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 조선의 후궁]] [[분류: 여흥 민씨]] [[분류: 1567년 출생]] [[분류: 1626년 사망]] [include(틀:조선의 후궁(중종 ~ 고종))] ||<-3><tablealign=right><tablewidth=400><tablebordercolor=#C23352><tablebgcolor=#fff,#1f2023>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; padding: 7px 10px 5px; background-image: linear-gradient(to right, #C23352 0%, #C23352 20%, #C23352 80%, #C23352)" '''{{{#ffd400 조선 선조의 후궁[br]{{{+1 정빈 민씨 | 靜嬪 閔氏 }}}}}}'''}}} || ||<width=50><bgcolor=#C23352> '''{{{#gold 빈호}}}''' ||<-2>정빈(靜嬪) || ||<bgcolor=#C23352> '''{{{#gold 출생}}}''' ||<-2>[[1567년]]^^([[명종(조선)|명종]] 22년)^^ [[9월 29일]] || ||<bgcolor=#C23352> '''{{{#gold 사망}}}''' ||<-2>[[1626년]]^^([[인조]] 4년)^^ [[11월 2일]][br]{{{-2 (향년 60세)}}} || ||<bgcolor=#C23352> '''[[본관|{{{#gold 본관}}}]]''' ||<-2>[[여흥 민씨|여흥(驪興)]] || ||<bgcolor=#C23352> '''{{{#gold 부모}}}''' ||<-2>부친 민사준(閔士俊) 모친 신창맹씨 || ||<width=50><bgcolor=#C23352> '''{{{#gold 부군}}}''' ||<-2>[[하성군|선조]] || ||<bgcolor=#C23352> '''{{{#gold 자녀}}}''' ||6남 2녀 ^^(장남)^^ [[인성군]] [* [[이괄의 난]] 문초 과정에서 이름이 지속적으로 언급되어 결국 사사되었다. ] ^^(장녀)^^ 정인옹주 ^^(차녀)^^ 정선옹주 ^^(3녀)^^ 정근옹주 ^^(차남)^^ [[인흥군(1604)|인흥군]] || ||<width=50><bgcolor=#C23352> '''{{{#gold 묘소}}}''' ||<-2>[include(틀:지도, 장소=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 산 23-1, 너비=100%)] ---- [[경기도]] [[의정부시]] [[금오동]] 산 23-1 || [목차] [clearfix] == 개요 == [[조선]] [[하성군|선조]]의 간택 후궁. 민사준의 딸로 [[성종(조선)|성종]]의 딸 경숙옹주와 여천위 민자방의 증손녀가 된다. 같은 [[여흥 민씨]]라 해도 [[원경왕후]], [[인현왕후]], [[명성황후]]와는 사실상 남과 다를 게 없다. 왜냐하면 이들과는 여흥 민씨 4세손(시조 민칭도의 증손자 민영모까지 공통 조상)까지 같고 그 아들 대에서 갈라졌기 때문. == 생애 == 1580년(선조 13) 후궁 간택에서 홍여겸의 딸(훗날의 정빈 홍씨), 정순희의 딸과 함께 종2품 숙의로 책봉된다. 이때 대간들이 민씨는 [[성종(조선)|성종]]의 외손이니 간택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선조가 따르지 않았다.[* [[연산군]]의 정실부인인 [[폐비 신씨]]도 세종의 아들인 임영대군의 외손녀라서 [[연산군]]과 7촌관계였고 당시에도 은근히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결국 혼인했다. ] 민씨는 수진방에 있는 궁으로 옮겨졌다. 이후 정2품 소의, 종1품 귀인을 거쳐 정1품 빈(嬪)으로 책봉된다. 민씨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, 왕에게 친정 일가의 벼슬을 부탁하지 않았고, [[의인왕후]]에게도 항상 예의를 갖추고 조용히 지냈다고 한다. 다만, [[임진왜란]]이 일어나면서 갖은 고생을 다하게 되는데, 이때 민씨는 선조를 따라 행궁으로 가는 갈에 가마 멀미에 시달리기까지 한다.[* 기재사초에 "후궁 민빈(閔嬪)은 가마 멀미로 계속 파주에 남아 있었다"는 언급이 있다. ] 선조가 승하하고 사가로 나와서 살게 되는데, [[이괄의 난]]이 일어나는 바람에 아들 [[인성군]]이 역모에 휘말린다. 결국 유배형에 처해지지만, 인조는 민씨가 병이 들어 위독하다는 이유로 인성군을 유배에서 풀어주었다. 하지만 민씨는 인성군이 한성에 도착하기 전에 죽었고, 인성군은 1628년(인조 6) 유효립 등의 [[대북]] 세력이 꾸민 역모에 휘말리는 바람에 자진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