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]][[분류:한국의 독립운동가]][[분류:여수시 출신 인물]][[분류:1899년 출생]][[분류:1956년 사망]][[분류:건국훈장 애족장]] ||||<table align=right><bgcolor=white><:>[[파일:정두범.jpg|width=300px]] || || 성명 ||정두범(鄭斗凡) || || 생몰 ||[[1899년]] [[8월 3일]] ~ [[1956년]] [[5월 21일]] || || [[출생지]] ||[[전라남도]] [[여수시|여수군]] 남면 우학리 || || 사망지 ||[[전라남도]] [[여수시|여수군]] || || 추서 ||건국훈장 애족장 || [목차] == 개요 == 한국의 [[독립운동가]]. 200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. == 생애 == 정두범은 1899년 8월 3일 전라남도 여수군 남면 우학리에서 태어났다. 1919년 무렵 숭일학교에 재학 중이던 정두범은 그해 3월 6일 교사인 [[최병준]]에게 미리 교부받은 독립선언서와 ‘경고아이천만동포(警告我二千萬同胞)’라는 경고문, 독립가(獨立歌) 등을 광주 시내의 시위군중에게 배포하고 광주에서 발발한 시위에 참여했다.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19년 10월 27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. 출옥 후 1925년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, 시대일보의 기자로 활동하였으며, 모교인 승일학교의 교직에 취임하였으나 일제의 교직취임 금지 조치를 당했다. 이후 자택에서 은거하던 그는 1945년 [[8.15 광복]]을 맞이한 뒤 [[김구]]가 이끄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광주시당위원장, 전남도당부위원장을 역임했으며, 1948년에는 호남신문사 부사장에 취임했다. 1956년 5월 21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.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정두범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.