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 조선의 후궁]] [include(틀:조선의 후궁(중종 ~ 고종))] ||<-3><tablealign=right><tablewidth=400><tablebordercolor=#C23352><tablebgcolor=#fff,#1f2023>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; padding: 7px 10px 5px; background-image: linear-gradient(to right, #C23352 0%, #C23352 20%, #C23352 80%, #C23352)" '''{{{#ffd400 조선 선조의 후궁[br]{{{+1 정빈 홍씨 | 貞嬪 洪氏 }}}}}}'''}}} || ||<width=50><bgcolor=#C23352> '''{{{#gold 빈호}}}''' ||<-2>정빈(貞嬪) || ||<bgcolor=#C23352> '''{{{#gold 출생}}}''' ||<-2>[[1563년]]^^([[명종(조선)|명종]] 18년)^^ || ||<bgcolor=#C23352> '''{{{#gold 사망}}}''' ||<-2>[[1638년]]^^([[인조]] 16년)^^ [br]{{{-2 (향년 76세)}}} || ||<bgcolor=#C23352> '''[[본관|{{{#gold 본관}}}]]''' ||<-2>[[남양 홍씨|남양(南陽)]] || ||<bgcolor=#C23352> '''{{{#gold 부모}}}''' ||<-2>부친 홍여겸[* 홍여겸은 살아생전에 인동 현감을 지냈고, 사후에 이조 참판에 추증되었다. ] 모친 창녕 조씨[* 내자시 부정 조명원의 딸이다. ] || ||<bgcolor=#C23352> '''{{{#gold 부군}}}''' ||<-2>[[조선]] [[하성군|선조]] || ||<bgcolor=#C23352> '''{{{#gold 자녀}}}''' ||<-2>1남 1녀 ^^(1녀)^^ [[정정옹주]] ^^(1남)^^ [[경창군]] || ||<width=50><bgcolor=#C23352> '''{{{#gold 묘소}}}''' ||<-2>[include(틀:지도, 장소=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 애기봉, 너비=100%)] ---- [[경기도]] [[김포시]] 하성면 가금리 애기봉입구 서쪽 || [목차] [clearfix] == 개요 == [[조선]] [[선조(조선)|선조]]의 간택 후궁. [[정정옹주]]와 [[경창군]]의 어머니다. == 생애 == >전교하였다. >"고례(古禮)에 제후가 아홉 여자를 취한 것은 후사를 넓히려는 것이었으니 그 뜻이 은미함이 있다. 지금 후궁 자리가 많이 비어 내직(內職)이 폐지되어 있으니, 옛 법에 의하여 숙의(淑儀)을 간택해 들이도록 예조에서 승전을 받들라." >---- >《조선왕조실록》 선조 13년 4월 28일 1580년(선조 13) '''후사를 넓힌다'''는 뜻으로 [[후궁]] [[간택]]을 하게 되었다. 당시 선조의 [[왕비]]였던 [[의인왕후]]가 슬하에 자식이 없었으므로 나온 말이다. 이때 전 주부 정순희의 딸, 승훈랑 홍여겸의 딸, 훈련 습독 민사준의 딸이 간택에서 뽑혔는데, 홍씨는 봉상시동[*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당주동 일대. ]에 있는 궁으로 가서 입궁하기 전까지 교육 받았다.[* 선조실록 14권, 선조 13년 5월 26일 갑오 1번째기사 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na_11305026_001|#]] ][* 선조실록 14권, 선조 13년 5월 26일 갑오 2번째기사. 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na_11305026_002|#]] ] 처음에 숙의로 입궁한 그녀가 언제 정1품 빈까지 품계가 올랐는지 알 수 없다.[* 사대부 집안의 간택 후궁이라 궁인 출신인 경우보다 기록이 보다 풍부했을텐데 [[임진왜란]]이 일어나면서 승정원일기와 당대의 사초를 많이 잃어버려서 알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다. ] 다만, 1592년(선조 25)에 그녀를 정빈이라고 부르는 기록이 보이기 때문에 적어도 전쟁 발발 이전에 책봉되었을 것이다.[* 선조실록 26권, 선조 25년 5월 8일 정묘 8번째기사. 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na_12505008_008|#]] ] 그녀의 삶은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는데, 임진왜란에 이어 [[정묘호란]]까지 겪는다. --니탕개의 난부터 정묘호란까지-- 정묘호란 시절에는 제천 지역까지 피난 갔는데, 갖은 고생을 다 하다가 1638년(인조 16)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. 그런데 나라가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고, 재정 상태도 좋지 않아서 예법에 맞게 장례를 치를 수가 없었다. 비슷한 시기에 [[인빈 김씨]]의 딸 [[정혜옹주]]도 사망했는데, 인조는 이번에는 예법에 맞게 장례를 치르도록 하였다.[* 선왕의 간택 후궁도 예장을 못하는데, 선왕의 서출 옹주는 예장하도록 한 것이다. 신하들이 반발했지만, [[인조]]의 할머니가 누구인지 생각한다면(...) ] 이때 인조는 "이 상사는 정빈의 상사와 같지 않으니 다시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"고 반발을 일축하였다.[* 인조실록 37권, 인조 16년 11월 18일 병자 3번째기사. 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pa_11611018_003|#]] ] --차별대우--