* [[정치인/목록]] [[파일:external/www.jangheung.go.kr/805_body_1_80.gif|width=150]] 丁明燮 1910년 2월 12일 ~ 1997년 2월 25일 [[대한민국]]의 전 [[공무원]], [[정치인]]이다. 호는 불휘(不輝)이다. 1910년 [[전라남도]] [[나주시|나주군]]에서 태어났다. [[일본]] [[주오대학]] 법학부 및 동 대학교 [[대학원]]을 졸업, 수료하였다. [[8.15 광복]] 후 [[미군정]]기 때부터 전라남도 [[해남군]][[군수|수]], [[장흥군]]수, [[영광군]]수 등을 역임하였다. 1954년 [[제3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자유당]] 후보로 전라남도 나주군 을 [[선거구]]에 출마하여 현역 [[대한민국 국회의원|국회의원]]인 [[무소속]] 서상덕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. 1956년 [[대한민국 국회]] 교통체신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. 1957년 [[장면 부통령 저격사건]]이 일어나자 대한민국 국회에서 조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. 1958년 [[제4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. 1959년 자유당 전라남도당 위원장에 임명되었다. 1960년 [[제5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[[민주당(1955년)|민주당]] 이경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. 1960년 3.15 정부통령 선거 시에는 전남도당 위원장으로 있었지만, 부정 선거에는 관여하지 않았다. 1963년 [[제6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자유민주당(대한민국)|자유민주당]] 후보로 전라남도 나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. 이듬해인 1964년 원내교섭단체인 삼민회(민주당, 자유민주당, [[국민의당(1963년)|국민의당]]) 원내총무로 선출되었다. 1965년 통합야당 [[민중당(1965년)|민중당]]이 창당하자 민중당에서 교통체신위원장 및 당무위원을 역임하였다. 1967년 [[제7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신민당(1967년)|신민당]]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[[민주공화당]] 이호범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. 1980년 [[민주정의당]] 창당에 참여하였고 이듬해인 1981년 민주정의당 지도위원이 되었다. [[분류:일제강점기의 인물]][[분류:해남군수]][[분류:장흥군수]][[분류:영광군수]][[분류:제3대 국회의원]][[분류:제4대 국회의원]][[분류:제6대 국회의원]][[분류:자유당 국회의원]][[분류:자유민주당(대한민국) 국회의원]][[분류:민중당(1965년) 국회의원]][[분류:신민당(1967년) 국회의원]][[분류:나주시 출신 인물]][[분류:1910년 출생]][[분류:1997년 사망]][[분류:주오대학 출신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