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초대 참의원의원]][[분류:제7대 국회의원]][[분류:제12대 국회의원]][[분류:제13대 국회의원]][[분류:제15대 국회의원]][[분류:신민당(1967년) 국회의원]][[분류:민주통일당 국회의원]][[분류:민주한국당 국회의원]][[분류:통일민주당 국회의원]][[분류:자유민주연합 국회의원]][[분류:초대 참의원의원]][[분류:대한민국의 소설가]][[분류:대한민국의 시인]][[분류:의창구 출신 인물]][[분류:1925년 출생]][[분류:2005년 사망]][[분류:교육인 출신 정치인]][[분류:대한민국의 교육인]][[분류:부산대학교 출신]][[분류:마산고등학교 출신]] [[파일:external/rokps.or.kr/823.jpg|width=150]] 鄭相九 1925년 04월 28일 ~ 2005년 03월 24일 [[대한민국]]의 문학가([[소설가]], [[시인(문학)|시인]]), 정치인, 교육자이다. 본관은 [[동래 정씨|동래]](東萊)[[http://www.rokps.or.kr/profile/profile_view.asp?idx=80&page=1|#]], 자는 설송(雪松), 호는 다촌(茶村)이다. 1925년 [[일제강점기|일제강점기 조선]] [[경상남도]] [[창원시|창원군]] 동면(현 [[창원시]] [[의창구]] [[동읍]]) 화양리에서 태어났다.[[http://busan.grandculture.net/Contents?local=busan&dataType=01&contents_id=GC04201808|#]] [[마산고등학교]], [[부산대학교]]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. 이후 교사로 활동하다가 1954년 학교법인 혜화학원을 설립하고 [[부산광역시|부산]] [[혜화여자고등학교(부산)|혜화여자고등학교]] [[교장]]을 역임하였다. 한편 문학가로 활동하여 소설, 시 등을 창작하였다. 1960년 [[제5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혁신정당인 혁신동지총연맹 소속으로 [[대한민국 참의원]]([[경상남도]])에 당선되었다. 1967년 [[제7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신민당(1967년)|신민당]] 후보로 부산직할시 [[부산진구 갑]] [[선거구]]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. 1973년 신민당을 탈당하여 [[민주통일당]]에 입당하였으며 1977년 2월부터 1980년 2월까지 민주통일당 부총재를 지냈다. 1978년 [[제10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민주통일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[[남구(부산)|남구]]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[[민주공화당]] [[김재홍(1932)|김재홍]] 후보와 신민당 [[김승목]]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. 1980년 4월 다시 민주통일당을 탈당하여 신민당에 복당하였다. 1980년 [[전두환]] 정권이 출범하고 정치규제를 당하였다.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. 그러자 [[민주한국당]]에 입당하였다. 1985년 [[제12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민주한국당 [[전국구]] [[대한민국 국회의원|국회의원]]으로 당선되었다. 그러나 곧 민주한국당을 탈당하고 [[신한민주당]]에 입당하였다. 1987년 신한민주당을 탈당하고 [[통일민주당]]에 입당하였다. 1988년 [[제13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[[남구 을(부산)|남구 을]]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. 1992년 [[제14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민주자유당]] 공천에 탈락하자 [[통일국민당]]에 입당하였다. 그러나 선거 출마는 포기하였다. 1996년 [[제15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자유민주연합]]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