄는데, 특히 장신 선수들과 수비벽을 헤집고 들어가 성공시키는 돌파력으로 명성이 높았다. 비록 팀 전력이 강하지 않아서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, 대학 무대 최고의 [[슬래셔#s-6]]로 이름을 날렸다. == [[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]] 시절 == 2007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4번[* 원래 [[창원 LG 세이커스|창원 LG]]의 픽이었다. [[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|전자랜드]]가 [[최승태(농구)|최승태]]를 [[창원 LG 세이커스|LG]]로 보내면서 1라운드 지명권을 대신 받아온 것. 여담으로 당시 드래프트 1~3픽은 [[김태술]], [[이동준(1980)|이동준]], [[양희종]]으로, 뽑기운 더럽게 안 좋기로 유명한 전자랜드답게 다른 팀에서 받아온 픽조차 1~4픽 중 4픽이 걸린 것.]으로 [[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|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]]에 지명받아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. 드래프트 후 팀에 합류했을 당시 용병 키마니 프렌드는 왜 저렇게 잘하는 선수가 지금 당장부터 뛰지 못하냐고 아쉬움을 드러냈을 정도로 극찬을 받았다.[* 당시에는 2월에 드래프트를 해서 그 다음 시즌부터 뛸 수 있었다.] 프로 선수로서 데뷔 첫 해에는 주전과 [[식스맨]]을 오가면서 팀의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주로 했고,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. 그리고 정영삼의 주가를 단 번에 올리는 일이 벌어지는데, 바로 [[2008 베이징 올림픽]] 세계 예선전이었다. 젊은 선수들 위주로 리빌딩을 하고 출전한 한국 남자 대표팀은 예상 외로 괜찮은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농구 팬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다. 비록 [[슬로베니아]], [[캐나다]]에게 패하면서 아쉽게 토너먼트 진출에는 실패했지만, 상당히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줬는데, 그 선봉에 바로 정영삼이 있었다. 유럽과 북미의 장신 선수들 상대로도 전혀 주눅들지 않으면서 돌파를 성공시키는 모습을 보면서, 한국의 농구 팬들은 드디어 한국에도 자신감 있는 돌파를 성공시키는 선수가 나왔다면서 흥분했다. 특히 몇 달 후 [[NBA]]에서 뛰게 된 슬로베니아의 [[고란 드라기치]]를 '''돌파로 농락하면서''' 18득점 3어시[* 드라기치는 11득점 4어시스트]를 기록한 경기는 지금도 회자될 정도다. 사실 정영삼은 고란 드라기치가 누군지도 몰랐다고 한다. 하지만 흥분도 잠시... 정영삼은 부상으로 인해 그 뒤로 기량 성장에 심각한 정체를 가졌다. [[어깨]]를 다치면서 사실상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고, 슈팅력이나 돌파력 모두 성장보다는 정체 내지 퇴보를 겪으면서 팀의 전력 구상에서도 점차 주전보다는 백업으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. 그리고 [[2008년]] 대표팀 이후 대표팀에서 제대로 된 기량을 발휘한 적도 없었다. 결국 [[2011년]]에 입대해서 [[2013년]] 초까지 [[국군체육부대#s-3.1.2|상무]]에서 군복무를 수행한다. 2011-12 시즌 2군리그 MVP를 차지한 것을 보면, 부상만 없다면 어느 정도 기량은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. 전역 후 실질적인 [[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|전자랜드]]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. 비록 다른 팀에서 에이스 소리 듣는 국내선수들에 비하면 스탯면에서 뒤질지 몰라도 2013-14 시즌 [[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|전자랜드]]의 컨셉 자체가 끈끈한 조직력에 의한 농구였기 때문에... 이는 [[문태종]]이 이탈한 데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. [[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|전자랜드]]의 전력이 전시즌에 비해 하락했다는 평에도 불구하고 정규시즌 4위로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한 데는 [[이현호(농구)|이현호]], [[김상규]] 등 지난 시즌엔 식스맨급 전력이었던 선수들의 알토란같은 활약과 더불어 정영삼의 분투가 컸다. 팀 내에서 정영삼의 비중을 단적으로 보여준 경기가 6강 플레이오프 마지막 5차전 [[부산 kt 소닉붐|kt]]전이었는데 이 경기에서 정영삼은 1쿼터 시작하자마자 발목을 접질리면서 실려나갔고, 정영삼 없는 [[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|전자랜드]]는 [[부산 kt 소닉붐|kt]]에게 그야말로 영혼 밑바닥까지 탈탈 털렸다. 이 시즌의 활약을 인정받아 시즌 후 남자 농구대표팀 예비명단에도 이름을 올렸으며, 구단과 연봉 4억원에 5년의 장기 [[FA 제도|FA]]계약을 맺었다. 그대로 [[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|전자랜드]]에 뼈를 묻을 듯. 잦은 부상 탓에 적극적이던 돌파와 스핀무브는 이제 자주 보긴 힘들지만, 더 날카로워진 외곽슛과 미드레인지 게임으로 [[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|전자랜드]]의 토종 득점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. 15-16시즌 [[전주 KCC 이지스|KCC]]와 경기 중 정상적인 수비 과정에서 [[허리]] 통증을 호소했고[* 상무시절 개인운동 하다가 부상당한 것이 도진 것] 더 경기에 출장하지 못했다. 약 10여일 정도의 휴식이 필요하다는 듯. 유리몸이지만 그 동안은 그래도 45경기 이상씩 꾸준하게 출전했었으나 이번 시즌은 정말 많이 못나오고 있다. ~~그래서 [[정병국(농구)|정병국]]이 퍼졌다~~ 16-17시즌 노쇠화, 부상 등의 영향으로 전반적으로 기복이 심해지며 득점 효율성이 나빠졌다. 전역 후 최소 평균 득점에 야투율은 4할 아래로 내려왔고, 3점슛은 3할초반으로 모두 커리어 로우. 그러나 [[서울 삼성 썬더스|삼성]]과의 6강 PO에서 부상투혼을 보여주면서 팬들 사이에서 평가가 반전되었다. 특히 마지막 5차전에서 경기 내내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18점을 넣으며 [[졌지만 잘 싸웠다|졌잘싸]]의 표본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. 40분 경기가 끝나고 팀의 PO 탈락이 확정된 후 실의에 빠진 동료들을 추스르며, 원정 응원을 온 전자랜드 팬들에게 인사를 시킨 모습은 왜 정영삼이 전자랜드의 프랜차이즈 스타인지 보여주었다. 18-19 시즌에는 팀이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라가며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우승 기회를 잡았지만 끝내 [[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|모비스]]에게 밀리며 준우승에 그쳤다. 시즌 후 두 번째 FA가 됐고 원 소속팀인 [[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|전자랜드]]와 3년 계약에 보수총액 2억 5천만원, 인센티브 5천만원에 재계약을 맺었다. [[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/19-20시즌#s-2.8|2019년 10월 29일]], [[고양 오리온 오리온스|오리온]]전에서 '''인천 프랜차이즈 최초로 통산 500경기 출장을 달성'''했다. 20-21시즌 개막전인 2020년 10월 9일 [[안양 KGC]] 전에서 ''''''인천 프랜차이즈 최초로 통산 3점슛 600개를 달성하였다.[* 어시스트를 해준 선수는 [[박찬희(농구)|박찬희]].] 이후 팀의 클러치타임에서 3점슛을 꽂는 등 승리에 기여했다. 이후 경기에서도 좋은 경기력으로 회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. == 시즌별 성적 == ||<-11><table align=center><bgcolor=#0046ad> {{{#ffffff 역대 기록}}} || ||<rowbgcolor=#ff7518> {{{#ffffff 시즌}}} || {{{#ffffff 소속팀}}} || {{{#ffffff 경기수}}} || {{{#ffffff 2점슛}}} || {{{#ffffff 3점슛}}} || {{{#ffffff 자유투}}} || {{{#ffffff 득점}}} || {{{#ffffff 리바운드}}} || {{{#ffffff 어시스트}}} || {{{#ffffff 스틸}}} || {{{#ffffff 블록슛}}} || || 2007-08 ||<|13> [[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|전자랜드]] || 51 || 117/232 [br] (50.43%) || 59/150 [br] (39.33%) || 141/190 [br] (74.21%) || 552 || 96 || 134 || 43 || 2 || || 2008-09 || 51 || 111/189 [br] (58.73%) || 61/141 [br] (43.26%) || 96/115 [br] (83.48%) || 501 || 86 || 121 || 26 || 2 || || 2009-10 || 48 || 80/168 [br] (47.62%) || 37/117 [br] (31.62%) || 111/132 [br] (84.09%) || 382 || 89 || 113 || 31 || 1 || || 2010-11 || 51 || 77/155 [br] (49.68%) || 51/124 [br] (41.13%) || 85/125 [br] (68.00%) || 392 || 85 || 104 || 27 || 0 || || 2011-12 ||<-9> 군복무([[상무 농구단]]) || || 2012-13 || 18 || 58/110 [br] (52.73%) || 27/67 [br] (40.30%) || 56/63 [br] (88.89%) || 253 || 45 || 31 || 13 || 2 || || 2013-14 || 49 || 109/213 [br] (51.17%) || 68/176 [br] (38.64%) || 83/108 [br] (76.85%) || 505 || 115 || 76 || 41 || 6 || || 2014-15 || 50 || 87/183 [br] (47.54%) || 84/202 [br] (41.58%) || 96/118 [br] (81.36%) || 522 || 113 || 91 || 29 || 5 || || 2015-16 || 40 || 64/138 [br] (46.38%) || 68/169 [br] (40.24%) || 50/65 [br] (76.92%) || 382 || 77 || 75 || 32 || 0 || || 2016-17 || 51 || 82/193 [br] (42.49%) || 68/203 [br] (33.50%) || 97/113 [br] (85.84%) || 465 || 79 || 79 || 38 || 4 || || 2017-18 || 46 || 33/74 [br] (44.59%) || 33/99 [br] (33.33%) || 41/51 [br] (80.39%) || 206 || 54 || 38 || 22 || 1 || || 2018-19 || 41 || 24/59 [br] (40.68%) || 31/72 [br] (43.06%) || 29/35 [br] (82.86%) || 170 || 42 || 21 || 21 || 1 || || 2019-20 || 37 || 22/44 [br] (50.00%) || 12/43 [br] (27.91%) || 11/17 [br] (64.71%) || 91 || 31 || 14 || 10 || 0 || ||<-2><bgcolor=#ffff88><color=#373a3c> '''[[한국프로농구|KBL]] 통산''' [br] (13시즌) ||<rowbgcolor=#ffffff,#191919> 533 || 864/1758 [br] (49.15%) || 599/1563 [br] (38.32%) || 896/1132 [br] (79.15%) || 4421 || 912 || 897 || 333 || 24 || == 플레이 스타일 == 과거에는 좋은 운동능력[* 경기 중 덩크를 성공시키기도 했다.]과 스핀무브 그리고 빼어난 퍼스트 스탭 으로 슬래셔로써 이름을 날렸지만 지속적인 부상 이후에는 돌파는 아주 가끔씩, 자유투 유도 정도로 시도하는 수준이다. 그렇지만 완성도 높은 점퍼를 가지고 있어[* 돌파가 워낙 주목받아서 슛이 좋지 않다는 이미지가 있었는데, 커리어 내내 30 후반~40 초반대의 3점을 기록했다.] 기본적인 자신의 득점은 해낸다. 스크린을 타고 던지는 미드레인지 점퍼, 팀오펜스에서 나오는 3점찬스가 주요 득점 루트이다. 다만 상대팀이 작정하고 정영삼에게 압박을 가하면 존재감이 매우 미미해지는데 패스능력이 기본은 하지만 좋은 수준은 아니라 2:2 플레이에서 상대 빅맨이 적극적으로 더블팀 혹은 헷지를 들어간 타이밍에 패스를 내주지 못하기 때문. 돌파라는 선택지가 거의 사라진 지금에는 더 부각되는 단점이다. == 기타 == 이름 마지막 글자 때문에 동료 외국인 선수들에게는 [[샘]](Sam)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듯 하다. [[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|팀]]의 연고지인 [[인천광역시]]의 지역번호와 맞물려서 '''032'''라는 별명이 현재 가장 많이 불리고 있다. 처음 승선했던 국대에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으나, 이후로는 국가대표와 인연이 없다. 부상이 워낙 많아 비시즌에는 경기를 소화할 몸 상태가 아닌 경우도 많았고, 꽤 오랜 기간 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한 [[유재학]] 감독 시기에는 감독이 추구하는 수비와 맞지 않아 선발되지 못했다.[* 본인 피셜로는 실력이 없어서라고 한다.] 항상 상비군에는 꾸준히 이름을 올렸으나 처음의 임팩트를 생각하면 농구 팬에게는 아쉬운 부분. [[초등학교]] 때 농구부에 들어가 첫 경기에서 처음 넣은 골이 '''[[자책골]]'''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. 골밑에서 수비 리바운드를 잡았는데 이걸 순간적으로 공격 리바운드로 착각해 바로 슛을 던진 것(...). [[이광재(농구)|이광재]]와 [[생년월일]]이 같다. == 관련 문서 == * [[농구 관련 인물(한국)]] * [[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]] * [[프랜차이즈 선수/농구]] [각주] [[분류:대한민국의 농구 선수]][[분류:거제시 출신 인물]][[분류:1984년 출생]][[분류:2007년 데뷔]][[분류:슈팅 가드]][[분류:계성고등학교(대구) 출신]][[분류:건국대학교 출신]][[분류: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/현역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