||<-2><table align=center> [[파일:/image/065/2011/08/01/jms1_0.jpg|width=450]] || || '''이름''' || 정민수 || || '''생년월일''' || [[1988년]] [[7월 20일]] ([age(1988-07-20)]세) || || '''국적''' || [[대한민국]] || || '''출신지''' || [[부산광역시]] || || '''출신학교''' || 대연중학교 - [[동아고등학교]] - [[명지대학교]] || || '''포지션''' || [[스몰 포워드]] || || '''신체 사이즈''' || 192cm, 96kg || || '''프로입단''' || [[2011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|2011년 드래프트]] 1 라운드 9 순위 ([[전주 KCC 이지스]]) || || '''소속팀''' || [[전주 KCC 이지스]] (2011~2012, 2014~2017) || || '''등번호''' || 8 || [목차] == 소개 == 前 [[전주 KCC 이지스]] 소속의 농구 선수. 초등학교 5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지만, 1년 오르고 나서 집안의 반대로 농구를 하지 못했다. 하지만 부모와 설득한 끝에 농구를 다시 하게 만들어 준 강용길 감독의 도움으로 대연중학교로 진학했다. 동아고등학교 시절인 [[2005년]]엔 모교를 11년만의 전국 대회 우승으로 이끌었던 선수. 결승전에서만 24점을 넣어 MVP에 선정되었는데 이 때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. 즉, 고2가 전국 대회에서 맹활약한 것. 이 때의 활약으로 많은 대학에서 주목하다가 [[강을준]] 감독의 설득으로 [[명지대학교]]로 진학하게 되었다. 그리고 명지대의 에이스로 대학 리그 PO 진출까지 이끌면서 프로 무대에 주목을 받게 되었고, 결국 2011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9번으로 [[전주 KCC 이지스]]에 입단하게 되었다. == 프로 시절 == 2011-12 시즌 초반에는 동기인 [[김태홍(농구선수)|김태홍]]에게 밀리면서 많은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시즌 중반부터 기회를 잡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. 특히 막판 5~6라운드에서 매우 절륜했는데, 그 즈음해서 장기인 외곽포가 터지면서 슈터로서의 자질을 보여주어 김태홍과의 경쟁에서 판정승을 거두었다.[* 사실 같은 [[스몰 포워드|3번]]이라도 둘의 플레이스타일이 좀 다른 게, 김태홍은 돌파를 무기로 해서 상대적으로 안쪽에서의 플레이에 능하고, 정민수는 외곽슛이 장기다. 수비도 [[김태홍(농구선수)|김태홍]]은 가로, 정민수는 세로수비에 능하다는 평.] [[추승균]]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KCC의 다른 [[김태홍(농구선수)|선수]][[유병재(농구)|들]]을 제치고 차기 3번감으로 낙점받았다. 2012년 3월 26일 상무에 합격되면서 4월 30일에 입대하게 되었다.[* 농구선수는 사실상 국제대회로 인한 병역 특례가 불가능(올림픽 동메달 이상,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기준인데, 올림픽은 메달은커녕 본선진출도 벅차고, 아시안게임은 [[중국|어느 인간많은 나라]] 때문에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. [[2002년]] [[2002 부산 아시안 게임|부산 아시안게임]]이 기적인 것.)하기 때문에, 유망한 선수를 '''최대한 빨리 군대에 보낸다.''' [[김태술]], [[함지훈]]이 예. 더군다나 지금 입대하면 [[하승진]]과 컴백시기가 겹치는 것도 노린 듯. [[탱킹|최대한 망해서 상위픽을 노리려는 꼼수]]가 보인다.] 그러나 제대 이후에는 15시즌에 무릎 부상을 심하게 당하면서 16시즌과 17시즌을 모두 날려먹었고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. == 관련 문서 == * [[농구 관련 인물(한국)]] * [[전주 KCC 이지스/선수단]] [각주] [include(틀:문서 가져옴, title=정민수, version=61)] [[분류:대한민국의 농구 선수]][[분류:부산광역시 출신 인물]][[분류:1988년 출생]][[분류:2011년 데뷔]][[분류:2017년 은퇴]][[분류:스몰 포워드]][[분류:전주 KCC 이지스/은퇴, 이적]][[분류:동아고등학교 출신]][[분류:명지대학교 출신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